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와 그다지 다를 것 없던 날이었다.
회사에 다녀왔고, 시터를 퇴근시켰고,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밥 먹고 이런저런 일들을 했던, 그냥 그런 날이었다.
근데 그 날은 유난히도 힘이 들었다. 아이들이 쉬지 않고 불러대는 '엄마!' 소리가 진저리 나게 듣기 싫었고,
내 곁에서 이것저것 하는 것도 귀찮고 힘들기만 했다.
간절히 바랐다.
신랑, 제발 빨리 좀 와줘. 나 좀 구해줘
저녁 9시가 지날 즈음, 드디어 띡띡띡 문소리가 들렸고, 그 순간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찌할 수가 없어서 울먹이며 '나 나갔다 올게'하고 집을 뛰쳐나왔다.
집은 나왔는데, 갈 데가 없었다. 나는 운전도 못한다. 멀리 가려야 갈 수도 없다.
그냥 울면서, 아파트 단지를 걸었다. 모기에 뜯기며 벤치에도 잠시 앉았다.
밤이라서 어둑어둑한 게 다행이다 싶었고, 한 시간여 지나고 나니 마음도 가라앉았다.
대책 없이 왜 그런지 모르겠다며 울고 들어온 마누라에게,
신랑은 앞으로 본인이 일찍 들어올 때 종종 혼자 나갔다오라고 했다.
왜 눈물이 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육아의 고단함과, 오롯이 아이들을 책임져야 한다는 부담감과, 체력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 많은 일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해야 하는 일들의 무게감에 짓눌린 마음이 견디지 못하고 터진 게 아닐까.
아무튼 힘든 마음을 달래준 건 오롯이 혼자 있는 잠깐의 시간이었다.
평소 나는, 아이들을 내가 등원시키고, 회사를 가고, 돌아오면서 아이들 하원 시키고 장을 보고,
집에 와서 아이들을 먹이고 씻기고, 그리고 아이들과 한 방에서 같이 자고, 다시 다음날 똑같은 일정을 소화한다.
눈뜬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심지어 잠자는 동안에도, 혼자 있는 시간이 1분도 없다.
그래서 내가 스몰 럭셔리, 작은 사치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가장 먼저 떠오른 대답은 '나만의 시간'이었다.
(아이들이 떠들지 않고, 쉴 새 없이 엄마! 를 불러대지 않고,
먹이고 재우고 씻기는, 기본적인 보육활동을 안 해도 되는 상황에서)
오롯이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드라마를 몰입해서 보고
책을 음미하면서 읽고
그저 조용히 뒹굴거리다 낮잠 한 숨 자고,
뒹굴거리다가 컵라면 하나로 식사를 때우고
조용하고 예쁜 카페에 가서 차 한잔 마시고,
전시회도 가고 서점도 가고 영화도 보고,......
누군가에겐 마음만 먹으면 되는 일이겠지만,
애엄마이자 워킹맘에게는 참으로 사치스러운 일이다.
시터를 고용하거나, 친정엄마의 손을 빌리거나, 휴가를 내거나,
일로 바쁘다는 남편에게 사정해야 겨우 얻을 수 있는 것이기에.
해야 할 일은 24시간을 쪼개서 쓰면 할 수 있다지만,
엄마는 로봇이 아니고 인간이기에 말라버린 감정과 고갈된 체력을 재충전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최대한 일상을 심플하게 줄이고, 나를 위한 여유시간을 확보하려고 노력한다.
시터 고용시간을 하루에 1시간 정도 늘린다던가, 자율출근제를 활용해 조금 일찍 퇴근하는 날을 만든다던가,
가끔은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던가.
(여전히, 말처럼 쉽지는 않은 일이다.ㅠ.ㅠ)
곤하게 낮잠 한 숨 자고 싶다. 영화 한 편만 조용히 보면서, 감성을 충전하고 싶다.
이번 주에는 꼭, 단단히 마음먹고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