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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호 May 09. 2024

에필로그_일생에 단 한 번의 사랑


에필로그 ㅡ 일생에 단 한 번의 사랑




내가 엄마의 서랍에서 챙겨 온 육아일기는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더 이상 사적인 물품이 아니게 되었다.

내 집에 방문한 많은 사람이, 특히 여러 딸이 엄마의 육아일기를 실제로 읽었다. 딸들은 아빠가 너무한다고 소리치고 같이 바닥에 앉아 페이지를 뒤적거리며 엉엉 울기도 했다. '나를 위해 투자하는 돈을 아끼지 말자. 영어 공부를 놓지 말자. 꼭 쟁취하자. 강한 내면의 힘을 길러야 한다. 맑은 정신을 유지하자.' 등등 엄마의 일기장을 조각조각 뗀 것은 나의 SNS나 일기장과 똑 닮았다. 글씨체만 달랐지, 평소 내가 하는 말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 같은 문단도 많아 강한 내력에 놀라며 친구들과 같이 웃었다.


글을 쓰기 위해 다시 한번 육아일기를 펼치는 게 신나고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왔는데 눈앞에 빤히 펼쳐질 엄마가 겪을 재난에 대해 손발이 묶인 채 바라만 보는 사람이 된 기분이랄까. 엄마의 글을 옮겨 쓸 때는 나는 이 글을 이야기로 옮겨 쓰려는 작업자일 뿐이라고 자기 암시를 하곤 했다.


사실 육아일기에는 사랑 가득한 장이 더 많았다. 내 발자국과 낙서, 내가 그린 그림들이 있고 엄마의 낙서나 유머도 곳곳에 남아있다.


엄마의 글을 읽으면서 엄마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끝없이 했다. 아기였던 내가 엄마의 영향을 받고 자라 이렇게 닮은 기질을 갖게 되었을까? 완전히 독립된 나 자신이라는 생각은 나의 착각이고 사실 나는 엄마의 자아와 완벽하게 연결되어 있는 걸까? 엄마와는 모녀 관계의 유대감을 넘어서 한 시대를 살면서 인간으로서 느끼는 이해와 여성으로서 가지게 되는 결속이 생겼다. 엄마의 육아일기가 사적인 것에서 나로 인해 세상에 나온 글이 된 만큼 나는 이 연결을 뚜렷하게 기억할 작정이다.


P.S. 육아일기 덕분에 다른 집 딸들에게 밤새 어디에서도 못 들을 재밌는 얘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같이 내 방 한구석에 엎드려 나눴던 엄마들의 이야기, 외할머니의 이야기, 언젠가 꼭 쓰고 싶은 그 시대와 가족의 이야기들이 내 머릿속에 남아있다.


    




일생에 단 한번의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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