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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임용 Dec 31. 2019

'19년의 베스트

음악과 관련된 무언가를 항상 하고 싶었습니다. 2019년은 그런 면에서 저에게 의미가 큰 해였네요. 정말 작지만, 어찌 됐든 첫 번째 발걸음을 뗐다는 것에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음악을 참 많이 들었습니다. 2019년을 마무리하면서 이에 대한 정리를 한 번 해보고 싶었습니다. 재밌게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올해의 아티스트 : 백예린


자신이 만족할 수 있을만한 작업물이 나올 때까지 몇 번이고 수정해서, 리스너가 스스로 이 아티스트의 앨범을 너무나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까먹을 지경이 돼서야 마침내 음반을 발매하는 아티스트들이 있다.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 E SENS의 [The Anecdote]를 처음 들었을 때의 벅찬 마음은 그 기다림을 충분히 보상해주었지만, 그 만찬을 배부르게 즐긴 후엔 어떤 마음이 드는가. 그만큼의 시간을 또 기다려야만 이 달콤함을 다시 맛볼 수 있다는 생각에 현기증을 느끼게 된다.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새로운 음악을 많이, 자주 듣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하다. 백예린은 7곡 분량의 EP와 18곡 분량의 정규 앨범 사이의 공백기가 9개월밖에 되지 않았다. 그 사이에도 웹드라마 OST와 온스테이지 디깅클럽서울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등 꾸준히 작품을 만들었다. 또한 쉬지 않고 다양한 무대를 소화하며 대중들과 직접적으로, 또 유튜브 라이브 영상으로 간접적으로 계속해서 자신을 알렸다. 그 덕분에 백예린은 그 어렵다는 대중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잡으면서 '한국인 최초 영어 가사로 차트 석권'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쥐게 되었다. 올해의 뮤지션은 단언컨대 백예린이다.


전반기 발매된 [Our love is great]는 백예린의 성장을 완벽하게 알린 앨범이었다. 풋풋한 아이 같이 자신의 마음을 순수하게 표현하던 그녀는, 어른이 되어 자신의 안과 밖에 대한 깊은 고민과 사색을 하게 됐고, 대중은 오히려 그 탁한 감성에 취향을 찔러버렸다.


그 감성을 많은 이들에게 각인시키고 난 이후로 백예린은 더욱 자유롭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갈 수 있었다. 이제 그녀의 입에서 한국어가 나오건 영어가 나오건, 그녀가 웃던 울건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백예린의 노래에 집중한다. 그것이 이번 달 발매된 정규 앨범 [Every letter I sent you]의 성공을 이끌었다고 볼 수 있겠다. 어쩌면 본인의 이야기를 한가득 담은 이 앨범을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이렇게 달려왔는지도 모르겠다.


백예린 -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거야





올해의 신인 : 별보라


해체와 결성이 빈번한 한국 밴드 씬에서, 원래 활동하던 아티스트가 또 다른 이름으로 작품을 발매했을 때 신선함을 주는 경우는 흔치 않다. 별보라에 대해 이야기할 때 아시안 체어샷의 보컬이자 베이시스트였던 황영원이 드럼 스틱과 밴드의 중심을 잡았다는 것을 맨 처음 언급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때문에 별보라는 겉보기엔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별보라의 메인은 황영원이 아니다. 오히려 무대 앞에 나란히 선 젊은 두 뮤지션이 별보라의 포인트고, 그래서 황영원의 새로운 밴드라는 딱지를 떼고 보면 별보라는 정말 신선한 신인이다. '황영원과 두 명의 신인 세션'이라는 첫인상과 달리 황영원은 젊은 기타리스트와 베이시스트의 패기와 개성이 넘치지 않도록 잡아주는 소년만화의 스승 같다. 그 안에서 기타리스트 이민재와 베이시스트 오종혁은 자신의 세계를 점진적으로, 또 어떨 땐 과감하게 보여준다.


<두 우주>, <고추잠자리>, <Carstar>, <미래연인>으로 이어지는 네 곡의 싱글을 들어보면 한 밴드가 만든 것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각 작품끼리의 연관성이 없는 듯하다. 그들이 인터뷰에서 밝힌 별보라의 장르는 '사이버 펑크'다.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겠지만 1980년대 일본 만화영화의 상징과도 같은 작품 '아키라'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 순간 모든 퍼즐이 맞추어진다. 찌릿찌릿한 전자 효과와 로파이 질감을 토대로 각기 다른 세 가지 개성이 작품마다 적절하게 분배된 별보라의 음악은, 한 장면의 분위기에 모든 음악을 맞추려는 시도가 아니다. 오히려 기승전결이 있는 하나의 영화 속 부분 장면들을 하나씩 묘사했다고 상상하면, 연관이 없어 보이는 음악들 사이에서 또렷한 흐름이 떠오른다.



Purple Star, Star Storm, Look at the star


별보라라는 밴드명에 담긴 세 가지 다른 뜻은 별보라의 음악이 그런 것처럼 서로 연관이 없어 보이지만, 또 한편으론 한 가지 이야기로 묶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별보라의 음악적 방향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보라색 별, 폭풍처럼 쏟아지는 저 별들, 저 별들을 보라.


별보라 - 두 우주





올해의 음반 : 검정치마 [THIRSTY]



2019년은 잔나비의 [전설], E SENS의 [이방인], 천용성의 [김일성이 죽던 해] 등 어떤 앨범을 최고로 뽑아도 이견이 없을 만큼 앨범 단위의 수작들이 많이 나온 해였다. 그중에서도 연초에 발매된 검정치마의 [THIRSTY]를 올해 가장 좋았던 앨범으로 뽑고 싶다.


[THIRSTY]는 단순한 사랑 이야기도 아니고 단순한 이별 이야기도 아니다. 영화 '아메리칸 뷰티'라는 모티브에 맞추어 감상하는 것도 좋지만, 그것만으로 앨범 전체를 이해하려는 시도는 이 음반을 절반만 즐기는 것이다. 트랙을 하나씩 뜯어보며 짧은 단편 영화 모음집을 보듯 감상할 수도 있고, 전반부와 후반부를 나누어 인트로와 인터미션이 있는 연극처럼 감상할 수도 있다. 앨범 소개글, 앨범 속 성경 구절, <틀린 질문>과 <Bollywood>로 대중들에게 전하는 메시지, 전작 [TEAM BABY]와의 비교까지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있다. 온갖 이슈와 해석의 여지가 있음에도 전혀 어수선하지 않은 건 순전히 검정치마의 역량 덕분이다.


어떻게 음악으로 이런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 화려한 효과나 과장 섞인 표현으로는 이렇듯 갖가지 주제를 모아 선이 굵으면서도 아름다운 작품이 나오지 못했을 거다. 많은 것을 덜어낸 대신 매력적인 목소리와 개성을 살린 악기 자체의 소리를 담았고, 간담을 서늘하게 할 정도의 반전과 완벽한 기승전결에서 나오는 희열이 적재적소의 타이밍(곡 구성뿐 아니라 전체 트랙리스트 맥락상 모두)에 등장한다. 무엇보다 한 글자 한 글자 벼려낸 듯한 가사는 이 앨범의 주인공이다. 어떻게 음악을 매개로 이런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라는 물음은, 마음을 후비는 가사를 한 줄 한 줄 읽다 보면 도리어 음악 말고 다른 매체론 절대로 이런 이야기를 풀어낼 수 없었을 것이라는 수긍으로 바뀌게 된다.


검정치마 - 섬





올해의 싱글 : wave to earth <wave>



국내외를 막론하고 2019년 밴드 음악의 가장 큰 동향은 베드룸 팝(bedroom-pop)이라는 개념으로 대표되는 듣기 편한 음악이었다. 아직 장르라고 부르긴 어렵겠지만 베드룸 팝이라는 이름 아래 수많은 아티스트가 나타났다. 하지만 편안함을 위해 곡의 모든 부분을 뭉툭하게 갈아내다 보면 결국 사람의 마음을 찌를 수 없다. 때문에 베드룸 팝이 유행할지라도, 개별 곡이 누군가의 베스트가 되긴 어렵다. 이러한 특성상 대부분의 베드룸 팝 작품들은 서로 비슷한 인상을 줄 수밖에 없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상적인 작품은 분명 있었다. 자신들의 개성은 깎아내지 않고, 불필요한 자극만을 모두 갈아낸 음악. 대한민국에서 이것을 가장 뛰어나게 해낸 단 한 곡은 wave to earth의 <wave>다.


밴드 더 폴스의 프론트맨 김다니엘과 재즈 쿼텟 Ant is Fourmi In Frence의 드러머 신동규가 뭉쳐 결성한 신인 밴드 wave to earth는 올 8월부터 공식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김다니엘이 정의 내린 wave to earth의 주된 감정은 '직관적이고 듣기 좋은 사랑 노래'다. 이 중 주목해야 할 단어는 '직관'이다. <wave>는 베드룸 팝의 전형적인 문법을 따르는 듯하면서도, 김다니엘이 더 폴스에 보여주었던 강렬한 인상이 곳곳에 묻어난다. 그것은 wave to earth의 듣기 좋은 사랑 노래를 선명한 형태로 응고시키고, 이를 직관적으로 전달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때문에 흘러가는 BGM 같은 느낌이면서도 귀에 착 감기는 기분이 들고, 꽉 찬 플레이리스트를 비우며 희미한 인상의 베드룸 팝 트랙들을 지워가는 순간에도 <wave>를 살아남게 한다.


wave to earth - wave





올해의 뮤직비디오 : WOOZE <I'll Have

What She's Having>



WOOZE의 테마는 '카오스'다. 그들의 음악엔 동양과 서양,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뒤섞여 있다. 카오스 안에서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WOOZE의 음악적 세계관은 완벽한 계산과 구체적인 요소들을 통해 대중에게 전달된다.


<I'll Have What She's Having>의 뮤직비디오는 이 밴드의 개성을 집약한 작품으로, 비주얼과 스토리, 주제의식과 그것에 대한 상징까지 모든 것이 아주 적절한 올해 가장 잘 만든 뮤직비디오다.


뮤직비디오는 미래지향적인 음악과 복고풍의 배경을 대비함으로써 시간상의 괴리를 담아냈고, 동양적인 냄새를 물씬 풍기는 카바레 무대에 올라 영어로 노래를 부르는 서양 밴드 WOOZE의 모습을 통해 공간적인 괴리를 표현했다. 네 남녀와 WOOZE 두 멤버의 입장을 계속해서 바꿔가면서 전개되는 스토리는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며 생기는 부러움'이라는 곡의 주제를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WOOZE만의 세계로 완벽하게 녹여냈다. 알록달록한 조명과 WOOZE의 퍼스널 컬러인 강렬한 옐로우가 어우러진 색감이 자아내는 영상미는 덤이다.


WOOZE- I'll Have What She's Having





올해의 발견 : 사뮈

 


검증된 좋은 음악을 찾고 싶을 때 가장 타율이 높은 방법은 현직 뮤지션이 직접 듣는 음악을 찾는 것이다. 그보다 더 신뢰도가 높은 건 뮤지션이 자신의 작업물에 피쳐링을 부탁한 아티스트의 음악을 찾아 듣는 것이다. 올해 실리카겔의 김민수가 놀이도감이라는 이름으로 솔로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첫 앨범의 타이틀곡에 사뮈를 참여시켰다. 발음하기도 힘든 이름의 이 낯선 아티스트가 가진 중저음의 목소리는 중후한 편안함보단 알 수 없는 쓸쓸함이 돋보인다.


그 목소리에 사로잡힌 뒤 사뮈의 개인 작품들을 들어보면 더욱 그 매력에 빠져든다. 그의 목소리에 충분히 매료되면 어느 순간 가사에 집중하게 된다. 깊이 있는 주제와 참신한 표현에선 뮤지션으로서의 고민과 더불어, 하나의 인간으로서 진지한 고뇌의 순간들이 음악에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다 갑자기 소름을 불러일으키는 기타 솔로가 고막을 때리는 순간, 음악이 줄 수 이는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갑자기 어디서 튀어나온 아티스트인가 싶지만, 사실 사뮈는 2016년부터 활동을 시작했고, 많은 작품을 발매해왔다. 2019년 조금씩 입소문을 타던 사뮈는 한 해를 마무리하며 두 곡을 담은 싱글 앨범 [두통 없는 삶]을 선보였다. 2020년에도 사뮈의 행보를 주목해야 한다.


사뮈 - 두통 없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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