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렸을 때 무언가를 사달라고 요청하면 부모님은 그걸 결코 가볍게 듣지 않으셨다. 필요한 것에 대한 합당한 이유만 있다면, 사정이 허락하는 한 반드시 그걸 들어주려고 애쓰셨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이유를 대더라도 빙그레 웃으며 이야기에 끝까지 귀를 기울여주셨음은 물론이다.
꼭 읽고 싶다 말하면 아버지의 월급보다도 비싼 책 한 질을 선뜻 사주시는 분들이었다.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했던 실험을 집에서도 해보고 싶다고 말한 후에는, 학교 과학실만큼 다양한 실험 도구를 선물 받기도 했다. 태엽을 보고 싶었다는 이유를 대면, 방금 산 장난감 자동차를 해체하다 고장 냈더라도 꾸중을 듣지 않았다.
부모님에 대한 그런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나 또한 불필요한 것을 두고 부모님을 조르지 않았다. 가감 없이 필요한 걸 이야기했다. 다만 함부로 무언가를 사달라는 일은 없었다.
고민과 망설임 때문에 정작 내가 원하는 걸 받지 못한 경험이야 물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 점점 원하는 걸 정확하게 부탁하고, 왜 필요한지 설명하게 됐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 부모님은 내게 바로 그런 걸 원하셨던 것 같다.
"사탕이 많았으면 좋겠어."
어느 날, 제제가 그렇게 말했다.
아빠가 정성껏 차린 음식을 두고 즐겁게 저녁식사를 마친 후였다. 식사 후에는 보통 과일이나 치즈, 견과류 등을 먹는데, 그날엔 사탕이 필요하다며 콕 집어 말했다.
필요하니까 아빠에게 부탁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왜? 라며 살짝 막아서기보다, 어떤 제품이냐고 묻는 쪽을 택했다.
"사탕 병원에서 한 개씩 주는 그거 말이야."
가끔 제제를 데리고 가까운 이비인후과에 방문한다. 진찰과 치료를 마치면 아이들에게 작은 막대사탕을 선물하는 곳인데, 제제는 그곳을 '사탕 병원'이라고 부른다.
"그게 마음에 들어?"
"응, 그 사탕이 제일 맛있어. 동네 마트엔 안 팔아."
입술에 힘을 주고 원하는 바를 설명하는 제제의 모습은 어린 시절의 나를 닮아 있다. 어쩌면 그런 제제에게서 지난날의 내 모습을 떠올리고는, 나도 당시 내 부모님처럼 행동하는 것일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탕이 필요하대요."
"당신 생각은 어때요?"
깊은 밤, 퇴근한 아내에게 제제의 이야기를 뭉뚱그려 전했다. 내 의사를 묻길래 오케이 사인을 보내자 아내는 이내 검색을 시작했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아내는 제제가 원하는 사탕을 찾아냈다.
"그런데, 사탕이 필요한 이유가 뭐래요?"
"식사를 마치면 사탕을 먹고 싶을 때가 있대요. 그런데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사러 나가야 하잖아요. 겨울이니까 날씨는 추운데 말이죠. 그러니까 미리 준비해 달래요."
제제가 했던 이야기를 이번에는 자세하게 설명했다. 진지하게 말하는 나도, 심각하게 듣던 아내도 더 이상 참기 힘들어 큭큭거리며 웃었다.
다음날, 집에 도착한 택배 상자에는 사탕 400개가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