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보다 조금 더 빨리 엄마가 된 친구가 웃으며 말했다.
"얼마 전에 OO이가 바닥에 과자 떨어진 걸 가만히 집더니 내 입에 넣어주는 거야. 하도 애가 흘린 거 주워 먹어서 그런가, OO 이는 엄마 챙겨준다고 준 걸 텐데 말이지."
친구의 웃음이 처연해 보였다. 우리 엄마는 생선 대가리를 좋아하시더라며 효도한답시고 생선 대가리만 모아다 줬다는 자식 이야기의 현대판 버전이랄까. 그때 다짐했다. 적어도 나는, 내 애들한테 흘린 것 주워 먹는 걸 좋아하는 엄마로 오해받지는 말아야겠다고.
애가 둘이 되니, 절실하게 손이 더 필요했다. 한 놈을 재우면서 다른 놈과 놀아주면서 집안일을 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그걸 해내야만 하는 상황이었는데, 우는 둘째를 달래면서 놀아달라는 첫째를 상대해야 할 때, 집안일은 쌓여있는데 애들은 온갖 저지레를 하고 있을 땐, 정말 몸이 두 개고 손이 네 개였으면 좋겠다 싶었다.
궁여지책으로 가끔은 애를 업고 달래면서 자유로워진 손으로 다른 일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날 문득 거울 속의 내 모습에 애 업고 빨래하던 옛날 어머님들 사진이 오버랩되는 것을 느꼈다. 지금 내가 사진 속 옛 어머님들하고 다를 게 뭔가, 애도 챙기고 일도 하고. 이렇게는 말아야겠다 싶어서, 절대로 애는 업지 말자고 다짐했다. 애를 업는다는 건, 애를 재우면서 무언가를 또 한다는 뜻이니까. 그러고 있는 나는 내가 봐도 너무 불쌍하니까.
워킹맘이었던 엄마는, 본인이 얼마나 처절하게 살아왔는지 종종 큰 딸인 나에게 하소연하듯 말씀하셨다.
"내가 너 낳고도 직장을 관두지 않으니까, 느이 아빠는 아빠 벌이를 무시한다고 생각하더라. 집안일이고 육아고 도와주질 않았어. 그래도 엄마, 참 열심히 살았다. 약국 사람 집으로 불러다 링거 맞으면서도 꼬박꼬박 출근했어. 너도 몰랐지? "
나는 몰랐다. 당시 힘들었던 엄마는 어린 나한테 다양한 이유로 짜증을 냈을 뿐, 힘드니까 좀 쉬어야겠다는 얘길 한 적이 없었다. 나는 엄마가 또 화낼까 봐 늘 눈치를 보며 엄마 주위를 맴돌았지만, 엄마가 체력이 바닥날 정도로 힘들었다는 걸 진짜 몰랐다. 엄마의 하소연을 들을 때마다 솔직하게 드는 심경은, 미안함이 아닌 억울함이었다. 그저 몰랐던 것뿐인데 이제 와서 어쩌라고. 엄마는 '그런 걸 굳이 말 안 해야 아냐'하셨을 테지만, 딸인 나는 엄마가 직접적으로 말해줄 때까지 몰랐다. 결국 나는 어머니는 생선 대가리를 좋아한다고, 어머니는 짜장면을 싫어한다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그 자식들과 다를 것이 없다.
아이를 낳고 엄마처럼 워킹맘 생활을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다짐했다. 엄마도 사람임을, 엄마도 힘들 수 있다는 것을 가족들이 알게 해야겠다고. 혼자 힘들게 앓아가며 버텼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내 배로 낳은 내 자식이 '몰랐어. 힘들다고 말을 했었어야지. 맨날 화만 내고 짜증만 내는데 내가 어떻게 알아'라고 반응하면, 화딱지가 나서 못 견딜 것 같았다.
나는 슈퍼맨이 아니야. 슈퍼 엄마가 되고 싶지도 않아.
애가 흘린 걸 주워 먹지 않고, 애를 업지 않는다고 엄마의 업무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작은 몇 가지 육아방식의 차이일 뿐, 아이 키우는 공은 똑같이 들어간다. 대단한 다짐인 양 외쳐봐도 그저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고, 아무리 의미를 부여해도 사실상 자기 위안일 뿐이라는 걸 안다.
그래도, 그래도 엄마라는 이유로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내 한 몸 희생하여 몸이 부서져라 자식만 챙기는 '헌신의 아이콘'이 되고 싶진 않았다. 여자는 약해도 엄마는 강하다며, '엄마'는 이것도 저것도 다 해줄 수 있는 사람처럼 얘기하는데, 그렇게 '나'라는 존재 없이 '엄마'로만 살고 싶진 않았다. 엄마도 그저 사람인데, 음식 잘 차려먹고 싶겠지 주워 먹고 싶겠는가. 자식을 챙기는 것도 정도껏이지 정신력으로 모든 걸 버틸 수 있겠는가.
한없이 인내하고 희생하고 헌신할 자신도 없었다. 여태껏 보아온, 배워온 '엄마'의 모습을 따라 하다간, 내가 먼저 스러져버릴 것 같았다. 견디다 못해 힘들어서 애들한테 짜증을 내면, 잘해보려고 하다 하다 지쳐서 아파버리면, 그럼 무슨 소용인가. 화가 날 때까지 참지 말고, 힘들 땐 가족들에게 먼저 얘기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말을 안 했는데 알아서 알아주기는 어려울 테니까.
작은 다짐을 실천한 결과, 내 아이들은 맛있는 게 있으면 엄마 먼저 드셔 보라며 입에 넣어준다. 피곤해서 좀 누워있겠다고 하면, 편히 쉬라며 방문 닫고 나가 자기들끼리 놀곤 한다. 덕분에 나는 너무 애쓰지 않고, 탈진하지 않고, 세 아이를 키우며 워킹맘 노릇을 지속하고 있다.
살짝 궁금하긴 하다. 이게 정말 잘하는 짓인지.
먼 훗날 언젠가 내 자식들에게 이런 엄마는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