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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에게 배운 일 22 : 금지와 편법

금지가 많아지면 편법이 판을 친다

by 장재형

22. 금지가 많아지면 편법이 판을 친다


아버지는 말하셨다.


금지가 많아지면 편법이 판을 치는 거야. ‘이것이 옳다’ 외치며 무언가를 하지 말라는 말은 쉽지. 그런데 옳고 그름의 문제로 사람들은 잘 변화하지 않아.


사람들이 과연 몰라서 그런 걸까. 아니야. 사람들의 욕망을 이해할 줄 알아야 돼.


경제학에서도 나오는 거야. 술을 못 마시게 금주법을 시행했더니 오히려 밀수가 판을 치고 마피아가 힘을 얻었잖아. 크게 보면 오히려 편법이 더 손해야. 그러니까 그냥 금지를 안 하고 가는 게 나을 수도 있어.


세상은 정의로 돌아가지 않아. 옳은 것을 생각하기 전에 사람들이 뭘 좋아하나부터 생각해. 이건 모든 조직이 마찬가지야. 사소하게 두 사람만 있어도 생각해야 하는 거야.


상대가 좋아하는 걸 알면, 거기에 맞춰 옳은 쪽으로 유도하는 거지. 옳다고 생각하는 걸 가르칠 필요는 없어.


아들은 들었다.


아들은 이상주의자다. 그는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많은 것을 걸려고 하는 사람이다.


아들은 아버지 덕분에 계산법을 배웠다. 옳지 않은 것을 바로잡았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얼만큼인지 예상해서 계산한다. 크지 않다면 굳이 하지 않는다. 조직의 편법은 언젠가 신뢰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들은 정의가 아니라 욕망으로 세상을 해석하는 법을 배웠다. 무엇을 하자고 말하는 법 보다 무엇을 하면 당신에게 뭐가 좋다고 말하는 방식을 익혔다.


아들은 가치의 기준이 점점 흐려져 갔다. 바꾸기 어려운 걸 바꿀 수 없는 거라고 읽었다. 옳지 않은 것을 다 이유가 있을 거라고 넘어갔다. 생각할 일이 많아서 생각할 수 없다며,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기준을 바쁨의 유무에 뒀다.


아들은 오히려 편법에 가까운 아저씨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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