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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Aug 19. 2019

첫사랑

지금쯤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나는 남들보다 조금은 조숙했던 느낌이다. 국민학교 5학년 때, 첫사랑이라고 할만한 친구를 만났는데 겨울방학 즈음하던 미술시간 덕분이었다. 크리스마스를 한참이나 앞둔 날이었지만 그날의 미술시간엔 반 친구들이나 부모님께 보낼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 나는 학기 초에 인수 국민학교로 전학 온 전학생 신분이라 딱히 친한 친구는 없었던 탓에 부모님께 드릴 요량으로 크리스마스카드를 만들었다. 미술시간이 끝나고 자리에 앉아서 책상 서랍에 있는 책들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바닥에 웬 편지가 떨어지는 게 아닌가. 내가 만든 크리스마스카드는 아니었기에 뭔가 싶어서 열어보니 누군가가 나에게 보낸 편지였다. 1년 동안 함께해서 즐거웠고 6학년 때 반이 갈라지더라도 잘 지내보자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편지였다. 하지만 반갑게 인사하던 '현균이에게' 라는 편지의 글귀 덕분에 이상하게도 내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살면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받아본 적도 없었거니와 더군다나 여자아이에게 편지를 받았던 기억은 전무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그 여자아이에게 답장을 할 생각을 했다. 반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생활하던 그 아이가 인사치레로 건넨 그 편지 한 장에 가슴이 어찌나 떨리고 설레었던지... 하지만 그 당시 국민학교 5학년의 꼬맹이가 쓸 수 있는 말이라곤 그다지 많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답장을 하지 않아도 됐을 밍밍한 편지였지만, 혼자서 며칠 동안 '그 아이가 날 좋아해서 이런 걸 보냈구나' 하는 착각을 수도 없이 했다. 학교에선 은연중에 그 아이를 훔쳐보고 행여 눈이라도 마주치면 얼굴이 빨개진 채로 안 본척하길 수백, 수천 번. 학급이 마무리되기 며칠 전에 결국 마음을 다잡고 답장을 쓰기로 했다. 마땅한 편지지조차 살 생각도 없이 하얀 종이에 삐뚤빼뚤 그 아이의 이름을 적은 다음 그 당시 내가 좋아하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죽음의 늪'이라는 노래에 나오는 가사를 인용하여 답장을 썼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서태지와 아이들의 죽음의 늪이라는 노래는 굉장히 어둡고, 곡의 주제가 마약에 빠져서 허우적대는 어떤 사람의 내용이지만, 중간에 희망적인 가사가 한 줄 있던 게 기억이 나서 편지에 그대로 옮겨 적었다.


 


"난 예전에 꿈꾸던 작은 소망 하나가 있어

널 내 두 팔에 안고서 내 마음을 전해주려 했었어"


 


가사 전후의 편지 내용이야 뭐, '6학년이 돼도 같은 반이고 싶다', '1년 동안 즐거웠다'라는 식의 형식적인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나름 은연중에 대중가요에 담긴 희망을 봤던 초5였으며 편지 속에 상대방이 나의 마음을 눈치채길 바라는 모종의 메시지를 은근히 숨겼던 초5였다.


 


그렇게 편지를 쓰고 나서 종업식을 하던 날, 그 아이가 화장실을 가는 순간만을 기다리며 자리를 비우자마자 바로 그 아이의 책상 위에 내 편지를 몰래 올려놓았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빠르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했는데 그 아이가 화장실에서 돌아오기 전, 학교의 짱 같은 걸로 불리던 덩치 큰 어떤 녀석이 그 아이의 책상에 내가 편지를 놓고 온 걸 봤는지 낄낄거리며 내가 쓴 편지를 손에 들고 날 놀리기 시작했다. 다급하게 그 녀석을 붙잡으려 했지만 당시 나보다 덩치가 더 컸던 짱은 내 손아귀를 벗어나, 교실 안을 뛰어다니며 내가 쓴 편지를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그날의 그 악몽 같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반 친구들은 이내 이죽거리며 나에게 야유와 환호를 보내왔고 나는 짱이었던 녀석에게서 겨우 편지를 낚아채, 북북 찢고 말았다. 결국 내 답장은 그 아이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에게 편지를 썼던 그 아이는 반 친구들 전원에게 편지를 쓴 거였고, 받는 사람의 이름만 다르게 해서 쓴, 거의 비슷한 내용의 편지였다.


 


그럼에도 국민학교 5학년 남학생의 가슴은 멈추질 않았다. 어쩐지 나와 그 아이를 억지로 갈라놓은 듯한 사건 덕분에 더욱 불타올랐었다고 할까. 그렇게 허무하게 겨울방학이 지나고 6학년이 됐을 때 나는 6반으로, 그 아이는 9반으로 배정되어 전혀 볼 일이 없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그래도 나는 굽히지 않고 비슷한 내용의 편지를 써서(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 가사만은 작년과 똑같이 썼던 걸로 기억한다) 그 아이가 방과 후에 자기반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를 하던 틈을 타, 옹기종기 모아놨던 그 아이의 가방 앞주머니에 몰래 내 편지를 넣어두는 데에 성공했다.


 


답장을 바라고 쓴 것도 아니고 그저 내 마음을 전하려고만 했던 것이기에 은연중에 은근한 기대를 하기도 했지만 그 아이에게서 딱히 이렇다 할 제스처가 없어서, 그렇게 잊혀져갔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와 같은 반이 아니라는 사실이 그렇게 애달픈 건지 그전엔 몰랐지만 눈에서 멀어지니 자연스레 아무 감정도 안 들던 차에 어느 날 복도를 지나며 나와 마주칠 때마다 반갑게 인사해주는 그 아이를 보게 된다. 그리고 편지 잘 읽었다는 말도 함께. 그때의 터질 것 같던 그 감정을 잊지 못한다. 코흘리개 시절이라 썸을 탄다든지 사귄다든지 한 게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이 나의 진심을 확인했다는 것 하나만으로 날아갈 듯이 기뻤다.


 


아 이런 게 사랑이구나!


 


싶었지만 꼴랑 상대방의 이름 하나 알고 있는 건, 어쩌면 사랑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뒤로 기대하던(?)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수학여행 숙소에서 단둘이 몰래 빠져나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때나 학교 복도에서 마주칠 때마다 즐겁게 아는 척을 했던 나날들은 아직도 아련한 추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제는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 국민학교 5~6학년 때의 일이지만 그 아이의 외형만은 남아, 나의 이상형의 필수 조건 중 하나인 '안경 쓴 여자'로 굳혀져, 평생을 갔다. 지금도 안경 쓴 여자를 좋아한다. 평소 관심 없던 여자 연예인들의 사진이나 기사가 떠도 안경을 쓰고 있다면 한 번 더 보고 그런다. 누군가 '남자의 첫사랑은 평생을 간다'라고 했던 거 같은데 나의 첫사랑은 평생 안경 하나만 남긴 채 사라졌다. 지금은 누군가의 부인이나 엄마가 되어있겠지.


 


이상형은 이상형일 뿐이라고, 지금껏 안경 쓴 여자만 만나왔던 건 아니지만 여자친구가 생겼다고 주변 사람들에게 말하면 '안경 썼냐?'라고 나에게 꼭 물어본다. 그 정도로 지인들에게 안경 쓴 여자가 좋다고 버릇처럼 말하고 다닌 것 같다. 이게 다 그 아이 때문이다.



82년생 노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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