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1973년의 핀볼 - 무라카미 하루키

by 노군

무라카미 하루키 초기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책.



이 책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데뷔작이자 전작인,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에 이은 연작 느낌의 소설이다.


여전히 '나' 의 친구인 '쥐(네즈미)' 가 등장하고 이 소설 역시 하루키가 재즈 바를 운영하던 당시 부엌 테이블에서 완성한 소설이다.

덕분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와 별반 다를 것 없는 가벼움과 허무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데뷔작보다 와닿는 건 더 없다.


연작 느낌의 소설이지만 쓸데없는 이야기만 주루룩 늘어놓은 모양새의 소설이라서 읽는 내내 정말 거짓말처럼 재미가 없었다.

하루키 작품 초기작에 속하는 1973년의 핀볼은 주인공인 '나' 가 소설의 제목 그대로 '스리 플리퍼 스페이스십' 이라는 이름의 핀볼 기계를 찾아나서는 소설인데

소개글과는 정말 상관이 없을 정도로 핀볼에 대한 이야기는 얼마 나오지 않는다.


하루키 문학의 근작들과 본작의 제목을 비교해 봤을때

핀볼 기계를 찾는 주인공의 어드벤쳐(?)급 여행기가 실릴 줄 알면 오산이다.

내가 생각하기에 소설의 제목 자체를 잘못 지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핀볼 기계의 비중은 빈약하고 그걸 찾기 위한 동기부여 역시 너절하다.


소설의 제목을 그저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part 2' 정도로 지었다면 그나마 설득력이 있었을텐데,

작품 초반에 등장하는 '나오코' 의 부재로 인해 갈 곳 없는 주인공 '나' 의 욕망의 대체테제로 핀볼을 찾아나선다는

뭔 말같지도 않은 말들을 작품 해설 부분에 국내 문학평론가가 싸질러놨는데 하루키를 너무 심하게 빨아준게 아닌가 싶다.


소설 중간을 훨씬 넘는 분량이 핀볼과는 하등 관계없는 이야기이고 그저 한숨섞인 주인공의 무력한 일상만 줄줄이 나열된다.

아마 하루키의 거의 모든 장편 소설을 읽어가는 와중에 처음으로 심하게 안 읽히고 재미없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인 것 같은데 나에겐 하루키의 유일한 졸작으로 남을 것 같다.



훗날 '상실의 시대' 에 등장하는 주인공 와타나베의 그녀, '나오코' 의 첫 흔적을 찾은게 반갑기엔 너무 쓸데없는 분량 투성이다.


그냥 상실의 시대만 보라고 권하고 싶다.



뭐, 어찌됐든 이제 드디어 '양을 쫓는 모험' 을 펼칠 차례다.






+

역시나 이 소설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와 마찬가지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직접 쓴 '작가의 말' 이 가장 재미있다.

















이것은 핀볼에 대한 소설이다.






이따금 어제의 일이 작년의 일처럼 여겨지고, 작년의 일이 어제의 일처럼 여겨졌다. 심할 때는 내년의 일이 어제의 일처럼 생각되기도 했다.






한 계절이 문을 열고 사라지고 또 한 계절이 다른 문으로 들어온다. 사람들은 황급히 문을 열고 이봐, 잠깐 기다려, 할 얘기가 하나 있었는데 깜빡 잊었어, 하고 소리친다. 그러나 그곳에는 이미 아무도 없다. 문을 닫는다. 방 안에는 벌써 또 하나의 계절이 의자에 앉아서 성냥을 켜고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다. 잊어버린 말이 있다면 내가 들어줄게, 잘하면 전해 줄 수 있을지도 몰라, 하고 그는 말한다. 아니, 괜찮아, 별로 대수로운 건 아니야, 하고 사람은 말한다. 바람 소리만이 주위를 뒤덮는다.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하나의 계절이 죽었을 뿐이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누구나 다 자신의 시스템에 맞춰 살아간다. 그것이 내 것과 지나치게 다르면 화가 치밀고, 지나치게 비슷하면 슬퍼진다. 그뿐이다.





이제 누군가에게 무엇을 준다는 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토요일에는 여자와 만나고, 일요일부터 화요일까지 사흘 동안 그 추억에 잠겼다. 목요일과 금요일, 그리고 토요일의 절반은 다가올 주말의 계획을 세우는 데 썼다. 수요일만이 갈 장소를 잃고 허공을 방황했다.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수요일...





어느 날 무엇인가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뭐든 좋다. 사소한 것이다. 장미 꽃송이, 잃어버린 모자, 어릴 때 마음에 들어하던 스웨터, 오래된 진 피트니의 레코드... 이미 어디로도 갈 곳 없는 하찮은 것들이다. 이틀이나 사흘 정도 그 무엇인가는 우리의 마음을 방황하다가 본래의 장소로 되돌아간다. ...암흑. 우리의 마음에는 우물이 여러 개 파여 있다. 그리고 그 우물 위를 새가 지나간다.





"핀볼 잘해요?"

"전에는 잘했지. 내가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분야였거든."

"나한테는 그런 게 아무것도 없어요."

"잃어버릴 것이 없어서 좋겠군."





"가서 뭘 할 건데?"

"일을 해야죠."

쥐는 왼쪽 손톱을 다 자른 후 몇 번이나 손가락을 쳐다보았다.

"여기서는 안 되겠어?"

"안 돼요. ...맥주가 마시고 싶어요."

쥐가 말했다.

"내가 한턱 낼게."

"고마워요."

쥐는 얼음에 담가둬 차가워진 잔에 천천히 맥주를 따르더니 단숨에 절반 정도를 마셨다.

"여기서는 안 되는 이유가 뭐냐고 왜 묻지 않죠?"

"나도 그 심정을 알 것 같으니까."

쥐는 웃고 나서 혀를 찼다.

"제이, 그러면 안 돼요. 그런 식으로 모두가 묻지도 말하지도 않으면서 서로를 이해해 봤자 아무런 해결도 없어요. 이런 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나는 너무 오랫동안 그런 세계에 머물렀던 것 같아요."





<작가의 말>

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쓸 수 있게 되리라는 하트워밍적인 낙관(신인 작가에게는 이것이 필요하다) 의 도움으로, 나는 별 막힘 없이 이 소설을 완성하였다.

(중략)

나중에 전집을 묶었을 때 많은 단편에 다소나마 손질을 가했지만, 이 두 작품(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1973년의 핀볼) 에 한해서는 전혀 손질을 하지 않았다. 손을 댔다가는 끝이 없으리란 생각 탓도 있지만, 구태여 손질하지 않아도 좋으리란 생각 쪽이 강했다. 혹 독자 여러분들은 불만을 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이것이 당시의 나였고, 결국은 시간이 흘러도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