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군 Sep 28. 2016

버드맨 : 예기치 않은 무지의 미덕

birdman

예기치 않은 무지의 미덕















헐리웃의 본격 모두까기 영화.


이 영화의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의 영화를 본게 '21그램' 이었던거 같다.
당시에도 참 독특한 소재라고 생각했었는데 본작 역시 그렇다.


단 한번의 멈춤 없이 롱테이크로 흐르는 극의 흐름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브로드웨이 연극 무대 뒷편에서 함께 배우들을 지켜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영화가 아닌 한편의 부조리한 연극을 보는 듯한 착각을 들게하는 이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건 한물 간 왕년의 슈퍼 히어로, 리건 톰슨(마이클 키튼) 이다.


그는 퇴물이라는 수식어를 벗어버리고자 레이먼드 카버의 원작인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 하는 것' 을 극장에 올리길 고대하며 연극을 준비한다.


왜 그 소설이냐고 하면 감독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소설이라고..
아무튼 연극에 줄창 나오는 자신의 존재에 대한 타인의 관심과 애정과 존중을 갈구하는건 이 영화의 주제와 정확히 일치한다.


전 세계 대중들의 관심과 애정을 먹고 허세 속에 파묻혀 사는 헐리웃의 스타들은 언제나 자신의 위치와 커리어(그리고 이슈) 에 미친듯이 집착하는데,
함께 연극을 꾸려나가는 동료들도 리건처럼 대중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싶어 하는 욕망을 끊임없이 내비친다.


그러던 어느날 연극의 프리뷰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리건 자신도 모르게 바이럴 마케팅을 주조하게 되는데,
대중의 관심과 평단의 찬사 모두를 원하는 그들(헐리웃의 스타들) 은 sns라는 허상 속에서만 자신들의 인기가 수치화 되는 시대를 살고있음을 인지 하고는 있어도 곧바로 손에 잡히질 않아 긴가민가 한다.


세계의 대중문화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영화산업은 이미 포화상태를 넘어, 미국의 경제시장을 쥐락펴락하는 중요한 엔터테인먼트가 되어버렸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참신한 이야기들 보다는 히어로물에 신경을 더 쓰고있는 지금의 상태를 절절하게 곱씹는 장면이 등장한다.
그걸 왕년에 '배트맨' 으로 이름을 날렸던 마이클 키튼의 입에서 들으니 피부 속으로 더 와닿는 느낌이랄까.
아주 적절한 캐스팅이 아닐 수 없다.


슈퍼 히어로 영화로 이름을 날렸던 배우가 그 커리어와는 정 반대인 정극으로 재기를 꿈꾼다는 것.


아이러니다.


사실 이 영화 자체가 커다란 아이러니 덩어리이다.


그야말로 do or die 의 기로에서 신경발작이 일어나지 않는게 다행인 상황을 살아가는 주인공의 귓가에 울리는 목소리는 정말 아이러니 하게도 망령처럼 그에게 붙어 사는 버드맨이다.


떠나간 부인도, 말썽쟁이인 외동딸도 아닌, 자신이 연기했던 왕년의 슈퍼 히어로만 그의 곁을 지키고 있다.
(재미있는건 버드맨의 목소리는 배트맨을 재창조하는데 성공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새 배트맨 시리즈 속, 그 걸걸한 목소리의 배트맨 같다는 사실)
(또 재미있는건 에드워드 노튼은 리부트 마저 망했던 '인크레더블 헐크' 의 주연이었고 엠마 스톤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역시 리부트 된 '스파이더맨' 시리즈의 히로인이었다)


리건이 그렇게 간절하게 원했던 대중들과 평단의 관심은 본 영화의 부제만큼 정말 예기치 못한 부분으로 이루게 되는데,
모든걸 다 포기 해 버리고 싶은 본인의 진심을 사람들이 사랑해 주니 이 또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영화가 지금까지 60여 개의 시상식에서 162개에 달하는 노미네이션과 133개의 트로피를 거머쥐었다고 한다)


영화 자체만 놓고 보자면
지루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폐쇄공포증 마저 불러 일으키는 좁디 좁은 공간에서 롱테이크로 펼쳐지는 배우들의 열연과 미국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대한 모종의 경종은, 그쪽 문화에 익숙해 지고 환호하고 지배되어온 이들이라면 꼭 한번은 볼만한 영화 되겠다.





+
엔딩씬의 장면은 버드맨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잠식되어버린, 슈퍼 히어로로 이름을 날렸던 한물 간 미국 연예인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
감독이 참 웃기다고 느꼈던게, 근 한시간 이상을 평범한(?) 이야기로 쭉 이어 오다가
'자 이제 보여줄게' 라며 '맨' 시리즈에서 우리가 익히 봐 오던 액션씬을 삽입해 놨는데, 결국 지금의 관객들의 입맛을 제대로 곱씹은 장면 되겠다.
(버드맨이 심지어 설명도 차근차근 해준다)


더 웃긴건 그 장면에서 관객들은, 정말 모종의 '환기' 를 느낄 수 있다는 것.
우리는 이렇게 헐리웃에 길들여져 있다.




+++
리건의 전 부인으로 나온 사람은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미드 'office' 에서 마점장의 반쪽이었던 에이미 라이언. 분위기가 달라 못알아볼 뻔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백 투더 비기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