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다 내가 쓴거지만
우수수 떨어져 흩날리는 겨울의 욕망들. 그 허허로운 헛소리들 사이를 비집고 나와서 에스프레소를 주문했지만, 그건 기대만큼 쓰지 않았다. 서둘러 마셔버리고는 과대포장된 과자봉지처럼 커피잔을 아무렇게나 구겨던지고 자리에 돌아오니, 어쩌면 이토록 외로운지 모르겠다.
- From 미래가 없는 어떤 대학원생
바보들과 바보가 모여, 또 다른 바보인 내가 바른 소리를 해서 그 모여있던 바보들이 깨달음을 얻었다는 말도 안되는 유머를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세상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 From 지루한 회의끝에, 우리 회사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 안도하게 된 부서 막내
시린 바람이 발밑을 스미며 곧 저물어갈 겨울에 대해 속삭일 즈음, 무심히 툭 내어 던진 말.
아 지겹다.
긴 하루 지나고 언덕 저편에 빨간 석양이 물들어가면, 따뜻한 집안 한 구석에 규칙없이 몸을 누인채, 막연한 쓸쓸함이라던가 오래된 그리움 같은 것을 발견하고 싶었다.
내 바램은 그리 대단하지 않은데, 석양이 너무 짧은 탓인지 나는 오늘도 제때에 집에 당도하지 못했다.
새벽 세시까지 아등바등 책임감속에 졸음을 쫓아보았자, 여러개의 동심원이 단하나의 원점만을 지루하게 쏘아댄다.
화살이 날자 동심원들도 춤을춘다.
하지만 어둠이 이슬처럼 내려앉자, 곁에 와 내 어께에 기대어준 너.
매일같이 발에 툭툭 채이는 무상함 속에서도 돋아오르는...
내 슬픔과 절망을 피해 예쁘게 핀 꽃..
문득 고맙고 죄송했습니다.
- From 세벽 세시까지 야근을 하느라 여자친구와의 약속을 취소한 머저리. 하지만 그 머저리는 결혼에 성공해, 그 여자친구와 삼년째 살고 있다는건 함정. '결혼하고도 이럴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아내의 타박은 사은품
꿈같은 시간 속을 헤메이다 문득 잠에서 깨어나니, 모두가 한창 일하고 있을 낮시간이었다. 황망한 마음에 어찌할지 몰랐지만, 이미 모든것이 늦어버린 뒤라서 나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이제는 어두워오는 창밖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꿈같았던 시간이 그저 꿈이었음에 대해 얼마나 헛헛해하고 공허해할지를...그리고 오늘을 잊을때까지, 그러니까 꿈을 꾸었던 사실을 잊을때까지 한동안은 괴로울 것 같다는 사실을..
체온으로 덥혀진 이불 밖으로는 한줌도 나오지 않은채 빨리 다시 잠들어 오늘 밤이 지나고 내일 아침에 눈을 뜨길 바라는 마음으로 꿈을 다시 떠올려보지만, 꿈은 꿈일 뿐이고 잠이 오질 않는다.
덥혀진 이불의 온기만이 내꿈이 잠시 나를 지나갔음을 증명할 뿐, 생기있는 기억이라곤 하나같이 먼지처럼 사방에 흩날린다.
붙잡을 수 없는 것들, 그리워 할 수 없는 것들, 믿을 수 없는 것들, 사랑했던 것들, 꿈같은 것들, 모욕적인 것들이 출근하기엔 이미 늦어버린 어둑한 창밖으로 한 가득 출렁인다.
나는 언제까지 이불속에 숨어 무단결근을 계속할 수 있을까.
- From 쿨하고 시크하게 무단결근을 하고 있다고 상상했지만, 사실은 이미 타이를 고쳐매고 있었던 어느날.
마음은 변질되기 쉬워서, 말하고 표현하는 순간에만 진심이다. 다음 순간의 진심은 무엇인지 알 수 없는거지.
신의가 무너지면 거기서부터는 영원한 결별이다. 삶은 두번의 기회를 주지 않는다. 두번째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면, 그건 그저 첫번째 기회와 비슷한 느낌의 다른 기회일 뿐이지.
영원한 가치나 불변하는 신의나 우아한 인간성이란게 분명 보편적으로 존재한다고 그렇게나 굳게 믿어왔다.
경험으로부터 실망감이나 절망을 겪을때, 그 시간들을 아프게 보내면서도 여태 그런 믿음을 버리지 못한건 내 나약함이 절망감의 이유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인간임을 잊지 않고, 순수한 열망과 아름다움을 쫓으며 살겠다는 믿음이 약해져서 절망감이 찾아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스스로를 다그치며 살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기반성적 기제가 마비된 채 욕망을 쫓곤 했고, 번번히 이기적인 선택을 했다. 자책감은 나도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달을 때마다,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중간고사 시험지처럼 내 머리속을 때리곤 도망쳤다.
인간답다는게 지상에서 발을 떨어뜨려 하늘위로 올라가는걸 의미하는건 아닌 것 같다. 몇 시간 마다 배가 고파오고, 하루가 지나면 꼭 잠을 자야하는 육신으로 뭘 얼마나 대단한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실수가 많고 조악한 선택을 수시로 반복하는 자기 자신을 부정해서는 안된다. 그러한 타인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고..
- From 재발방지 대책이 없는 사과는 사과가 아니라는걸 깨달은 철없는 대학생. 재발방지대책이 포함되어 있어도 사과할일이 얼마나 많던가
발밑에서 뽀드득하며 오늘 하루 외로이 당신의 발걸음을 기다렸다며 속삭이는 겨울.
어둠이 내리자 내가 밟고 지나온 겨울길은 그대로 내게 위로와 그리움이 되었다.
- From 그리움과 기다림. 그리고 새드엔딩
저벅저벅 걸어오다가 마주친 따스한 겨울
기울어가는 햇살에 반짝이는 갯벌
기다란 그리움이 무너지며 바스러질때 조용히 깃드는 낮은 목소리.
우리 낚시나 할까
- From 들이쳤다가 물러서기를 반복하는 파도를 보면서, 인생은 어차피 반복될 뿐이라는 꺠달음을 얻기 위해 가까운 서해바다를 찾았지만, 진득한 갯벌을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수있는게 없었던 어느 젊은날
자분자분 바스라지는 내 발자국 소리에 취하느라 누군가 나를 지켜보고 있는 줄은 미처 몰랐다. 놀라지는 않았지만 그의 발소리에 반갑게 뒤돌아섰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바보처럼 내 발자국 소리에 내가 속았나보다. 한발 한발 걸음을 옮길때마다, 가련한 가을비에 젖은 아스팔트가, 보름달이 되어가는 미완성의 커다란 달빛 아래에서 춤을 추었다. 스스로의 발소리에 속은 바보같은 가을밤의 풍경.
- From 그리움으로 닦아나가다보면 만남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굳게 믿었지만, 사실 내가 그리움으로 닦아냈던건 그저 혼란한 내 마음이었을뿐임을 알게된 어느 직장인의 퇴근길
지난번 회식자리에서 있었던 일이다. 두려워하지 말고 업무를 밀어붙이며, 의사결정권자인 부장의 지원을 믿고 나의 일처럼 일을 하라는 부장의 당부 말씀이 있었다. 대체로 회식자리에서는 추위와 무관하게 이어지는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처럼 내일 아침이면 기억도 나지 않을 당부가 이어지곤 한다. 취기와 "자원의 투입없이 성과를 내려는 욕정"이 뒤섞여 교훈으로 둔갑하고, 그것이 부장의 입밖으로 튀어나오는 순간 우리 모두는 죄인이 된다. 말씀이 길어지자, 우리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팔꿈치를 펴고 허리를 세운다. 두려워하지 말고 일하고 그 책임도 네가 져야 한다는 말이었지만, 그 말이 별로 두렵지 않았던 이유는, 우리가 제대로 일해본적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일이라는 것에 대해 냉소하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최대한 일을 안하고자 하는 동반자들 사이에 끼어 어정쩡하게 결론도 내지 못한채, 그저 페이퍼 위에 그럴듯한 색상으로 화석이 되어버린 아이디어들을 내려다보았다. 어쩌면 이제 이런 냉소는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른다.
냉소는 마음의 거리에서 난다. 아귀다툼하는 세계와 그 안에서 살아남고자 아귀로 변한/변해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리고 똑같이 악다구니하는 나를 보며 모든 식욕을 잃는다. 욕망이 사라진 빈자리는 공기째 얼어붙어 냉기조차 흘러나오지 않는다. 두려움은 부대낌에서 난다. 자기 자리 아닌 곳에 여전히 머물며 발 디밀 때 두려움이 피어난다.
난 이미 두렵다. 죄가 넘치는 곳에 은혜 또한 넘쳐나듯, 내 마음에 두려움 가득 담아 " 두려워하지 말고 업무를 추진하라"는 부장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싶다
- From 회식의 끝에 이어지는 기나긴 당부말씀. 마치 끝나지 않는 교감선생님의 훈화말씀처럼. 그렇게 나는 오늘도 초등학생이 되었다. (두번째 문단은 친구 케냐의 글을 차용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