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박함을 물려주어 미안해

by 미선씨

온라인 수업만 하다가 처음으로 실제 등교한 날이었다. 오후에 큰애 담임 선생님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안녕하세요. 하나 담임입니다. 시간 되시면 연락 주세요. 070-7XXX-XXXX


카톡만 봤을 뿐인데 심장이 두근두근 뛴다. 무슨 일이지? 아이가 사고라도 쳤나? 등교 첫날인데? 왜 우리 애만 콕 집어서 연락을 달라고 하는 거지?



큰 숨 들이켜고 선생님 번호를 누른다. 십오 분 여 전화 통화한 내용을 요약하자면, 하나가 요주의 학생이라는 것이다.

자기소개서에 좋아하는 것은 딱 한 개 쓰고, 싫어하는 것만 잔뜩 써 놨으며,
온라인 수업도 퍼센트만 채웠지 동영상을 끝까지 듣지 않았고,
과제물도 안 한 게 많은 데다,
왜 안 했느냐고 물으니 '하기 싫어서 그랬다'라고 얘기했단다.


눈엔 자기 일 잘 챙겨하고 마음씀이 깊은 하나가, 등교 하루 만에 담임 선생님한테 '찍혔다'. 같은 아이를 바라보는 나와 선생님의 시선차가 너무 크다 보니, 내 마음도 마구 흔들리기 시작한다.

'아이가 괜찮다는 건 그저 나만의 생각이었나?

아이가 집에선 나름 잘한다고 해도 밖에선 제대로 안 하는 건 아닐까?

선생님 말씀처럼 결국 바쁘고 회사 다니는 엄마라서, 잘 못 챙긴 내 탓인가?

온라인 숙제를 안 한 건 잘못이긴 하잖아. 내가 십 년 넘게 봐온 내 아이가, 내가 알던 그 아이가 아닌 건가?'


한편으로는 속상한 나머지 반발심도 든다.

' 선생님이 아이를 본 건 오늘이 처음이잖아.

하루, 아니 반나절 본 것 가지고 아이를 판단해버린 건가?

선생님의 부정적인 평가를 엄마인 내가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거야?'



마음이 너무 좋지 않다. 며칠 동안 생각이 이랬다가 저랬다가, 머릿속이 복잡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아이의 행동이 이해가 된다. 아이가 싫다고 잔뜩 나열한 것들은 진짜 아이가 싫어하는 것들이고. 지금 아이는 사춘기이다 보니, 좋아하는 걸 표현하기보다 싫어하는 걸 더 많이 표현할 때인 것 같고. 온라인 숙제, 조금은 안 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누가 붙들고 옆에서 봐줄 수가 없는데, 그만하면 잘한 거 아닌가 싶고.


곱씹을수록 선명해진다. 나는 내 아이를 믿어야 하고, 선생님께는 아이를 좀 더 지켜봐 주십사 요청해야겠다는 것.


그리고, 내 아이가 나랑 참 닮았다는 것.

누군가에게 첫인상을 남기는 시점에, 굳이 싫어하는 것만 잔뜩 표현해서 다크한 부정적 인상을 줬다는 게 안타깝다. 좀 더 세련되게 할 수도 있는 것을, 굳이 굳이 왜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가지고...


며칠 전 고과권자에게 바락바락 대들고 밤새 잠 못 자고 뒤척거린 나와 오버랩된다. 굳이 왜, 왜 그래 가지고...

다른 것보다 이 점이 미안하다. 엄마가 솔직함이라고 포장한 '투박함'을 물려줬구나. 사회생활 십 년 넘은 엄마도 제대로 못하는 걸, 아이한테 어떻게 잘하라고 하나.


엄마 속을 모르는 아이는, 내일 학교 가야 한다며 준비물을 스스로 챙기고 있다. 가정통신문도 미리 빈칸을 본인이 다 채워놓고 엄마는 싸인만 하라고 챙겨서 내민다. 학교 알림앱도 자기가 확인하겠다며 가입절차를 찾더니 엄마한테는 인증번호만 묻는다. 동생의 등교 준비물도 어떤 거 챙겨야 한다고 옆에서 도와준다.

네가 이런 아이라는 걸 왜 어필을 못하니. 엄마 닮아서 그런 거니... 하아.




요즘 6살짜리 막내가, 산 낙지를 먹기 시작했다. 산 낙지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고, 큰 아이들은 먹지 않아서 내가 오롯이 독차지하곤 했었는데, 경쟁자가 생겨버렸다. 며칠 전 시장에서 낙지 7마리를 사 와서 먹으려는데, 외출 중이던 막내 몫을 남겨야 하나 깊은 고민 끝에 두 마리를 남겼다. 저녁에 돌아온 막내가 열심히 먹는 걸 보니 뿌듯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


아무래도 아이에게서 내 모습을 볼 때, 마음은 무지개빛인가보다. 기특하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이미 물려준 걸 어쩌겠냐만, 아이는 나보다 잘 헤쳐갈 것이다.

엄마보다 현명하게 세상을 살아가길, 엄마보다 더 행복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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