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가 받은 축복에 대하여
23. 대한민국은 축복받은 나라다
아버지는 말하셨다.
이 땅의 역사를 보면 이렇게 살아온 것도 참 신기해. 별일이 다 있었는데 뭔가 돌파구가 생겨.
해방 이후를 잘 생각해 봐. 그때 네가 살았다면 뭘 먹고살았겠니. 그런데 뭔가 일들이 일어났어. 좋은 일들이.
왜 그럴까. 왜 이렇게 됐을까. 한국인의 근성이다라는 말도 있고, 위대한 사람들이 나타나서 그렇다는 말도 있고, 여러 가지 이유들을 말하는데....
난 축복받았다는 말 외에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고 생각해. 그렇게 나쁜 일들이 생겼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누구 한 명이 잘했다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야. 그렇게 따라가다 보면 ‘축복’이란 말 외에는 답이 안 보여.
아들은 들었다.
아버지는 경제 분석을 오래 하셨다. 그는 IMF 같은 일도 미리 앞서 예상하셨다. 아무도 안 들어줬지만.
아들은 성인이 되어 아버지가 예상한 일이 몇 년 뒤에 일어나는 걸 보는 신기한 경험을 종종 했다. 아버지는 예언을 하지만 거기에 맞춰서 돈 벌 궁리를 하지는 않으셨다. 그저 나라를 걱정하셨다. 그렇다고 뭔가 큰일을 도모하지는 않으셨다.
비관주의자이면서 아버지는 낙관주의자였다. 아버지는 이 나라의 역사를 축복으로 해석했다. 경제학도로서 이성적이지 않은 관점 같아 보였다.
빛나는 경제성장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한 말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근거는 20세기부터 지금까지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역사에 있었다.
아들의 기억 속 아버지는 살면서 나라가 망조라는 말을 더 많이 했다. 아들은 아침부터 기분 나쁜 소리 하지 말라고 푸념했다. 저녁에는 하루를 마치는 시간인데 기분 나쁜 소리 하지 말라고 투덜댔다.
그래도 아버지는 결국 축복을 말한다. 산전수전 겪은 노인은 축복을 보는 눈을 가졌다. 그는 아들의 사전에 거의 펴보지 않은 면에 쓰인 단어를 아들이 잊을 수 없게 했다.
‘축복의 나라’라는 생각은 아들이 무슨 일을 하든 장기적인 계획을 그릴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지금 어려워도 결국 축복 때문에 잘될 거라는 믿음. 실로 ‘메리 크리스마스’가 어울리는 아버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