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양심에 대해 그는 자신이 명령받은 일을 하지 않았다면 양심의 가책을 받았을 거라는 점을 완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일이란 수백만 명의 남녀와 아이들을 상당한 열정과 가장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 죽음으로 보내는 것이었다.
여섯 명의 정신과 의사들이 그를 ‘정상’으로 판정했다(그들 가운데 한 명은 “적어도 그를 진찰한 후의 내 상태보다도 더 정상이다 ‘라고 탄식했다고 전해지고, 또 다른 한 명은 그의 아내와 아이들, 어머니와 아버지, 형제자매, 그리고 친구들에 대한 그의 태도, 그의 모든 정신적 상태가 ’ 정상일뿐만 아니라 바람직함‘을 발견했다). 그리고 끝으로, 대법원에서 그의 항소를 들은 후 그를 정기적으로 방문한 성직자는 아이히만이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라고 발표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에게 확인해 주었다. 이 영혼의 희극 뒤로 전문가들은 그의 경우가 법적인 이상 상태는 물론 도덕적인 이상 상태도 아니라는 고통스러운 사실을 내놓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그의 경우 유대인에 대한 광적인 증오나, 열광적인 반유대주의나 세뇌교육 가운데 어느 것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그의 말을 오랫동안 들으면 들을수록, 그의 말하는데 무능력함(inability to speak)은 그의 생각하는데 무능력함(inability to think),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 무능력함과 매우 깊이 연관되어 있음이 점점 더 분명해진다. 그와는 어떠한 소통도 가능하지 않았다. 이는 그가 말(the words)과 다른 사람들의 현존(the presence of others)을 막는, 따라서 현실 자체(reality as such)를 막는 튼튼한 벽으로 에워싸여 있었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몸의 중심은 심장이 아니다
몸이 아플 때 아픈 곳이 중심이 된다
가족의 중심은 아빠가 아니다
아픈 사람이 가족의 중심이 된다
총구 앞에 인간의 존엄성이 짓밟히고
양심과 정의와 아이들이 학살되는 곳
이 순간 그곳이 세계의 중심이다
아 레바논이여!
팔레스타인이여!
홀로 화염 속에 떨고 있는 너
국경과 종교와 인종을 넘어
피에 젖은 그대 곁에
지금 나 여기 서 있다
지금 나 거기 서 있다
<박노해, 나 거기 서 있다 >
"그는 어리석지 않았다. 그로 하여금 그 시대의 엄청난 범죄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게 한 것은 순전한 무사유(sheer thoughtlessness)였다.
그는 단지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결코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처럼 현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과 이러한 무사유가 인간 속에 아마도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대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 이것이 사실상 예루살렘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었다.
이는 마치 이 마지막 순간에 그가 인간의 연약함 속에서 이루어진 이 오랜 과정이 우리에게 가르쳐 준 교훈을 요약하고 있는 듯했다. 두려운 교훈, 즉 말과 사고를 허용하지 않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