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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chaelKay Feb 05. 2019

# 72. 사탕Ⅰ

내가 어렸을 때 무언가를 사달라고 요청하면 부모님은 그걸 결코 가볍게 듣지 않으셨다. 필요한 것에 대한 합당한 이유만 있다면, 사정이 허락하는 한 반드시 그걸 들어주려고 애쓰셨다. 다소 우스꽝스러운 이유를 대더라도 빙그레 웃으며 이야기에 끝까지 귀를 기울여주셨음은 물론이다.

 

꼭 읽고 싶다 말하면 아버지의 월급보다도 비싼 책 한 질을 선뜻 사주시는 분들이었다.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했던 실험을 집에서도 해보고 싶다고 말한 후에는, 학교 과학실만큼 다양한 실험 도구를 선물 받기도 했다. 태엽을 보고 싶었다는 이유를 대면, 방금 산 장난감 자동차를 해체하다 고장 냈더라도 꾸중을 듣지 않았다.
 
부모님에 대한 그런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나 또한 불필요한 것을 두고 부모님을 조르지 않았다. 가감 없이 필요한 걸 이야기했다. 다만 함부로 무언가를 사달라는 일은 없었다.
 
고민과 망설임 때문에 정작 내가 원하는 걸 받지 못한 경험이야 물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통해 점점 원하는 걸 정확하게 부탁하고, 왜 필요한지 설명하게 됐다. 우물쭈물하지 말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 부모님은 내게 바로 그런 걸 원하셨던 것 같다.  



 

"사탕이 많았으면 좋겠어."
 
어느 날, 제제가 그렇게 말했다.  
 
아빠가 정성껏 차린 음식을 두고 즐겁게 저녁식사를 마친 후였다. 식사 후에는 보통 과일이나 치즈, 견과류 등을 먹는데, 그날엔 사탕이 필요하다며 콕 집어 말했다.
 
필요하니까 아빠에게 부탁하는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왜? 라며 살짝 막아서기보다, 어떤 제품이냐고 묻는 쪽을 택했다.
 
"사탕 병원에서 한 개씩 주는 그거 말이야."
 
가끔 제제를 데리고 가까운 이비인후과에 방문한다. 진찰과 치료를 마치면 아이들에게 작은 막대사탕을 선물하는 곳인데, 제제는 그곳을 '사탕 병원'이라고 부른다.
 
"그게 마음에 들어?"
 
"응, 그 사탕이 제일 맛있어. 동네 마트엔 안 팔아."
 
입술에 힘을 주고 원하는 바를 설명하는 제제의 모습은 어린 시절의 나를 닮아 있다. 어쩌면 그런 제제에게서 지난날의 내 모습을 떠올리고는, 나도 당시 내 부모님처럼 행동하는 것일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탕이 필요하대요."
 
"당신 생각은 어때요?"
 
깊은 밤, 퇴근한 아내에게 제제의 이야기를 뭉뚱그려 전했다. 내 의사를 묻길래 오케이 사인을 보내자 아내는 이내 검색을 시작했다. 몇 분이 지나지 않아 아내는 제제가 원하는 사탕을 찾아냈다.  
 
"그런데, 사탕이 필요한 이유가 뭐래요?"
 
"식사를 마치면 사탕을 먹고 싶을 때가 있대요. 그런데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사러 나가야 하잖아요. 겨울이니까 날씨는 추운데 말이죠. 그러니까 미리 준비해 달래요."
 
제제가 했던 이야기를 이번에는 자세하게 설명했다. 진지하게 말하는 나도, 심각하게 듣던 아내도 더 이상 참기 힘들어 큭큭거리며 웃었다.
 
다음날, 집에 도착한 택배 상자에는 사탕 400개가 담겨 있었다.


어느 날, 제제는 사탕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식사를 하고 나면 가끔 사탕이 먹고 싶을 때가 있대요.


사탕 병원에서 주는 사탕이 제일 맛있대요. 그런데 그 사탕은 우리 동네 마트에는 팔지 않는다고 정확하게 말하더라고요.
갑자기 먹고 싶을 때, 사탕이 없다면 사러 나가야 하고, 날씨가 추우니 나가기 망설여지니까 미리 준비해달라는 게 제제의 설명이에요.


사실 제제는 사탕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런데 먹고 싶은 생각이 들 때 사탕이 없으면 서운한 기분이 드나 봅니다.
자세히 본인의 생각을 설명해주니 아빠 입장에서도 한결 마음이 편해요.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면 제제의 생각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우물쭈물하지 않고 본인의 생각을 말하게끔 하려면 천천히 아이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보는 게 참 좋아요.


사탕은 나쁘다. 이렇게 단정 지어 버리면 아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겠죠. 스스로 양치질을 하는 녀석이니 큰 고민 없이 아내와 상의해서 사탕을 주문했습니다.


여보, 이건 좀 심한데! 아내가 주문한 사탕 400개가 도착했어요. 혹시 한 가지 맛만 좋아할 수 있으니 많이 사놓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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