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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여행에서 생각한 것들 33

리스본 공동묘지

by 장재형

대학생이었을 때 나는 답답하고 고민이 될 때 가끔 합정동에 있는 외국인선교사묘지를 찾아갔다. 묘비를 하나씩 보면서 이 사람들은 몇 살에 이 땅에서 삶을 마쳤을까 생각했다. 오래 있지 않아도 그곳에 있으면 내 인생이 좀 더 진지하게, 감사하게, 그리고 명확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포르투를 떠나기 전에도 기차역 가다가 공동묘지가 있어 들렀었다. 꽃을 들고 들어가던 할머니, 혼자 벤치에 앉아 사색에 잠겨 있던 할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리스본을 떠나기 전에도 묘지에 들렀다. 마침 버스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빽빽한 묘비 사이의 길을 걸으며 다양한 묘비들을 보았다. 가지각색의 모양이었지만 모두 회색빛의 돌이었다. 마침 흐린 하늘에 비가 툭툭 내리고 있어 ‘을씨년스러운’이라는 형용사를 쓸 수밖에 없는 공기였다. 주변에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습한 냄새가 살짝살짝 났다.


여행에서 묘지에 가보는 건 좋은 일이다. 현지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가 생긴다. 여행의 분주함 속에서 차분하게 이 땅의 일상의 역사를 상상해 볼 수 있다. 게다가 서양의 묘지는 영화 속 장면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여행에서 죽음을 생각해 보는 건 좋은 일이다. 사실 여행도 삶과 죽음의 축소판 아니던가. 인생의 시작과 끝을 비유할 때 ‘연극’과 ‘여행’만큼 잘 어울리는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탄생과 죽음은 지구로의 여행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난 포르투갈 여행이라는 연극의 막장에 서있다. 여러 가지를 눈으로 보았고 입으로 맛보았고 귀로 들었고 몸으로 체감했지만 지나간 장으로 흩어져 기억에 간신히 남았다. 이 여행에서 짜증도 났고 싫증도 있었지만 그때마다 아내의 말이 생각난 덕분에 다시 무릎에 힘을 주고 마음에 힘을 내어 밝고 재밌게 살 수 있었다.


묘지에서 여행을 마쳤다. 이 여행의 묘비에 뭐라고 쓸 수 있을까. 어떤 비석을 남기면 좋을까. 이 여행은 어떤 의미가 될까.


무덤 사이의 산책을 마치고 우산을 접고 버스를 탔다. 이제 공항으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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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포르투갈 여행에서 생각한 것들> 1편은 여기 있어요

https://brunch.co.kr/@realmd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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