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

by 미선씨

"하나는 뭐가 제일 무서워?'

세 살짜리 아이는 대답했다.

"귤"

귀신도 도깨비도 아니고 귤이라니, 심지어 귤을 좋아하고 잘만 먹는 아이인데, 의아해서 되물었다.


"응? 귤이 왜 무서워?"

" 귤 까는 거 무서워"


아, 귤 깔 때 껍질이 갈라지면서 즙이 사방으로 튈 때, 그게 눈에 들어가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어쩐지 귤 깔 때마다 최대한 고개를 멀리하고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리더라니. 시큼한 게 눈에 들어가면 아프긴 하다만, 그렇다고 세상에서 제일 무서울 것 까지야. 세 살짜리에겐 그럴 수도 있으려나.



아이가 셋, 워킹맘인 나는 요즘 무서운 소식을 많이 접한다. 마스크가 동이 나고, 개학이 2주 더 연기되고, 신생아도 확진자가 나왔단다. 애들의 안전도 걱정되고, 앞으로 2주간 아이들을 어떻게 돌봐야 하는지도 고민이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자꾸 생각이 다시 돌아온다. 2주 동안 아이들은 어떻게 하지, 회사는 어떻게 해야 하지. 머릿속이 복잡하여 잠도 오질 않는다. 차라리 일어나서 곰곰 고민을 들여다보기로 했다.


코로나 자체가 그렇게 무섭지는 않은 것 같다. 치사율이 높은 건 아니라고 하니, 감기보다 가볍게 지나갈 수도 있다고 하니, 손 잘 닦고 마스크 잘 쓰고 다니면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지독하게 운이 나빠서 코로나에 걸릴지라도 잘 넘어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마스크도 급하긴 하지만, 집에 일주일 정도 여분은 있고, 기다리다 보면 조치가 취해지리라 믿는다.


결국 생각이 제일 많이 머무는 건 개학 2주 연기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미 지난주부터 비상체제로 지내고 있는데, 앞으로 3주나 더 계속될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나가지. 찾아보면 방법은 있을 것 같고, 솔직히 할 수 있을 것 같다. 며칠은 긴급 돌봄에 맡기고, 며칠은 친정엄마의 손을 빌리고, 며칠은 애들끼리 몇 시간만 있으라며 두고 나가고, 며칠은 좀 늦게 출근하면 어찌어찌 될 것 같은데도, 어째서인지 머릿속에서 계속 생각이 맴맴 돈다.



문득, 생각했다. 나는 '예측되지 않는 것'을 무서워하는 게 아닐까. 돌이켜보면, 내가 가장 스트레스받을 때는 갓난애를 키울 때였다. 애가 언제 잘지, 언제 깰지, 내가 화장실을 간 몇 초 사이에 애가 엄마를 찾을지 잘 놀지, 애가 자는 것 같아서 침대에 아이를 뉘일 때 아이가 과연 가만히 잠들지 아니면 도로 깰지, 어떤 것도 명확하지 않았던 그 상황이 너무 무서웠다. 하루 종일 그렇게 놀고 울고 낮잠도 안 잤으니 오늘 밤은 잘 자겠지, 나도 두세 시간은 잘 수 있겠지 하는 합리적인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지곤 했고, 수많은 좌절을 겪고 나서야 깨달음을 얻었다.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아이가 말썽 없이 잘 지내준다면, 그저 감사할 일이다.


아이가 조금 커서 어린이집을 다니고 나는 출근을 해야 할 때, 그때도 아침마다 전쟁을 치렀다. 아이가 울지 않고 기분 좋게 일어날지, 옷을 잘 갈아입어 줄지, 밤새 잠자리에 쉬는 안 했을지, 어린이집에서 후딱 안녕하고 헤어질 수 있을지, 모든 순간이 조마조마했다. 모든 미션을 잘 통과해야만 제시간에 출근할 수 있는데, 이 '예측되지 않는 아이'는 정말로 제멋대로였다. 어떤 날은 의외로 별 일이 없고, 어떤 날은 이상하게 별 일이 다 생겼다. 그렇게 예측 불가능성과 씨름하고 겨우 회사에 도착하여 출근도장을 찍고나면 난 녹초가 되어버렸다. 일은 시작도 안했는데 말이다. 그럴 때마다 생각했다. 출근을 안 했더라면, 워킹맘이 아니었더라면, 이렇게 동동거릴 일도 없을 텐데.


그렇게, 워킹맘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예측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아이가 크고 나니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시간 맞춰 학교나 학원, 어린이집에 가니 주중 대부분은 짜인 시간표대로 흘러간다. 물론 갑자기 아프고, 스케줄이 바뀌고, 급한 준비물이 생기기도 하지만, 아이 셋 키운 짬이랄까, 이제 그 정도의 이벤트는 스트레스받지 않고 능숙하게 헤쳐나갈 수 있다.


결국 나에게 코로나 19로 인한 3주 개학 지연 사태는, 그간 쌓아놓은 경험치만으론 예측이 되지 않는 거대한 돌발상황인 거고, 그래서 이렇게 머리가 아픈 거다. 아마도 나는 하루하루 방안을 세워서 돌봄 공백을 메꿔갈 것이고, 그렇게 이 사태는 지나갈 것이고, 나는 또 그만큼의 능력치를 쌓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별 일 없이 지나갈 것을 믿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앞이 잘 보이지 않는 상황을 마주하는 건 달갑지 않은 일이다.


지나고 나면, 이 정도의 일은 무서운 게 아니라 충분히 대응 가능한 일이 될 것이다.

겪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지만, 닥친 이상 해내는 수밖에. 다시 마음을 다잡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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