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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Feb 24. 2018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후기

기과한 사랑의 모양.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우리도 인간이 아니에요.




나를 봐요. 나도 그 사람처럼 입만 뻥긋거릴 뿐, 아무 소리도 못 내요. 그럼 나도 괴물인가요?




내가 불완전한 존재라는 걸 모르는 눈빛이예요.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니까요.




당신은 모를거에요. 내가 당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우리 우주엔 자네만한 블랙홀이 생기겠지.




지 랄 하 지 마 세 요




넌 신이군.













기괴한 사랑의 모양.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신작,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사랑의 모양' 은 한국 수입판 한정 제목) 을 보았다. 영화는 예상을 뛰어넘지 못했지만 퍽 괜찮았다.



우주 개발 경쟁이 한창인 1960년대, 미국은 브라질에서 우연히 주운 괴생명체를 우주 탐사에 쓸 요량으로 실험중이고 그걸 막으려는 러시아측 세력과 그 이름도 없는 괴생명체를 사랑하게 된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의 청소부에 관한 이야기.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는 굉장히 기괴한 영화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특유의 어두운 색체와 1960년대 배경의 노스텔지어가 잘 버무려져, 색다르고 묘한 또 하나의 멜로물이 나왔다. 본작은 국내 영화 광고 카피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 처럼 황홀하다거나 환상적이지 않다. 꽤 음울하고 또 여러가지의 장르가 복합적으로 엉켜있다.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에 야간 청소팀으로 일하고 있는 '엘라이자 에스포지토(샐리 호킨스)'. 출근 전 계란을 삶으며 욕조 안에서 자위를 하는게 유일한 낙인 고아 출신의 언어 장애인이다. 어느날 실험체로 들어온 괴생명체를 우연찮게 목도하던 날, 마치 운명처럼 그에게 끌린다.







그녀가 살고 있는 곳은 영화관 위에 위치한 맨션. 엘라이자의 유일한 이웃인 화가, '자일스(리차드 젠킨스)' 와 함께 집에서 영화를 보거나 아랫층인 극장에 내려가 상영되고 있는 영화들을 보는게 일상이다. 덕분에 극 내내 고전 영화들의 대사와 장면들이 쉴새없이 이어진다. 마치 꿈결처럼.




미 항공우주 연구센터에서 괴생명체 실험의 보안책임자로 일하고 있는 '리차드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 는 연구 첫 날부터 괴생명체에게 손가락 두 개를 물어뜯겨 기분이 몹시 좋지 않다. 그의 목표는 '틸(teal = 청록색)' 색상의 캐딜락을 사는 것과 이번 연구로 소련 등의 우주 경쟁 국가들보다 미국을 우위에 세우는 것.







자신의 위엔 장군 한 명 과 미합중국 대통령 밖에 없지만 은근히 그의 신경을 살짝씩 긁고 있는 호프스테틀러 박사(마이클 스털버그)가 영 거슬린다.





유일한 직장에서 쫓겨나 간헐적으로 들어오는 그림 작업으로 연명하는 엘라이자의 친구인 화가 자일스. 그는 이전 직장으로의 업무 복귀도 중요하지만 짝사랑하고 있는 (더럽게 맛 없는 초록색의)파이 가게 점원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게 우선이다.








엘라이자와 깊은 파트너쉽을 이루는 거의 유일한 그녀의 절친이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엔 여러가지의 사랑의 모양이 등장한다. 어릴 적 부터 부모에게 버림받아 온갖 멸시천대는 다 받으며 살았을 것 같은 농아, 엘라이자는 늘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며 살지만 언제나 외롭다. 그녀의 신체적 약점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사람이 없기에. 영화에서 이 부분을 꽤 날려버리고 시작하던데 나름 괜찮았다. 엘라이자의 과거를 구구절절 나열하며 신파로 가기보다 깔끔하게 텍스트 몇 개로 해소해 버리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 관객들의 눈물샘을 포기하면서 스파이 장르를 심어놓았다. 엘라이자의 친구인 자일스는 게이다. 아마 직장 내에서도 게이라는 이유로 퇴출 당한 듯 싶은데 깊게 설명하진 않고 관객으로 하여금 대충 상상할 수 있도록 만든다. 엘라이자나 자일스나 극을 이끄는 주력 캐릭터이지만 지금도 멸시를 받는 사랑을 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직업 또한 변변치 않고 타인들과 상사들에게 멸시받고 하대 받는게 일상이다. 위치상 엘라이자와 적대적인 관계에 있을 수 밖에 없는 스트릭랜드는 매일 하는 야근에 신경이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져 있다. 스트릭랜드의 사랑은 가장 이상적이고 '평범해' 보이는 사랑이다. 이미 중산층에 두 아이를 둔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고 마음만 먹으면 지금 타고 있는 차를 캐딜락으로 바꿀 수 있는 재력도 있다. 하지만 그와 부인의 사랑(섹스)은 그저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의미로 등장한다. 상대가 어떻든 마음 하나로만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엘라이자와 자일스(챠밍한 파이가게 점원의 외모에 끌렸다 손 쳐도) 와 너무 대조적인 건조한 사랑을 하는 스트릭랜드. 아마 아내에 대한 익숙함과 섹스를 하면서도 늘 다른 생각을 하고있는 복잡한 그의 머릿속의 문제일 터다.


이렇듯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는 세상에서 소외된 인물들의 이야기다.


다만 처절하다거나 잔혹하지 않고, 그렇다고 아름답지도 않은 굉장히 담백한 영화다.




그리고 거기에 양념처럼 추가된 장르적 특성들은 전세계의 강대국들이 너나 할 것 없이 우주 개발에 열을 올리던 시기라서 러시아와 소련을 항상 예의주시 하며 견제하는 (그당시)미국의 입장과 마침내 호프스테이틀러 박사로 인해 발발한 사건이 실제 1960년대 미국을 비롯한 이웃 나라들의 그것을 보는 것 같아, 꽤 흥미진진했다.







노크를 하고 들어와야지, 그게 절차니까.








엘라이자의 양쪽 목에 난 상처를 봤을때 엔딩 씬이 금방 떠오른 영화였고, 괴생명체의 생김새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크리쳐 페스로나인 '더그 존스(그는 본작에서도 '괴생명체' 를 연기했다)' 가 연기한 헬 보이 시리즈의 아비 사피엔을 재활용한 게 분명해 보였지만 21세기형 '스플래시(1984)' 의 남녀가 바뀐 버젼을 보는 것 같아 익숙하면서도 생경했다.








그래도 엘라이저를 연기한 샐리 호킨스의 표족뒤쥐를 닮은 듯한 마스크와 무덤하고 사랑스러운 연기는 당분간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영화 '내 사랑(2016)' 이후 두 번째로 본 그녀의 영화인데 샐리 호킨스의 다른 작품들도 찾아봐야 겠다.





악당으로 나온 마이클 섀넌의 찌푸린 마스크, 격양된 톤, 격한 움직임, 마지막 하이라이트 씬의 등장까지 뭐 하나 빠지는 것 없이 매력이 철철 넘쳐 흘러서 샐리 호킨스 만큼 마음에 들었던 등장인물이다.







이 아자씨 영화도 얼른 찾아봐야겠음.
























+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는 생각만큼 강렬한 작품은 아니다. 골든 글로브에서 감독상만 수상했던 셰이프 오브 워터라 아카데미도 역시 쓰리 빌보드가 휩쓸 것 같다. 국내에선 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나고 개봉 날짜가 잡힌터라(2018년 3월 15일) 얼른 개봉했으면 좋겠다(셰이프 오브 워터 말고 쓰리 빌보드 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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