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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군 Mar 27. 2018

영화 소공녀 후기

지금, 우리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 울어?

- 아니, 침이라고 생각해.





난 갈데가 없는게 아니라 여행중인거야.





집이 없어도 생각과 취향은 있어.





이 집 대출이자가 얼만줄 알아? 대출금 포함해서 한 달에 백만원이야. 그걸 이십년 동안 내야돼. 이십년 뒤면 이 집이 내꺼가 된대. 근데 이십년 뒤엔 이 집이 낡잖아...











지금, 우리의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




하루 한 잔의 위스키와 담배, 그리고 사랑하는 남자친구 '한솔(안재홍)' 만 있으면 행복한 3년차 가사도우미 '미소(이솜)'. 새해(2015) 가 되자 담배값이 2천원 오르고 집 월세도 5만원이 오른다. 그녀가 사랑하는 것들을 위해 단 하나 포기한 건 바로 '집'. 미소가 잘 곳을 구하기 위해 대학때 했던 밴드부원 친구들의 집을 방문한다는 이야기.



집 하나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는 요즘 시대에 영화 소공녀의 미소는 반기를 드는 것 마냥 집만 빼고 모든 걸 포기하지 않는다. 대학시절 친구들의 집을 전전하면서 그들이 살면서 포기한 모든 것들을 미소는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더 큰 회사로 이직하기 위해 링거를 맞으면서까지 회사 생활을 하는 '문영(강진아)'.







시댁 식구들에게 치여 자신의 삶을 잃어버린 '현정(김국희)'.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살 아파트를 장만했지만 이제는 대출금을 혼자 갚아나가야 하는 '대용(이성욱)'.








늦은 나이에 결혼도 못하고 부모님께 얹혀사는 '록이(최덕문)'.








부자 남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자신을 숨긴채 살아가는 '정미(김재화)'.








친구인 미소에게 가사도우미 일을 맡기면서 넉넉하게 살아가는 '재경(김예은)', 그리고 학자금 대출금을 갚기 위해, 미소와 함께 살 전셋집을 마련하기 위해 사우디 아라비아로 떠나는 미소의 남자친구 '한솔(안재홍)' 까지.







'집' 만 있는 친구들과 '집' 만 없는 미소. 모두들의 행복에 차이는 있겠으나 그 무게감이 다르다. 


영화 소공녀는 청춘들이 기성세대들에게 강요당한채 수십년을 살아왔던 '꿈' 을 이야기하거나 먼 미래에 있어, 아련하여 눈에 보이지도 않는 흐릿한 '희망' 따위를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현재', '지금', 그리고 '행복' 을 이야기한다. 남들 다 하니까, 다들 그렇게 사니까, 미래를 준비하고 개척하려 노력하고 자신의 인생을 바꾸려 결혼을 하고... 그 속에서 정작 자신의 삶과 행복을 온전히 쫓는 이는 미소 말고는 아무도 없다. 누군가에겐 부잣집으로 시집가서 아무 걱정 없이 사는게 행복이고, 누군가에겐 결혼이, 또 누군가에겐 전세자금대출로 얻은 집이 행복일 수 있다. 하지만 영화 소공녀에 등장하는 미소의 친구들은 별로 행복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대책없이 눈 앞의, 지금 당장의 행복을 쫓으라 종용하지도 않는다. 영화 소공녀는 자신의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자신만의 소소한 행복에 눈을 돌려보라고 이야기한다.


방 한 칸이 없어, 친구들 집을 전전하는 지리한 삶을 사는 와중에도 행복은 도처에 깔려있고, 월세가 저렴한 쪽방을 기웃거리는 와중에도 내가 누릴 수 있는 행복은 언제나 내 곁에 있다.


누가 보기엔 한심한 인생일 지라도 또 누가 보기엔 한없이 부럽고 또, 또, 누가 보기엔 지나간 자신의 젊은 시절의 찌꺼기 처럼 보이는 삶이라고 해도 당당하고 힘차게 살아나가자고 당부한다.



행복에 대한 정의는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숫자만큼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이 말만은 기억하자. 



행복은 언제나 우리곁에 있다.




영화 소공녀는 전고운 감독이 직접 각본과 감독을 맡은 (상업영화로는)첫 입봉작이다. 소공녀 뒤로 줄줄이 나열되어 있는 그녀의 필모그래피는 몰라도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감독임엔 틀림없다. 얼룩덜룩한 청춘들(과 청춘이 끝난이들)의 군상을 종류별로 세세하게 그려냈지만 예상하지 못하는 지점에서 터져나오는 유쾌함과 코믹함은 종종 애잔한 미소의 생을 잊게 만든다. 영화를 보고나면 글렌피딕 위스키 한 잔과 담배 한 대가 생각나는 아주 좋은 영화다.






















+

영화 소공녀의 주인공 미소와 더불어 그녀의 남자친구 한솔도 포함, 이 영화에는 좀 미친 조연배우들이 줄지어서 등장한다. 마치 일반인을 캐스팅한 것 같은 생활밀착형 연기를 보여주던 조연들. 내가 이래서 주연보다 조연을 더 사랑한다.

(특히 김국희, 이성욱, 이용녀)




















++

소공녀의 영어제목은 'microhabitat', '미소(미생물, 곤충) 서식환경' 이라는 뜻이란다. 극중 주인공 이름도 미소. 센스가 좋다 못해 흘러넘치는 감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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