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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 May 06. 2024

부질없는 인생살이지만 즐겁게



정말 살기 지겨운 날이다.
집이라는 것, 가정이라는 것 다 깨뜨려 버리고 싶다.
 
날마다 늦게 들어와 속을 썩이고 하루종일 대면기피증에 걸려 기분이 안 좋다.
내가 왜 결혼을 했을까 이런 엉망인 사람과 계속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맘 편한 날 없었다. 돈은 늘 십원도 없는 상태.
사는 집도 이게 뭔가. 애들 가르쳐도 자신도 생기지 않는다.
더러운 변소, 구질구질한 집안 모습, 좁은 방. 혜민이와 혜성이가 아니라면 백 번도 더 뛰쳐나갔을 요즈음의 생활.

돈이 조금 있으면 두 애 데리고 딴 데서 살고 싶다.

결혼이라는 굴레 속에서 생긴 두 아이를 어떻게든 잘 키워야 내 꼴 안 나지.

난 과거의 나도 싫다. 지금의 난 더 싫다.



    "아빠가 차 운전해 준다고 하니 차는 그냥 팔까 봐."

    운전하는 빈도가 줄었으니 그냥 차를 처분할까 하는 엄마에게 나는 결단코 안된다는 말을 했다.


    엄마가 원할 때 언제든 운전하고 다니는 게 낫지. 그럼 아빠가 안태워주면 아무 데도 못 갈 거야?


    그렇게 말은 했지만 사실 나는 엄마의 운전에 대해 정 반대의 입장이었던 일을 기억하고 있다. 나와 동생이 초등학교를 다닐 때 엄마는 운전면허를 따러 학원에 다니기 시작했다. 운전면허 수업은 주로 오후 시간대 동네 외곽에 있는 학원에서 이루어졌고 긴 시간 외출이 드물었던 엄마가 평소보다 몇 시간을 늦게 집에 오면 나는 엄마가 영영 돌아오지 않을까 걱정을 하곤 했다. 해가 질 쯤에는 그 불안감이 더 해서 더 어린 동생과 함께 엄마가 오고 있진 않은지 확인하려고 집 밖을 나서서 돌아다녀 보기도 했다. 그러다 집에 오는 길목으로 엄마의 모습이 보이면 드는 안도감과 동시에 어디 갔다가 이제 오는지 따지는듯한 성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면허 학원에 갔다 저녁 장을 봐서 귀가한 엄마는 왜 집 밖에 나와 있냐며 우리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왔지만 지금도 나의 뇌리에는 엄마가 사라져 버리진 않을까 불안해했던 심정과 엄마의 부재에 대한 거부감이 남아있다. 엄마는 그 뒤로 몇 번이고 떨어진 뒤 면허를 땄다.


    엄마에게 자유를 주면 엄마가 떠날 것 같았다. 속 썩이는 남편과 아이들. 낙이 없는 생활이 지속된다면 어떻게 떠나고 싶지 않을 수 있을까?


    육아일기로 당시 엄마의 삶을 추측해 보자면... 재미가 전혀 없다 할 순 없지만 전반적으로 힘든 생활을 지속하고 있는 엄마를 보고 있자니 엄마가 도망가서 자유롭게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계획을 지키기 어렵게 또다시 임신을 한 게 안타까웠고 뭐라도 할랍시면 아이들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게 정말로 답답할 것 같았다. 하루라도 몸이 가벼울 때 도망치든지, 이혼을 하든지 결단을 내리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러나 엄마에게 왜 도망치지 않았냐고 물을 수는 없었다. 그건 엄마를 응원하는 게 아니라 엄마의 삶을 단편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모든 선택을 엄마 탓으로 돌려버리는 무책임한 태도 같았다.


    무엇보다 엄마가 자유를 찾아 훨훨 날아가지 못했던 건 나와 내 동생들, 아이들 때문이라는 걸 나는 잘 안다. 출산과 육아를 통해 의무를 지도록 하고 그 책임을 지지 않았을 때 죄책감을 갖게 되는 엄마의 마음을 이용할 수 있는 건 모든 사회와 가족의 특권이다. 엄마에게 죄책감을 심어라. 열 살 남짓했던 나도 그 방법을 알고 이용할 수 있었다. 그것으로 나는 몇 십 년 동안 엄마의 세계를, 도망치고 싶었을 그 삶을 모르고 살 수 있었다.


 



부질없는 인생살이지만 즐겁게



너무 돈 걱정하지 말고 맘 툭툭 털고 편안하게 살아야 하겠다. 흰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다시 다짐해 본다.
부질없는 인생살이지만 즐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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