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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진킴 Jan 02. 2021

12월: 나에게 친절한 연말

나의 균형을 찾아서 


나는 2020년에는 2019년 보다 '나에게 친절했다' 


정말 신기하다. 스스로에게 친절했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지금의 나 자신이 기적 같다. 12월은 한국으로 귀국해서 2주간 자가격리 기간이 있었다. 그리고 연말이니 지인들과 만나기 위해 필요한 회식비와 커피값을 6월부터 모아서 70만 원 정도 적금을 해놨었는데,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점점 올라가면서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래서 나 홀로 집에서 먹고 싶을 때 먹고, 자고 싶을 때 자면서 아기강아지처럼 지냈다. 


코스 세일이 있었는데 사지 않았다. 대신 옷장 정리를 하고, 수저나 비상약 상자도 정리했다. 아름다운 가게에 3박스를 기증하고 30만 원 기부영수증을 받았다. 새로 작업실을 얻은 동생을 위해 러그를 샀다. 처음으로 독립을 하는 막냇동생을 위해 좋은 수건 세트를 샀다. 어머니의 생일을 위해 동생과 선물을 고르고, 요리를 했다. 아버지의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물어봤다. 


무언가를 내 공간에 사모으고 물건들로 가득 차 쉴 틈도 없었고, 항상 해야 할 일로 넘쳐났었는데 틈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내고, 다른 사람을 위해 쓰는 에너지와 돈의 기쁨도 알게 되었다. 내가 지금 어떤지 짬을 내서 체크하고, 지금 어떻게 해주면 좋을지 물어봐주고. 화를 내기보다 그냥 관찰해보고. 항상 친절한 건 아니지만, 지금 내가 친절하지 않고 무서운 심판자처럼 굴고 있다는 걸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들판도 넓어졌다. 


나의 '공간'을 나답게 


밖으로 나가는 돈(꾸밈,모임,기여비)이 아니라, 나를 위해 쓰는 돈이라 좋다. 헝가리에서 침대에 익숙해졌는지 더 이상 등이 배겨서 바닥에서 잘 수가 없어 이케아에서 매트리스를 구입했다. 책을 읽거나 핸드폰을 볼 때 자세가 불편해서 당근 마켓에서 이케아 안락의자를 샀다. 형광등 대신 내가 좋아하는 플로어 등을 사서 거실과 침실에 놔뒀다. 일단 자러 갈 때 스위치를 끄기 위해 다시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정말 마음에 든다. 


인터넷으로 보고 클릭 하나로 주문하는 방식이 그렇게 마음에 들진 않는다. 한 번에 집의 모든 공간을 바꾸고 갖추는 것은 비용적으로도 어렵다. 앞으로 인연이 되는 가구들이 하나씩 생겼으면 좋겠다. 그런 의미에서 20살 때 이모가 사준 식기 세트나 어머니가 준 침구 세트는 모두 정리했다. 내 스타일도 아니고, 해외여행이나 돌아다니면서 사모은 물건들과 중복되는 아이템도 많았다. 


책 중에서 '언젠가 읽으려고' 사 둔 책들은 정리하려고 빼놓았다. 고등학교 때 사두고 애지중지하느라 아직까지 새 공책인 문구류도 지인들에게 나눠주고 정리했다. 패딩 4개 중에 1개만 남겼다. 신발, 에코백, 청바지도 정리했다. 아직 정리 못한 건 소셜댄스 할 때 입는 댄스복과 구두, 그리고 여름 검은색 끈나시다. 끈나시만 50개 정도 나온 것 같다... 급하게 본가로 내려오느라 옷장 정리는 반쯤만 완료했고, 지인들에게 호언장담했던 벼룩시장은 아직 시작도 못했지만. 


매트리스, 러그, 조명보다 더 큰 것도 사고 싶다. 세탁기와 건조기, 그리고 스타일러 옷장. 구식 새시로 되어 있는데 이중창으로 바꾸고 싶고 곰팡이가 생겨 벗겨진 베란다 천정도 공사하고 싶다. 신발장 입구에는 화려한 타일로 집의 인상을 바꿔보고 싶다. 내 공간에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어떤 느낌을 원하는지 이미지를 모으고, 작은 적금을 새로 파는 일이 재밌다. <우리 집 기록>이라는 작은 노트를 만들어서 동생과 집에 생기는 변화, 새로 들이고 나가는 가구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3년 후에는 어떻게 되어 있을까? 나에게 의미가 있고, 쓰는 돈 대비 실용성과 만족감도 큰 새로운 소비 카테고리가 생겼다. 


인테리어 소품이나 가리기에 급급한 가성비 시공보다, 하나씩 천천히. 우선은 들어내고 정리하는 것부터. 



멍상과 심리상담 

이번 달에 왈이네 멍상가 멤버십 3기가 끝난다. 그래서 4기도 신청을 했다. 서로 마음을 물어봐 줄 수 있는 친구들이 있어서 다행이다. 심리상담은 올해 3월부터 쭉 이어 오고 있다. 비용이 부담스러운 것 같기도 하고, 이제 나 혼자서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강펀치를 맞고 바람 빠진 공이 된다. 원래 '생활비' 예산에 병원, 상담이 있었고 '활동비' 예산에 명상 클래스가 속해 있었는데 12월 정산을 하면서 가계부 체계를 바꿨다. 


앞으로는 '건강한 삶'이라는 카테고리에 건강식품, 병원, 운동, 상담, 명상이 모두 들어간다. 나는 돈 때문에 명상이나 상담을 그만두고 싶지 않다. 2019년만 해도 상담에 돈을 쓰는 게 아깝게 느껴졌다. 자기 계발이나 직접적으로 업무에 도움이 되는 활동도 아닌데 월급의 10% 이상의 돈을 소비한다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올해 초 번아웃을 겪으면서 마음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지 뼈저리게 절감했다. 


'2020년에 나를 살린 게 무엇인가요?' 나는 명상, 심리상담, 온라인 커뮤니티를 뽑을 거다. 회사에서 힘든 시간을 보내고, 권고사직을 당하고, 급작스럽게 헝가리 생활을 시작해도 버틸 수 있었던 건 3월에 왈이네 마음 단련장에 등록했기 때문이다. 작년에 집단 상담을 받았던 센터에 연락해서 상담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명상을 하고 상담을 하면서 고마운 일이 많이 생겼다. 지나가는 고양이가 꼬리가 뭉툭한데 털이 보송해서 고맙고, 하늘에 노을이 분홍색이라서 고맙고, 친구가 카톡을 빨리 봐줘서 고맙고, 동생이 나 대신 불을 꺼줘서 고맙고, 오늘 마실 커피가 있어서 고맙고, 우리 집 강아지가 빼꼼 쳐다보는 모양이 귀여워서 고맙다. 


12월 월간 결산까지 매 달 꼬박꼬박 가계부를 쓰고 정산 일기를 쓴 나 자신에게도 고맙다. 멍상과 상담에 돈을 쓸 수 있는 건 내가 마음의 힘을 기르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고, 그만큼 꾸밈비나 관계 유지비용에 들어가는 돈을 줄였기 때문이다. 마음에 이만큼 돈을 써도 되고, 건강하기 위해 필요한 활동과 리소스를 허락해주는 나 자신에게 고맙다. 돈은 돈이고, 행동과 생각은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데 돈 쓴 보람 있게 명상과 상담을 통해 배운 도구들을 꾸준히 습관으로 만들어나간 나 자신에게도 고맙다. 



>>>Best 소비 Top 3

1. 카카오 플백 이벤트 8.1    

영산매 시즌2가 끝나서 멤버 이벤트를 했다. 100까지 있는 숫자 스티커와 노트, 그리고 당첨자에 따라 원서나 뉴요커 잡지 한부를 발송하는 비용이다. 집 정리를 하다가 벌크로 사둔 공책을 발견해서 나누면 좋겠다, 단순하게 생각했었는데 배송료와 멤버 수를 계산에 넣지 않고 일을 벌여버렸다... 이왕 이렇게 된 김에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하자! 외치며 포장하고, 카드를 쓰면서 정말 행복했다.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함께 할 사람들이 생겼다는 건 정말 고마운 일이다. 내 진짜 선물은 우리 멤버들이었던 것 같다 �


2. 빌라 선샤인 마지막 커뮤니티 이벤트 2   

시즌6을 끝으로 빌라 선샤인이 문을 닫았다. 팀 선샤인의 마지막 커뮤니티 이벤트에 쓴 2만 원. 집에서 어찌나 펑펑 울었던지... 이 따뜻한 연결과 충만한 느낌은 햇살(선샤인)처럼 퍼져나갈 거야. 팀 선샤인 다섯 분이 판데믹이라는 예상치 못한 변화에 함께 항해하는 법을 찾아나가는 대장정기를 봤다. 시즌1-2는 존재만 알고 있다가, 시즌3 활동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코로나 상황에 온라인 커뮤니티로 진행된다는 시즌4는 고민을 하다가 '일단 경험해보자!'라고 생각했었고, 헝가리에 있으면서 시즌5와 시즌6을 이어서 등록했다. 3부터 6까지 오는 동안 밀레니얼 여성들의 커뮤니티를 성장의 가능성이 넘실대고, 안전한 울타리로 만들기 위해 애쓰고, 연구하고, 노력한 팀 선샤인의 경험을 들을 수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 


3. 로지텍 블루투스 키보드와 마우스 7.7 

어머니에게 생일선물 번외 편으로 사놓고 모셔놓기만 했던 아이패드를 드렸다. 정원을 디자인하고 가꾸는 재미로 코로나 시국 1년을 버티신 어머니가 스크랩과 콘셉트 스케치를 열심히 한 노트를 보고, 브런치 작가를 권유해드렸다. 1년 동안 찍은 사진을 구글 포토에 잘 아카이브 해놓으셨고, 아이디어도 많으니까 아이패드처럼 간편하게 글을 쓸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할 것 같아서 블루투스 키보드 세트를 구입했다. 너무 좋아하셔서 쑥스러울 정도였다. 대성공�


>>>Worst 소비  3

1. 천 개의 파랑 1.4 

천선란 작가 추천을 받고 엄청난 기대를 했기 때문에 실망이 더 컸다. 설상가상, 원래 주문하고 싶었던 책은 <어떤 물질의 사랑>이지 천 개의 파랑이 아니었다는 걸.. 알고 나서 화까지 났다. 서점에 직접 가서 들춰보면서 책을 살 수 없고, 도서관도 못 가고 답답하다. 사실 책보다는 그냥 '제대로' 확인해보고 책을 소장하기로 결정할 수 있는 공간을 뺏긴 것 같아서... 


2. 배민 마라샹궈 2.2   

마라샹궈를 헝가리에 있을 때부터 너무나 먹고 싶어서, 집 근처에 있는 곳에서 시켰다. 동생은 맛있다고 했는데, 내 기준에는 -별 4개 정도였다... 강남에 있는 마라샹궈 맛집으로 꼭 다시 가고 싶어. 검증되지 않은 것을 추천을 받고 시켰다가 별로일 때는, 그냥 충동적으로 산 것보다 더 큰 스트레스를 준다. 


3. 머니 노트 1.4 

분명히 인터넷으로 예약주문까지 했는데, 부자 언니 유수진의 <머니 노트>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다음 해 로드맵을 작성해야 하는데 초조해졌다. 정리하다가 나오면 동생 주지 뭐!라는 마음으로 똑같은 다이어리를 한 권더 주문했다. 책이 도착한 날, 집 정리를 하느라고 쌓아둔 상자 사이에 포장봉투채로 발견했다. 후회되는 소비였지만 동생이 재무계획을 세우고 가계부로 열심히 쓰기 시작한 걸 보고 마음이 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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