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추억 속 그곳, 언젠가는 사라질

by 미선씨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였다. 나는 남편한테 수식어가 잔뜩 붙은 먹거리를 주문하고는 했다.

"엄마가 밤새 뽀얗게 끓여낸 곰탕 먹고 싶다. 그건 삼시세끼 먹어도 안 질리는데."

" 사과 중에 단단하면서 가운데에 노랗게 꿀 들어있는 아삭한 그런 사과 어디 없나?"

"할머니가 숙주랑 김치랑 고기 다져 넣고 크게 만들어주는 개성식 만두 먹고 싶어"


말하는 나도, 듣는 남편도 무리한 주문인 걸 알았기에, 내 희망사항은 그저 공허한 메아리로 끝나버리곤 했다. 그때 내가 먹고 싶었던 것 중에 이런 것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 학교 끝나면 친구들이랑 참새가 방앗간 가듯 늘 들르던 뚜리바 분식집, 딱 그 집에서 막 튀겨 나온 떡꼬치가 먹고 싶어. 아직도 있으려나?"


너무 가보고 싶어서 그 분식집을 찾아가 봤다. 그런데 방학 때여선지 주말 이어선지 너무 늦어서 인지 모르겠으나, 굳게 닫힌 문만 확인하고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우리 집은 이사를 했고, 그 분식집과는 서울의 동서 쪽 끝으로 멀어져서 더더욱 찾아가기 어렵게 되었고, 어느덧 수년이 지나버렸다.


얼마 전에, 친척분 생신이어서 그 근처를 갈 일이 생겼다. 나는 이번에는 기필코 그곳이 그대로 있는지 가봐야겠다며, 토요일 아침부터 서둘러 출발했다.

" 얘들아, 우리 오늘은 엄마가 어릴 때 살던 동네에 들를 거야. 엄마가 다니던 학교랑 살던 아파트랑 보여줄게. 엄마가 좋아하던 떡볶이 집도 가보려고. 근데 그때도 할머니셨고, 벌써 30년이 다 돼가니까... 없어졌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가보자. "

그렇게 찾아간 상가, 입구에 들어서니 분식집 간판이 보인다. 그리고, 그때 그 아주머니가 계신다. 할머니가 되셨지만. 세상에, 가게가 아직 있다는 게, 사장님이 그대로 계셔준다는 게 어찌나 고마운지. 울컥하다. 내 추억의 한 페이지가 그대로 남아있다는 게 다행스러웠을까? 뭐가 그리 고마운지 모르겠지만, 그저 감사하고 그저 고마웠다.

사장님도 나를 알아보시고, 어린애였던 내가 이제는 어른이 되어 남편과 아이들과 온 걸 반가이 맞아주시고, 먹을 것을 이것저것 챙겨주시고는, 드린 돈도 이런 건 받으면 안 된다며 받지 않으셨다. 그렇게 내 추억의 한 조각을 확인하고, 가족들에게 내 추억을 소개했다. 멀어서 자주는 못 가지만 그 후로도 또 찾아갔다. 돈은 안 받으시려 하니, 사장님이 좋아하신다는 과일 한 박스 챙겨가서 건네드리고 왔다. 오래오래, 그 자리에 계셔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떡볶이 천원. 차림표도 옛날 그대로.



좋아하던 학교 앞 밥집이 있었다. 나는 그 집 메뉴 중에 특히 오징어 덮밥을 좋아했다. 살짝 달달하면서 불맛도 나는 그 양념을 참 좋아했다. 대단할 건 없어도 나에겐 소중한 맛이었다. 졸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오랜만에 학교 앞에 찾아간 어느 날, 나는 주저 없이 그 밥집으로 향했다. 남편과 아이에게 내가 좋아하던 집이라고 몇 번씩 얘기해주고, 예전처럼 오징어덮밥을 주문해서 먹었다. 서빙 담당이 주방에서 요리하시는 아주머니의 아들분인데, 예전에는 청년이었던 그분이 이제는 중장년 아저씨가 되셨다. 세월은 흘렀지만, 예전의 그 얼굴이 그대로 있어서 딱 알아볼 수 있었다. 주방 할머니도 예전의 그분, 그대로이다. 아저씨가 수많은 옛 손님 중 하나였던 나를 알아볼 리 없다는 걸 알지만, 나는 너무 반가워서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었다. 계산을 하면서, 아저씨한테 말을 걸었다.

"저 예전에 학교 다닐 때 많이 왔었거든요. 오랜만에 왔는데, 그대로 있어서 너무 좋아요. "

아저씨는 이 상황이 낯선지 어색하게 고맙다 하신다. 용기 내어 부탁을 더 해본다.

" 사진 한 장 찍어주실 수 있으세요?"

아저씨가 그러마 하며 핸드폰을 받아 드시더니, 우리 가족을 찍어주려고 하신다.

"아... 사장님하고 찍고 싶어요. "

아저씨는 진짜로 당황하셨다. 나도 이렇게 무모하게 요청하는 스타일은 아닌데, 그 날은 무슨 용기가 났는지 부탁을 했고, 아저씨와 사진을 한 장 남길 수 있었다.


그리고, 2018년 5월, 인터넷에서 그 가게의 영업 종료 소식을 들었다. 이제 내 추억은, 추억으로만 남게 되었다.

출처 https://m.blog.naver.com/hodolry/221281826156?view=img_2


오늘 지인과 점심을 같이 먹었다.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온 지인이 20년 전 근무했던 곳이 근처길래 함께 가보기로 했다. 재건축 말이 나오는 40년 된 상가라서 오래된 가게들이 제법 많이 남아있다. 지인이 예전에 자주 가고 좋아했다던 떡볶이집이 아직도 그대로 있어서 그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나에게 그 떡볶이집은 여느 떡볶이집과 그다지 다를 게 없는 분식집이지만, 지인에게는 특별한 떡볶이라는 걸 알기에, 덩달아 나에게도 의미 있는 집이 되었다.

하지만 오랜 역사의 이 집을 지키는 주인장 할머니 두 분도 이미 허리가 많이 굽었고, 연세도 제법 많아 보였다. 재건축 얘기도 나오고 있으니, 아마 지인에게 소중한 이 장소도 기억 속에만 남게 될 것이다. 늦기 전에, 사라져 버리기 전에 찾아왔다는 오늘의 추억을 덧붙여서, 지인에겐 더 좋은 추억으로 길 바 뿐이다.


흔적이 사라져 버리면 추억은 기억 속에만 남는다. 오늘은 내 추억의 조각들을 기록해두고 싶었다. 사라져 버린 것이 그리울 때 꺼내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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