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경유하던 밤
파리. 이름만으로 낭만을 줄 수 있는 도시가 파리 말고 또 어디가 있을까.
리스본에서 돌아가는 길에 파리에서 환승을 했다. 비행기와 비행기 사이 시간은 12시간. 파리를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나는 이번에 파리 한번 걸어보자는 마음에 이 비행기를 선택했었다.
리스본 공항에서 출발할 때 공항 서비스도 느리고 세금 환급 서비스에서도 약간의 트러블이 있었다. 여행 막바지에 이런 짜증 나는 일이 생기나 했지만 역시 아내의 목소리가 알고리즘처럼 머릿속에 울려서 다행히 잘 지나갈 수 있었다. ‘재형아, 이런 일로 화내지 마. 안 좋은 마음으로 여행을 마칠 거야?’
리스본에서는 피곤해도 느끼지 못하던 몸이었지만 비행기에 타자마자 온몸에 피로가 몰아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공항에서 짜증은 내 몸이 약해지며 마음의 벽이 얇아졌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냥 직항탈 걸 뭐 파리까지 걸어보겠다고 이 비행기를 선택했나 후회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12시간 계획을 짰다. 밤 10시 40분쯤 공항 도착한다. 공항에서 빠르게 짐을 맡기고,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면 1시간이면 숙소 도착할 수 있다. 숙소에서 바로 잠들어 6시에 일어난다. 숙소에서 빠르게 나와 아침 일찍 첫 빵을 먹고 노트르담 대성당부터 에펠탑까지 갔다가 센 강을 건너 걷다가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신다. 그리고 지하철로 다시 공항으로 온다. 12시간은 모두 계획대로 움직여야 피곤하지도 않게 파리 산책을 할 수 있다.
나는 비행기가 착륙하면 여유 있게 천천히 내리는 편인데 이번에는 제일 먼저 안전벨트 풀고 짐을 내렸다. 비행기에서 내려 빠르게 걷기. 시간대로 갈 수 있어. 미션 파서블이다.
짐 맡기는 곳이 있다는 것도 확인하고 왔었다. 대충 위치는 알았지만 공항에 내리니 위치 파악이 되지 않아 직원에게 물었다. 저쪽으로 가면 되는구나. 빨리 가서 맡기자. 왜 안 나오지. 공항 끝인데. 잘못 알려줬나. 다시 확인하니, 이런, 반대편이었다.
괜찮아, 괜찮아, 속으로 말하고 열심히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샤를 드골 공항은 꽤, 아니 아주 많이, 넓었다. 밤에 도착한 터라 공항에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내가 가는 길이 맞나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발이 무거워지고 피곤함이 어깨를 잔뜩 짓눌렀다.
아, 이건 아니잖아. 짐 보관소 문은 아주 깔끔하게 닫혀 있었다. 클로징 시간을 확인하지 않은 건 내 탓이지만, 그래도 밤에 오는 승객들에 대한 배려가 없다며 속으로 징징거렸다.
이제 지하철 타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더 이상 뭔가를 찾아 걸어 다닐 힘이 없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고 눕고만 싶어졌다. 마침 저 앞에 택시 타는 곳이 보였다. 내 여행의 원칙을 깼다. 그냥 택시 타자. 뭐 얼마나 하겠나. 지금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았다.
좀 기다리니 내 순서가 왔고 난 아랍계의 남자가 운전하는 택시를 탔다. 주소를 보여줬고 그는 아무 말도 없이 차를 몰았다. 밖은 어두운 밤이었고 길은 인천공항에서 서울로 가는 길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그리고 나는 비몽사몽이었다.
도착해서 얼마냐 물으니 65유로를 부른다. 거의 10만 원이다. 사기당한 거 같기도 하고, 파리 물가가 원래 이렇게 비싼가 싶기도 하고, 이 상황에서 돈을 안 낼 수는 없고,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카드를 냈다.
내가 예약한 숙소는 노트르담 대성당에서 걸어서 15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한 방에 2층침대 3개 있는, 정말 잠만 자는 정도의 호스텔이다. 체크인만 하면 누울 줄 알았는데, 내 앞에 3명이나 기다리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뭐가 문제인지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고, 혼자 야근하는 직원은 번역기를 써가며 설득하다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내 마음도 허탈해졌다.
우여곡절 끝에 작은 침대에 누웠다. 다음 목표는 5시간 좀 안 되게 자고 6시에 나가는 것이다. 그런데 왜 타월은 안 줬을까. 이런 생각하다가 잠이 들었다.
ps.
<포르투갈 여행에서 생각한 것들> 1편은 여기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