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파리, 굿바이 파리
6시 알람이 울리기 전에 눈이 떠졌다. 분명 잘 때는 신발이 나 포함해서 두 켤레만 보였는데, 지금은 여섯 자리가 모두 찼다.
대충 씻고 정리하고 나왔다. 파리는 아직 밤이었다.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 시간에 문을 열고 빵을 굽고 있는, 그 정도로 성실한 가게도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센 강을 따라 걸었다. 좀 걷고 나니 노트르담 대성당이 나타났다. 그동안 사진 속에서 본 모습은 ‘아름다운’이 어울렸는데 직접 보니 ‘육중한’이 더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주변 건물이 별로 높지 않아서 마치 소녀들 사이의 마동석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거리와 시간을 보고 대략 계산을 해보니 지금부터 꽤 서둘러 걷거나 뛰어야 했다.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퐁네프 다리, 퐁피두 센터를 다 보고 다시 숙소로 가서 캐리어를 갖고 나와 역으로 가야만 했다.
센 강을 따라 러닝 하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다. 나도 그들만큼은 아니어도 속도를 높였다. 센 강을 따라가다가 한강유람선에서 일하던 시절 자주 비즈니스 모델 비교했던 파리 유람선 바토무슈를 봤다. 문자와 숫자로 보던 바토무슈를 이제야 드디어 보다니. 시간이 없어 자세히 보는 건 다음 기회로.
퐁네프 다리도 건넜다.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의 장면이 기억나지는 않아도 그 영화에서 느꼈던 감정은 희미하게 떠올랐다. 줄리엣 비노쉬가 파리보다 아름다웠다는 것도.
루브르 박물관의 피라미드는 실제로 보니 지하상가 아케이드 같아 보여 좀 실망했다. 그동안 사진으로 본 건 훨씬 크게 상상했는데. 역시 무엇이든 사진으로만 보면 그걸 안다고 할 수 없다. 물론 박물관은 내부의 작품들이 본질이지만, 내게 허락된 시간은 많지 않기에, 다음 기회로.
아침 햇빛이 파리를 서서히 채워갔다. 또 열심히 달려 에펠탑까지 갔다. 멀리서도 보고 가까이서도 봤지만 이렇게 런닝맨 미션하듯 달리니 그냥 이게 에펠탑이구나 생각까지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처음 세워졌을 때 흉측하다고 말하며 싫어했다는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은 이해됐다. 파리의 서정적인 그림에서 갑자기 공격적인 쇳덩이가 나타나 서있는 느낌이 살짝 엿보였다.
열심히 빠른 속도로 걸었다. 아침 출근길에 자전거로 다니는 사람들이 참 많이 보였다. 갑자기 나타난 처칠 동상을 보며 반가웠다. (처칠은 내가 존경하는 사람 중 하나다) 한국인 관광객 무리가 보인 것도 반가웠다. (왜 한국인은 여행 와서 서로 보면 오히려 더 시선을 피한다. 왜 그럴까) 밤부터 걸으니 아침 크라상을 기다리는 줄도 반가웠다. (서울 크라상이 더 맛있었다.)
퐁피두 센터 앞에 왔을 때는 마음이 더 급해져 사진만 찍고 바로 지나갔다. 괜한 욕심으로 힘들기만 하고 전혀 즐기지 못했다. 실제로 보는 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짧은 시간에 그렇게 열심히 달렸는지. 이 시간의 성과는 그냥 거기 봤는데 별거 없더라 하는 쓸데없는 여행 후기만 늘어난 것뿐이다.
공항 가는 지하철 타러 가는 길은 천천히 걸었다. 센 강을 보며 주변을 하나씩 하나씩 보았다. 그제야 파리의 아름다운 순간들이 눈에 들어왔다. 바쁜 마음은 선하지 않다. 선해야 아름다움을 허락받을 수 있다. 다행히 이 시간 덕분에 파리에 다시 올 마음이 생겼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이 반갑게 느껴졌다. 10일 동안 쉬지 않고 걸었다. 지치는 게 당연했다.
무엇보다 아내가 보고 싶었다. 아이들도 보고 싶었다. 서울 가는 비행기 탄다고 어머니께 연락드렸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아빠가 온다고 말해줬고, 첫째는 사실 아빠가 보고 싶었는데 참았다고 고백했다. 철없는 아빠의 여행은 여기까지였다.
ps.
<포르투갈 여행에서 생각한 것들> 1편은 여기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