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잘 씻고, 마스크 쓰고, 개인위생 주의 정도 하면 되겠거니 했었다.
학교 방학이 당겨지고 개학이 연기되고, 어린이집이 휴원을 하고, 학원마저도 휴원을 결정하는 사태가 되자, 내 발등에도 불이 떨어졌다. 평소와 같이 일상생활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대책을 세워야 한다.
마냥 회사에 휴가를 낼 수도 없고, 그전처럼 회사에 나갈 수도 없어서, 오전엔 아이들을 보고 이모님이 오시는 오후에는 회사에 나가기로 했다. 한 달 근무시간 중 이미 상당 부분을 야근하며 채워놔서 일 4시간 근무를 해도 근무시간에는 지장이 없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원래 이모님이 매일 오시진 않는데, 어쩔 수 없으니 당분간은 매일 오셔달라고 시간을 조정했다.
그렇게 오전엔 엄마 노릇, 오후엔 회사원 노릇을 하는 생활을 한 지 일주일이 지났다. 아이들 일어나기 전에 아침 점심 먹거리를 준비하고, 아이들하고 부대끼며 공부도 조금, 청소도 조금, 정리도 조금씩 하다 보면 어느덧 오후가 되고, 이모님과 바통터치를 한다. 시간에 모자라다 보니, 회사에서는 아무래도 더 집중하게 된다. 급한 것 중요한 것부터 해치우고, 집에 들어와서 다시 이모님과 바통 터치한다.
지난 일주일을 그렇게 보내면서, 평소 바쁘다며 그냥 넘겨버렸던 집안 구석구석을 정리했다. 신발장도 정리하고, 내 옷장에서도 한 박스 분량을 버렸다. 가장 어려워하던 아이들 옷장의 옷은 모두 다 꺼내와서 아이들과 함께 정리했다. 싱크대 수납장도, 창고도 버릴 건 버리고, 종류별로 다시 수납했다. 열심히 했는데 썩 티는 안 난다. 어쨌든 묵은 돌덩이 같았던 정리를 좀 마치고 나니 남들이 알아주지는 않아도 스스로는 기분이 좋다.
그리고 주말, 주말에 어디 못 나가고 집콕한지도 꽤 된 것 같다. 나가기 뭐하니 냉장고의 식재료들로 삼시세끼 차려먹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있는 야채 다 털어서 토스트 해 먹고, 냉동실에 묵은 떡 뚝뚝 썰어서 떡국 해 먹고, 양배추 삶아놓은 건 곰곰 고민하다 오코노미야키를 해 먹었다. 먹고, 치우고, 다음 끼니를 고민하고, 다시 먹고, 치우고, 다음 끼니를 고민하는 단순한 시간을 보낸다. 틈틈이 낮잠도 자고, 재미난 미스터 트롯을 정주행 하고, 좋아하는 노래도 챙겨 듣는다.
참으로 한갓지다. 과거의 주말은 어디 여행 간다고, 외출한다고, 각종 행사에 참여한다고 훅훅 지나가버렸던 것 같은데, 요즘의 주말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주중도 아이들 학원 학교 어린이집 잘 갔는지 챙기고, 행사와 준비물 챙기고, 학원 시간표 챙기고 하느라 뭔가 바빴던 것 같은데, 이번 주는 외려 시간이 남아서 집안 정리라는 걸 했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일상이 그립다고 하고, 그것은 코로나가 오기 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일 텐데, 어쩐지 나는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외려 지금이 정상적인 일상 아닐까?
그동안 너무 비정상적으로 바쁘게 산 건 아닐까?
딱히 뭔가를 더 하지 않고,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삼시세끼 챙겨가며 사는 것도 좋아 보인다.
얼마 전엔 고열로 끙끙 앓았다. 다음날도 열이 나면 출근을 안 해야겠다 싶었는데, 오전에 보니 괜찮은 것 같아 출근을 했고, 회사에서 다시 으슬으슬 떨리기 시작했다. 선별 진료소와 병원을 들러본 바, 폐 소리가 괜찮아서 코로나는 아닌 것 같다며, 독감 내지 감기라고 보는 게 타당하단다.
약을 받아먹고 다시 일을 하고 있는데, 여러 사람이 날 챙긴다. '괜찮냐, 뭐라더냐, 들어가야 하는 거 아니냐, 내일도 그러면 재택근무로 바꿔주겠다.' 등등. 평소 내가 아플 때 그다지 반응 없는 신랑도 지극한 관심을 보인다. '저녁에 죽 사갈까? 뭐 먹고 싶어? 내일 휴가 낼까? 병원에선 뭐래? 회사 쉬어야 하는 거 아냐? ' 그저 감기 따위에 이렇게나 관심과 챙김을 받다니, 생경한 경험이다.
어쩌면, 이게 정상 아닐까?
아파도 참고 일해야 하고, 아파도 참고 학교에 등교해서 개근상을 받아야 하고,
그저 감기라며 일상생활을 그대로 해야만 했던 예전이 비정상 아닐까?
'일상'의 사전적 정의를 찾아보니,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이란다. 코로나 덕에, 내 지난 '일상'이 과도하게 번잡했던 게 아닌가 돌아보게 된다. 지난 일상이 그립지 않은 걸 보니, 앞으로의 '일상'을 조금 바꿔야 할 것 같다. 조금 더 삶의 본질에 집중하고(예컨대 삼시세끼 먹는 것,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 어떻게 해야 가능할 진 잘 모르겠지만 조금 더 여유롭게 시간을 쓰고자 한다.
그간 이것저것을 더하는 삶을 살았다면, 군더더기를 빼는 삶도 제법 가치있어 보인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