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3-2 하브루타로 읽는 독서란?(토론요약)

by 리얼팔

강영안 교수는 역시 철학자답게 질문으로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에서 알수 있듯이, 오늘 우리가 하브루타로 나눌 내용은 ‘생각’ 자체에 대한 고찰입니다.

하베르들의 표정에서 이번 주 분량이 몇 장 되지 않음에도 그것을 이해해내기 위해 얼마나 치열한 시간을 보냈는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저 역시 본문의 내용을 완전히 이해한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준파이퍼님도 “하브루타로 읽을 때 완전히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게 좋은 것 같다”며, 하브루타의 진정한 힘은 누군가가 가르치고 누군가는 배우는 구조가 아니라, “해석할 수 있는 만큼만 해석하며 함께 덤벼보는 시도”에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번 시간은 다 함께 본문을 읽으며, 우리말이지만 다시 해석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기로 했습니다. 또 다른 하브루타의 방식에 흥미를 느끼며, 우리는 준파이퍼님의 리드로 본문을 차근차근 읽어 나갔습니다.


다 같이 읽으며 본문의 핵심 골자만 골라낸 것이 아래의 내용입니다. 준파이퍼님이 하나님께 받은, 복잡한 내용을 심플하게 정리하는 탁월한 달란트가 빛을 발했습니다.

“데카르트 목록의 첫 번째, ‘생각은 지적인 것만 포함하는 것이 아니라 정과 의까지 포함하는 통합적인 인격체의 활동이다’라는 것까지는 이해되셨죠?”

“두 번째는 지향적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그래서 무엇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니까 혼자 생각할 수 없다는 거예요. 상호작용한다는 거겠죠.”


이어서 ‘사이 공간’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며, 데카르트의 철학과는 다른 방향 전환이 이루어졌습니다. 이 부분은 데카르트 철학에 대한 보충지식이 필요해 보였고, 준파이퍼님은 “데카르트는 생각을 주체의 내면의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확신, 그런 식으로 봤기 때문에 그건 다를 수 있다”고 정리하셨습니다. 이후 ‘사이 공간’ 개념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특히 “생각한다는 것은 마음과 세계 사이, 마음과 세계가 이어지는 이 사이 공간에서 발생하는 일”이라는 설명에 대해 “왜 ‘나’가 아니라 ‘마음’이지?”라는 질문이 나왔습니다. 이에 대해 “마음은 내면과 주관, 즉 감정과 의지 등 우리 전인격적인 것이며, 마음과 세계가 상호 연결되는 그 지점, 그 중간 단계가 바로 사이 공간이다. 이 관점은 데카르트식 이분법을 거부하는 것”이라는 설명이 이어졌습니다. 즉, 생각은 고립된 내면 활동이 아니라, 마음과 세계가 맞닿는 관계의 공간에서 발생하는 사건이라는 것이지요.

“이 사이 공간이 좀 제일 어려웠지만 되게 중요한 개념인 것 같아요.”

“사이 공간이 생각보다 넓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스펙트럼이 넓어요.”

“하브루타는 데카르트 쪽이냐, 사이 공간 쪽이냐 했을 때 어떤 거라고 생각하세요? 공간 쪽이지 않을까? 하브루타는 관계니까. 지금 이게 공간에서 일어났잖아요.”

이러한 열띤 토론 속에서 다음의 정의가 도출되었습니다.


"생각한다는 것은 내 안에서 세계에 윤곽을 입히는 행위이며, 이는 곧 세계와 나 사이의 의미를 창조하는 해석학적인 사건이다.”


중간에 메이플님이 늦게 합류하셨고, 지금까지 진행된 내용을 제가 설명드리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메이플님은 처음엔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지만, 추가 설명을 통해 맥락을 완전히 파악하셨습니다. 1시간 넘게 여러 명이 하브루타로 해석한 내용을 짧은 시간 안에 습득하신 셈이지요. 이 대목에서 준파이퍼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혼자 읽는 독서가 그냥 삼키는 것이라면,
하브루타로 읽는 독서는 자곤자곤 씹어 먹는 것이다.”

by 준파이퍼


본문 해석을 마친 후, 하브루타 질문으로 넘어갔습니다. 평소와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었고,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아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만 나누었습니다.

첫번째 나눔은 공감의 발생이었습니다. “대화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테두리와 윤곽이 생기고, 이는 곧 상대에 대한 공감으로 이어진다”고 설명했습니다. 생각은 나를 벗어나 타인을 이해하게 만드는 힘을 지니며, 관계 안에서 감정적 거리감을 좁히는 작용을 합니다.


다음은 사유 공간의 확장이었습니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관계적 범위가 넓어지고, 동시에 개인의 내면도 확장됩니다. “우리가 글을 쓰고 그것을 누군가 읽을 때 독자층도 확장된다”는 말은, 사고의 확장이 외부로 향하는 확산성과 연결된다는 점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의 의견은 감정 조절의 기능이었습니다. “생각하면 화가 나지 않는다”는 말에 이어, “전두엽이 이성과 생각을 관장하는 기관인데 감정이 격해질 때 전두엽 활동이 멈춘다”는 과학적 설명도 곁들여졌습니다. 생각은 감정의 즉각적인 반응을 억제하고, 원인을 분석하며 상대의 입장을 고려하게 하는 정서 조절 작용을 가능하게 합니다.


구체적인 예로 자녀의 편지를 받은 경험이 공유되었습니다. 열한 살 아들이 어버이날을 맞아 반짝이 조각을 하나하나 붙여 만든 카네이션 카드를 선물해 주었을때 어떤 생각을 하게 되는지를 살펴보면 단순히 보여지는 것을 인식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성과 인내, 그리고 그 과정을 상상하는 행위 자체까지도 ‘생각’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세번째 하브독토 마지막 순서로 처음에 “생각하면 보편적으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질문을, “함께 생각할 때, 즉 하브루타를 통해 생각할 때 나타나는 보편적 현상은 무엇인가?”라는 심화된 질문으로 확장해 보았습니다.


브리스길라님은 “함께 생각하면 사고가 확장될 뿐 아니라, 윤곽이 넓어지고 테두리가 명확해진다”고 말했습니다. 이전에는 모호하게 느껴졌던 개념들이 하브루타를 통해 점차 분명해지며, 생각의 외형과 경계가 구체화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서로의 생각이 부딪히며 세련되고 반질반질해진다”고 표현했습니다. 함께 생각하는 과정은 단지 정보의 나눔을 넘어서, 각자의 사고가 서로를 다듬고 연마하는 일종의 ‘사고 훈련’으로 작동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이날의 토론은 『생각한다는 것』 3장으로 넘어가기 전, 생각 자체에 대한 철학적 개념에 대해 해석해 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논리적 흐름과 개념을 정리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지만, 다음 장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로 전환할 준비를 위한 중요한 관문이었고, 동시에 생각의 해석학, 생각의 윤리학으로 나아가기 위한 첫걸음을 함께 잘 내디딘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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