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는 도시락

by 미선씨

코로나 19 감염 확산 대비를 위해서, 회사에서는 구내식당의 좌석 배치를 바꿨다. 식탁 하나에 한 명씩, 모두 다 한 방향으로 앞을 바라보고 먹도록. 마주 보고 앉아 먹지 못하게 바꾼 건데, 한 번 그렇게 여럿이 한 줄로 앉아서 먹고 보니까 영 기분이 이상했다. 같이 먹겠다고 함은 대화를 하고자 함일 텐데, 같이 먹는 사람이 저 멀리 옆에 앉아있으니 대화가 어렵기도 하고, 대화를 자제하기도 해야 하니 이건 영 밥 먹는 게 아니라 시험 보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그래서 그냥 take-out 도시락을 가져다가 자리에서 혼자 먹기로 했다. 식당 가서 먹어도 혼자 먹는 기분인 건 매한가지니까. 도시락을 받아와서 자리에 세팅을 한다.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보고 싶었던 락 공연 실황을 튼다. 컴퓨터를 켜고, 글 쓰기 위한 준비를 한다. 글쓰기, 음악 듣기, 혼자 있기... 세팅해놓고 보니 어쩜, 이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집합체다.


코로나 때문에 답답하고 지겹다는 얘기를 많이 보고 듣지만, 솔직히 나는 코로나 덕을 본 것 같기도 하다. 예를 들자면, 평소엔 그렇게도 말을 안 듣던 가족들이 위생관념이 생겼고 생활습관도 잘 정착되었다.(나갈 때 마스크도 잘 끼고, 집에 들어오면 손도 잘 씻고 옷도 잘 정리한다.)

남편은 최근 거의 야근을 안 하고, 모임도 없고, 매일 7시면 집에 들어온다. 저녁 7시에 가족이 다 모여서 저녁식사를 하고 나면 자기 전까지 시간이 남아서(!) 종종 야간 산책을 나간다. 한강도 갔다가 근처 공원도 갔다가, 자전거도 타고 인라인도 타고, 먹고나면 소처럼 눕기만 했던 나는 덩달아 운동도 하는 셈이다.

아이들이 학교도 학원도 안 가다 보니 공부를 못 챙기긴 하지만, 공부를 뭘 어떻게 시켜야 할지 모르겠다. (모르니까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 하하)

주말엔 늘 스케줄이 꽉 차 있었는데, 이젠 냉장고 열어서 삼시세끼 지지고 볶아서 해 먹으면 주말이 지나간다. 그것도 남편이랑 번갈아가며 밥하고 설거지하고 하니까 썩 부담스럽지 않다. 오히려 여유로워서 가끔 낮잠도 잔다.

오늘 좋은 점 하나가 추가되었다. 혼자 여유롭게 즐기며 먹는 점심. 어쩌면 매일같이 누군가와 함께한 점심이 즐겁기도 했겠지만, 약간은 부담스럽기도 했나 보다.


내가 지금 듣고 있는 건, 엊그제 진행한 무관중 라이브 유튜브 공연 실황이다. 오랜만의 단독 공연이 취소가 되어서 아쉬워했었는데, '무관중' 공연이란 걸 기획했다길래 챙겨서 듣는 중이다. 공연을 하는 이 사람들은 관중도 없는데서 롹앤롤을 부르짖으며 열정을 불태워야 하니 너무도 이상했을 테지만, 덕분에 나는 자리에 앉아서 귀 호강을 한다.

요즘 달고나 커피 만들었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어쩜, 집에 있어도 가만있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나도 오래간만에 처박혀 있던 호떡 믹스를 꺼내다가 베이킹이라는 걸 했다. 결과는 딱딱하고 덜 익은 맛없는 소시지빵! 그래도 아이랑 도닥대며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었다. 아! 어제는 냉동실의 각종 재료들 -떡, 토마토, 새우, 해물-을 다 꺼내서 마라탕이라는 걸 해 먹었다. 이건 아주 성공적! 별 말 없는 남편도, 이건 손님 접대할 때 내놔도 되겠다며 극찬을 했다.

아! 얼마 전 산책하다가는 만개한 매화꽃도 발견했다. 아직 홍매화는 봉오리 상태고, 하얀 매화들은 꽃잎을 활짝 펴고 봄이 왔다고 외치고 있었다. 산수유는 꽃 핀 지 오래. 목련은 이제 봉우리가 올라오고 있다. 나무색 나무들에도 이제 연둣빛이 돈다.


아직 겨우 한 달 남짓이라 버틸만하다고 웃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며칠 후엔 힘들다고 악악 소리 지를지도 모른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거라면 괴로워하기보다는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지 않을까. 어쩌면, 덕분에 더 좋은 점을 발견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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