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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Jan 27. 2019

# 08. 뛸 듯이 기쁜 날

며칠 전의 일이다. 
 
새벽 운동을 마치고 피트니스센터를 나서는데 건물  입구에 사람이 주저앉아 있었다. 쓰러진 건 아니었지만 본인이 끌던 수레 손잡이를 잡고 고개를 숙인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아저씨, 괜찮으신 거예요? 
 
다가가 물으니 그냥 지나가라는 듯, 손만 휘휘 저을 뿐 괜찮은 기색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딜 다쳤는지 몰라 함부로 손을 댈 수 없으니 부축이라도 하려는 요량으로 재차 물었다. 
 
몸이 불편하시면 저한테 기대세요. 
 
그가 끌던 수레에는 몇 개의 펼쳐진 박스가 놓여있었다. 폐지를 모으는 중이었을 거라고 짐작했는데 많지 않은 양인 걸 보니 이제 하루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모양새다. 
 
병원에 함께 가보실래요? 
 
하얗게 질렸던 얼굴에 혈색이 돌아오는 걸 보며 계속 말을 걸었더니 그제야 그는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지고 식은땀이 나더라는 말을 뱉었다. 저혈당으로 인한 쇼크가 아닌가 싶어 초콜릿을 가방에서 꺼내 들었다. 
 
아저씨, 식사는 하고 나오신 거예요? 
 
고개를 가로젓는 그를 보며 지갑을 열었다. 현금이라고는 만 원짜리 두 장뿐이었지만 그거면 아침식사 비용으로는 충분하겠지 싶었다. 손사래를 치는 그의 점퍼 주머니에 이만 원을 억지로 쑤셔 넣고는 돌아섰다.  
 
이거 꼭 식사하는데 쓰셔야 해요. 
 
아침 식사를 위해 집에 도시락을 사 가기로 한 기억이 떠올랐다. 

부지런히 도시락 전문점을 향해 걸었다. 



 

그래서 지갑에 현금이 없다는 거예요? 
 
응, 현금은 다 썼으니까 신용카드로 결제했어. 
 
새벽에 있었던 이야기를 다 듣더니 아내는 피식 웃었다. 젓가락을 들어 식사를 시작하는 아내를 지켜보며 혹시 바보 같은 행동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눈치를 보는데 아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따뜻한 커피를 준비하더니 다시금 식탁으로 왔다. 
 
잘했어요. 
내가 현금 넣어둘게요.
지갑 비우지 말아요. 
 
이만 원을 썼는데 지갑에 오만 원이 새로 생겼다. 
뛸 듯이 기쁜 날이었다. 


어느 날 아침, 이만 원을 썼어요.


손수레를 끌고 가던 분이 저 장소에서 웅크리고 앉아 일어날 줄을 모르길래 부축하고 사정을 들어보니 식사를 하지 않았던 모양이더군요.
식사라도 하시라고 지갑에서 이만 원을 꺼내 드리고 귀가했습니다. 아내가 잘했다고 칭찬해주고는 지갑에 오만 원을 넣어줬어요.


아빠, 잘했어! 아쉽게도 제제는 내 지갑에 아무것도 넣어주지 않았죠.
철딱서니 없는 남편, 장난꾸러기 아빠임에도 늘 잘했다고 해주니 아내와 아들에게 참 고맙습니다.
제가 걷는 길, 제가 하는 행동이 틀리지 않았다고 항상 응원해주는 가족이 있어 든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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