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연휴의 마지막 날,
마음을 단정하게 가다듬고 정리를 시작했다.
작은 지퍼백에 담긴 반찬부터 과일상자에 이르기까지, 받아온 모든 걸 하나씩 꺼내서 늘어놓고 알맞게 분류했다. 하나의 명절이 지날 때면 늘 하는 일이지만 좀처럼 익숙해지는 법이 없다. 일이 어렵다거나 피곤해서가 아니다. 대충 손을 댔다가 받은 사랑을 깨닫고 울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퍼백 하나를 열 때마다, 상자 하나를 정리할 때마다, 본가와 처가 어른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긴 먹거리나 선물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주방은 어느새 왕후장상의 그것으로 변해 있었다.
잔뜩 안겨드리고 와도 모자랄 판에, 되려 드린 것보다 몇 배를 받아서 돌아왔다. 그냥 두고 잡수시라고 손사래를 쳐도 기어코 챙겨 보내는 어른들의 모습이, 가지런히 놓인 반찬과 과일 너머로 아련하게 떠올랐다.
고개를 돌려보니 제제는 마냥 즐거운 표정이었다. 한아름 받은 선물을 늘어놓고는 작은 전시회라도 열 기세였다. 장난감을 비롯해 3D 안경, 수십 권의 책, 몇 벌의 옷까지..., 거실은 어느새 커다란 종합 선물세트를 개봉한 모습으로 탈바꿈해 있었다.
챙겨드린 것은 얼마 없는데, 제제가 받은 세뱃돈은 차고 넘친다. 넙죽 절하고 받아온 세뱃돈이지만 제제는 아직 돈의 가치를 모른다. 아직 세뱃돈 받을 나이가 아님에도 어른들은 봉투를 내민 손을 한사코 굽히지 않으셨다. 봉투를 받아 들고 갸우뚱거리는 제제를 바라보며, 그저 만면에 미소를 걸어두실 따름이었다.
먹거리든, 세뱃돈이든 여유가 넘쳐 건네신 것이 아니라는 걸 안다. 알기 때문에 마음속 어딘가가 또 흘러넘칠 것 같았다. 그럴 때마다 부지런히 손을 놀렸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눈물이 날 것만 같았으니까.
냉장고에 들어갈 반찬류는 컨테이너에 소분해서 담았고, 빨리 먹어야 할 생선이나 육류는 눈에 잘 보이도록 배치했다. 과일은 닦아서 과일 칸에 넣거나 다용도실 과일 보관함으로 옮겼으며 각종 선물도 제 용도에 맞게 넣어두었다. 세뱃돈을 들어 제제에게 그 의미를 설명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음을 단정하게 가다듬고 시작했는데 계속 눈가가 촉촉해졌다. 흐트러진 마음을 다독이느라 애를 먹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정리를 마칠 수 있었다.
잘 먹을게요.
잘 사용할게요.
제제 잘 키울게요.
휴...,
명절 마지막 날은 늘 어렵다.
#제제 #45개월 #아빠육아 #육아이야기 #명절
#잘먹을게요 #잘쓸게요 #잘키울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