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다 쓰고 나니
포르투갈 여행을 준비하면서 여러 가지 다짐을 했었다. 매일 에그타르트 먹기, 에어비앤비에서만 자기, 비행기에서 책 읽기, 자연 속을 걸어보기, 그리고 매일 글쓰기.
여행에서 글을 쓰는 건 여행의 시간을 더 넓고 더 깊게 파는 좋은 방법이었다. 게으른 내가 매일 쓰도록 글의 형식은 편지로 했고 받는 사람은 아내로 정했다. 글 쓰는데 너무 시간을 쓰지 않도록 시계를 보며 30분 내에는 마치려고 했다. 그렇게 매일 썼다.
서울에 돌아와 포르투갈 여행기를 풀어서 쭉 써보기로 했다. 아내에게 쓴 편지가 있기에 그걸 바탕으로 한 꼭지씩 잡아 썼다. 제일 길었던 글은 A4 한쪽을 넘기기도 했다. 어떤 날은 좀 더 정확하게 쓰고 싶어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고, 어떤 날은 빨리 마치고 싶어서 최대한 담담하게 썼었다.
이 기록의 과정에서 내 목표는 3가지였다.
최우선 목표는 ‘끝내는 것’이다. 종종 내가 사람들에게 책을 써보겠다고 말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의심되던 부분이 몇 가지 있다. 그중 하나는 ‘나는 끝까지 쓸 수 있는 사람인가’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좋은 재주를 가졌다 하더라도 글은 끝내지 않으면 영원한 미완성이다. 처음 시작하면서 어떻게 끝날지 몰라도 한국에 돌아오는 마지막 비행기까지 써보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침내 글 속의 나는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무사히 탑승했다.
나는 글을 쓸 때 항상 개요부터 다 짜는 스타일이다. 평소 성격은 J와 P를 오가지만, 글을 쓸 때는 J에 가깝다. 거의 모든 구성을 계획하고 거기에 단어와 문장을 부어서 완성하는 방식을 추구한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가볍고 자유롭게 글을 쓰려고 하면 내가 잘못한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계속 이어졌다. 이번에는 무조건 구성을 하지 않았다. 그냥 한 문장을 쓰면 그 뒤에 다른 문장이 따라오고 다음 문장이 이어졌을 뿐이다. 마지막까지 이런 식의 글쓰기로 나를 훈련시켰다.
마지막으로 ‘무겁지 않게 쓰기’였다. 나는 글을 좀 쓰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부터 혼자 진지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게 장점일 때도 있지만 (난 진지함을 좋은 미덕이자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읽는 사람이 쉽게 읽지 못하게 할 때가 많다. 위트까지는 바라지 않아도 나름 최대한 진지한 부분은 빼면서 썼다. (몇몇 소재는 쓰다가 아예 다 지웠다) 동시에 솔직하게 써야 한다는 원칙을 스스로 꾸준히 상기하면서 썼다.
일주일이면 다 쓰겠지 생각했지만 25일 정도 시간이 걸렸다. 주말엔 거의 쓰지 못했으니 실제로 쓴 날은 18일 정도 된다. 지금 쓰는 글까지 포함하면 36편. 분량은 200자 원고지 기준 약 295매.
아무도 안 시켰는데 왜 사서 고생하나 하는 마음이 가끔은 들었다. 매일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했기 때문에 나에게도 데드라인이 있었다. 글을 쓰는 게 쉽게 나가지 않을 때가 있었고,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은 날도 있었다.
그래도 몇몇 분들께서 좋아요도 눌러주시고, 잘 보고 있다고 말도 건네주시면, 쑥스러우면서 뿌듯했다. 덕분에 부족한 솜씨로 끝까지 썼다. (다들 잘 읽나 싶어서 중간에 깜짝 퀴즈를 넣어볼까도 생각했다 ㅎㅎ)
이제 다음 시리즈를 또 써보려고 한다. 계속 이렇게 쓰고 쌓고 쓰고 쌓으면 조금이라도 더 나은 글을 쓰지 않을까.
잘 읽어주신 분들께, 오브리가두(감사합니다)!
* 작년 11월에 인스타그램에 먼저 연재했던 글을 브런치에 옮긴 글입니다.
https://www.instagram.com/lion_bruce
ps.
<포르투갈 여행에서 생각한 것들> 1편은 여기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