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사탕 먹고 싶어."
사탕은 주방 아래쪽 찬장에 있다.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으니 언제든지 꺼낼 먹을 수 있는데도 제제는 항상 허락을 구한다. 딱히 거절할 이유는 없다. 웃는 낯으로 흔쾌히 건넸다.
"자, 여기 사탕 나왔습니다."
"아빠, 고마워."
이가 상할 수 있으니 사탕은 가급적 깨물어먹지 않는 게 좋다고 두어 번 설명한 적이 있다. 한참 쪽쪽 소리가 들리더니 오도독오도독 깨무는 소리로 바뀌었다. 생각보다 오래 빨아먹길래 감탄을 했는데 더 이상 참기는 힘든 모양이다. 그래도 아빠의 말을 잊지 않았다는 게 고마웠다.
사탕을 처음부터 끝까지 깨물지 않고 먹는 건 어른에게도 힘든 일이다. 참을성이 없는 나는 평생을 두고 채 열 번도 성공하지 못한 일이니, 제제는 그만하면 충분히 잘한 셈이다.
"다 먹었나요?"
아빠의 질문에 제제는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다. 사탕은 말끔히 사라지고 가느다란 막대만 손바닥에 놓여 있다. 빙그레 웃으며 제제를 품에 안고 등을 토닥였다.
"어이쿠, 사탕 대장님이네."
"대장님은 이제 양치질하러 갈게."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막대를 건네더니 제제는 욕실로 향했다. 차가운 도시의 남자가 따로 없다. 그렇게 제제의 뒷모습을 바라보는데 욕실 앞에 선 제제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본다. 의심 어린 눈초리다.
"아빠, 아까 양치질했어?"
쓴웃음을 지으며 욕실로 들어섰다.
나는 부모님에게 어떤 아이였을까? 허락 없이 찬장의 꿀을 퍼먹다 배앓이를 했던 일, 당부를 잊고 엿을 마구 먹어대다가 씌웠던 보철물이 이에서 빠졌던 일, 양치질을 게을리했다가 한참 치과를 다녀야 했던 일이 차례로 머릿속을 스쳐 지났다.
모든 면에서 아빠보다 나은 녀석이라는 생각에 흐뭇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제제 곁에 나란히 서서 양치질을 하는 내 모습도 흡족했다. 눈가에 주름을 잡아가며 싱글벙글 칫솔을 놀리는데 거울 속 제제의 두 눈이 나를 지켜보고 있다. 흠칫 놀라 왜냐고 물으니 일장연설을 늘어놓는다.
"양치질을 대장님처럼 더 열심히 해야지."
모든 면에서 아빠보다 나은 녀석이 맞다.
심지어 잔소리조차 나보다 한 수 위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