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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 May 08. 2024

밝고 명랑하며 꿈이 있는 인간




오늘은 내 나이까지 살면서 가장 기쁜 날 중에 하나다.
혜민이가 엑스포 아트홀에서 Violin합주를 하였다.
작은 별 변주곡이다.
연습할 때도 잘했지만 그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엄마 얼굴 찾아보고 웃더니 의젓하게 끝마쳤다.
아빠도 오셔서 혜민이가 끝내자 안아주셨다.
혜민아 정말 장하다
더 노력하고 꾸준히 연습해서 내년엔 Solo로 한번 연주해 보아라.
내가 뒷바라지 잘해줄 테니까.
눈물이 나올 것 같이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며칠 새에 의젓해진 혜민이가 대견스럽다.
내일은 약속대로 비디오 3개 <라이온킹, 둘리, 호호아줌마> 빌려 줄께.


    나는 아이를 키우는 기쁨을 알지 못한다. 내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고 어떤 희생도 각오할 수 있는 존재.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럽고 그 존재가 나의 전부가 되는 그런 기쁨. 그런 존재의 기쁨뿐만 아니라 괴로움 또한 알지 못한다. 모든 일에는 기쁨과 슬픔의 양면이 있으니 아이 키우는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엄마가 나를 키우면서 느낀 기쁨은 어느 정도의 기쁨이었을까?


    30여 년을 살았던 엄마가 인생을 통틀어 가장 기뻤던 날은 내가 네 살 때 바이올린 합주로 작은 별을 연주한 날이었다. 엄마가 의지 할 사람 없이 무척이나 힘들었던 날의 일기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읽다 보면 맨 끝에는 항상 내 이야기가 있다. 언제나 마음이 풀리는 지점은 순수하게 엄마만을 바라보는 내 얼굴을 봤을 때였다. 다행히도 겨우 말하고 걸어 다니던 시절의 나는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풀릴 만큼 귀여웠다는 거겠지. 안 좋은 상황에서는 무엇이든 보기 싫고 미웠을 텐데 몇십 년 전의 내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괴로움은 어느 정도의 괴로움이었을까?

    동생과는 종종 '우리가 엄마였다면 진작에 탈출하지 않았을까'라는 말로 엄마 속 썩였던 옛적 일을 회상하기 시작하며 엄마는 대단하다는 결론으로 에피소드를 마무리할 때가 있다. 엄마는 연고 없는 지역에 결혼하고 이사해 살면서 외부의 도움 없이 요즘 말로 독박 육아를 하며 아이 셋을 키운 장본인이다. 육아랑은 관련 없는 내가 여기저기서 주워들은 말로도 그 힘듦이 상상을 초월한다 들었는데, 무엇보다 경제적인 난관이 늘 그 시절의 엄마를 따라다녔으며 아빠는 여러모로 가정에 소홀한 점이 많았고 나와 동생이 피 터지게 싸운 것도 엄마를 지치게 하는데 한몫했을 것이다.


    내가 추측하는 만큼 큰 규모 그대로 엄마의 난관이 기록됐다면 육아일기는 지금보다 한층 심오해졌을 것이다. 어쩌면 육아일기장 말고 엄마에게는 다른 비밀 노트가 하나 더 있었을 수도 있다. 나는 내 비밀 노트에 앓고 있는 불안과 고민, 힘들었던 일을 쏟아내곤 한다. 시간이 지나고 노트는 그대로 남아있지만 언제나 내 기억 속 인생의 짙은 부분들은 즐거운 추억과 가슴 설레는 순간이다. 엄마도 비슷했을까.


    괴로운 일보다 기쁜 일을 많이 기록해 준 엄마가 고맙다. 내가 처음 말을 하게 되고 알게 된 이상하게 발음했던 단어들, 비디오테이프를 보며 따라한 말들, 처음 그린 그림, 엄마가 글을 쓸 때 펜을 빼앗아서 했던 낙서. 나의 생김새와 좋아하는 음식과 내가 아팠던 날. 작은 존재의 모든 것을 기록하며 엄마가 느낀 감정이 기쁨이라면 나는 그것을 통해 자란 아이가 틀림없다.





엄마가 아기에게 주는 말



나는 아이를 건강하고 영리한 아이로 키우려 한다.
그래서 아침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건강한 모습으로 커가길 빌며 스스로 노력한다.
그리하여 밝고 명랑하며 꿈이 있는 인간으로 커가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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