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또, 또, 그놈의 집 문제다.
우리 집은 회사와 아주 가깝다. 지어진 지 매우 오래되어 낡았고, 다섯 식구가 각자의 방을 가지지 못할 정도로 작다. 늘 여차저차 이사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지만, 대출이 어려워서, 어쨌거나 회사와 멀어지면 아이 등원이 힘들어지니까 등의 이유로 계속 눌러살고 있다.
그런데 아랫집에서 물이 샌다고 연락이 왔다. 벌써 네다섯 번 째다. 그때마다 어떻게든 본인 선에서 처리하려고 애쓰던 신랑도 짜증이 났는가 보다. 이 집 너무 싫다면서, 나한테 화를 내고 있다.
이사 가자 할 때 갔으면 될 걸, 아이 등원시켜야 해서 못 간다고 하지 않았냐며. 자기가 집 고치는 사람이냐며.
이사를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인가? 같이 결정한 거 아니었어? 365일 내가 아이 데리고 출근하니까 별 것 아닌 거 같은가부지? 본인이 집 고치는 사람이면, 나는 아이들 수발 들어주는 사람이고, 등원시켜주는 사람이고, 삼시세끼 차려주는 사람인가? 집이 낡은 게 문제지, 당장 이사 가긴 싫다고 얘기한 내가 문제야? 뭐, 마누라가 화풀이하기에 제일 만만한 거야?
마음속이 시끄럽다. 서로 말이 곱게 나오지 못했고, 남편은 동굴에 들어갔다.
남편이 동굴에 들어간 사이, 어찌 됐건 이어나가야 하는 일상은 또 오롯이 내 몫이다. 아이들 세끼는 챙겨 먹여야겠고, 학교에서 연락 오는 것도 대응해야 하고, 정신 사나운 집 조금이라도 치우고 빨래도 해야 하고, 무료한 아이들 주말에 잠깐이라도 콧바람 쐬게 하는 것도 내가 해야 할 일이다. 상대방은 화났다며 혼자 방에 틀어박혀 놀고먹는데, 나는 도무지 쉴 틈이 없다.
먼저 굽히고 들어가진 않을 거고, 그렇다고 마음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얘기해봐야 악화될 것 같아 내버려두고 있다 보니 3일이 지나버렸다. 이제 몸이 힘들다고 소리를 지른다. 혓바늘이 돋고 목이 간지럽고 눈두덩이 뜨끈한 게 감기가 오나보다. 그저 일상을 영위하려는 건데, 너무나 고단하다.
곰곰 생각하다 보니, 화는 가라앉고 서운함이 몰려온다. 이사 가기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이 등원시키는 게 얼마나 힘든데. (11년째 출근하며 아이들 등원을 시키고 있다.) 아이 좀 크면 이사 가자 했고, 아직 아이가 어린이집 다닐 때라 못 가는 것뿐인데.
오늘도 아침 6시에 일어나자마자 아이들 아침 점심 먹거리를 챙겼다. 과일 썰어 냉장고에 넣어두고, 빵 데워두고, 아이들 깨우고, 온라인 학습이니 숙제들 거 단속하고, 약 먹는 거 챙기고, 아토피 로션도 발라줘야 하고, 막내 기분 도닥이면서 등원시켜야 한다. 그러고 나서 회사에 출근했을 때, 이미 기운을 다 소진해서 헉헉대며 약처럼 아이스커피를 들이켜고 2차전에 돌입하는 내 상태를 알기나 할까. 퇴근해서 집에 들어서자마자 저녁밥 챙겨 먹이고 치우고, 씻은 아이들 머리 말려주고 하다 보면 잘 시간이고, 그렇게 내 하루가 가버리는 걸.
이런 얘기하면 신랑은 반박한다. 본인은 출퇴근 편도 2시간씩 걸려서 회사 다닌다고. 남편 출퇴근 시간을 얘기하면 사람들은 공감을 참 잘해준다. 다들 2시간씩 이동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아서 그런지, 남편 힘들겠다고, 대단하다고들 한다. 나도 안다. 그래서 온갖 집안일과 육아의 대부분을 내가 맡고 있지 않나.
어쩐지, 내 하루에 대해서 공감해주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가까운 남편조차도 모르는 것 같다. 마음속 깊은 곳에 서운함이 쌓여있다. 엄청 발버둥 치며 하루하루 살아가는데, 말이라도 좀 도닥여주면 좋잖아.
화가 가라앉고 마음이 정리된 것 같아 다시 얘기를 시작했다. 남편은 '아이 등원시켜야 하는 상황'이 어떤 이유보다도 우선인 게 서운했다고 한다. 돌아보면 내가 운전을 못하니 아이를 걸어서 등원시켜야 하고 그러려면 회사와 무조건 가까워야 한다고 계속 주장했었고, 집을 정할 때 늘 '회사와 가까울 것'이 최우선 조건이었다.
어쩌면, 운전을 배우거나 자전거를 타고 등 하원 하는 등의 다른 옵션도 가능했을 텐데, 싶기도 하다.
어쩌면, 내가 너무 '내 일상의 고단함'에만 빠져있는지도 모르겠다.
신기하게 서로 힘든 걸 말하면 싸우게 되고, 서로 힘들어도 토닥토닥하면 힘이 난다. 누군들 안 힘들겠나. 서로 수고했다 애썼다 다독일 수밖에. 고생했어 신랑, 애썼어 미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