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관이 본 영화 (2)

# 룸(Room)

by 키다리 아빠

가로 세로 3.5미터 작은 방. 17세에 납치되어 성폭행을 당한 후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채 감금된 한 여자. 그리고 그 안에서 한 아이를 낳고 7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갑니다.


한계 지워진 자유가 얼마나 우리를 아프게 하는지 가슴 시린 절절함으로 다가오는 영화. 오스트리아에서 발생한 실화를 모티브로 한 동명소설을 각색하여 아일랜드 출신 레니 애브라함슨이 감독을 맡고 브리 라슨과 제이콥 트렘블리가 엄마와 아이로 열연한 영화 '룸'(Room)입니다.


영화는 엄마 조이가 감금된 작은 방에서 낳은 아들 잭이 5살 생일이 되어갈 무렵부터 시작을 합니다. 이 작은 룸 밖의 세상은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아이 잭. 잭은 아침마다 일어나 방안에 배치된 사물들에 대하여 하나하나 아침인사를 건넵니다.


잘 잤니, 램프야?
잘 잤어, 화분아?
잘 잤니, 달걀뱀아?
잘 잔 거지, 카펫아?
잘 잤니, 옷장아?
잘 잤어, TV야?
잘 잤지, 세면대야?
잘 잤어, 변기야?
다 잘 잤지?



엄마 조이는 잭이 5살 생일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잭을 밖으로 탈출시키기로 결심하고 아이에게 룸 바로 건너편 밖의 세상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조이는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치는데요. 그건 잭이 룸 밖의 세상은 없다며 조이를 향해 밖의 세상으로 나가는 것을 강하게 거부를 하기 때문이었죠.


(조이)
TV에 나오는 건 진짜 사람, 진짜 물건이야
전부 진짜야
모든 사람들은 우리처럼 얼굴이 있어
TV는 진짜를 찍은 거야 그러니까 원래 있는 거라고
진짜 바다, 진짜 나무, 진짜 고양이, 진짜 개
(잭)
아냐! 그럼 그 진짜는 다 어딨는데?
엄마가 말한 진짜는 어딨는거야?
다 거짓말! 엄마는 거짓말쟁이! 엄마 똥짱꾸!
나 4살로 돌아갈래
(조이)
잭, 세상은 아주 커
얼마나 큰지 상상도 못할 걸
'룸'은 아주 작은 냄새나는 곳이라고
(잭)
방귀만 안뀌면 이방은 냄새 안 나
엄마가 말한 진짜 세상은 없다고!



하기야 가끔 여기 룸에 와서 생필품을 배달해주고 엄마와 자고 가는 아저씨 닉과(사실 닉이라는 남자는 조이를 감금하고 성폭행하여 잭을 낳게 한 납치범이지만) 엄마, 그리고 룸 안의 것들이 세상의 전부이고 우주라고 생각하는 어린 잭으로서는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마치 지구가 네모난 줄 알고 배를 타고 멀리 나아가면 떨어져 죽을 것이라고 믿었던 사람에게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은 도저히 이해가 불가능했던 것처럼 지금 여기가 세상의 전부라고 확신하고 있고 여태까지 본 적이 없는 다른 세상을 상상하기란 어려우면서도 두려운 일일 겁니다.



조이는 결국 잭을 설득하여 닉을 속이고 탈출하기 위한 위험천만한 계획을 세우게 되는데요.
그건 독감에 걸린 잭이 고열로 앓다가 죽은 것으로 위장하여 담요로 둘둘 말린 가짜 시체를 닉에게 차에 실어 밖에 멀리 있는 숲 속에 묻어 달라고 하여 가는 도중에 잭이 차에서 탈출하게 만드는 계획이었습니다.


흔들리는 트럭 짐칸 위에서 담요가 풀리며 잭은 태어나 처음으로 커다란 하늘을 바라봅니다. '빛구멍'이라 부르던 룸 안 천장에 난 사각형의 작은 유리창으로 바라본 하늘이 아니라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크기의 하늘이 잭의 커다랗고 투명한 눈망울로 들어옵니다.



이윽고 잭은 차에서 뛰어내려 달리려고 하지만 힘이 없는 연약한 다리는 이내 길바닥에 넘어지고 처음 만난 사람에게 말을 하려 해도 목구멍에서 말이 나오질 않습니다. 탈출의 결말은 관객에게 긴장감과 안도감을 동시에 안겨주며 끝이 나고 영화도 이대로 끝이 나려나 싶었는데요. 영화는 조이와 잭의 탈출 이후의 룸 밖의 삶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이젠 안도하고 마냥 자유롭고 행복할 것만 같았던 룸 밖의 커다란 세상은 전에 있던 작은 룸 안의 세상만큼이나 둘에게 녹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7년간의 부재는 밖에 있던 가족들에게도 조이와 잭만큼의 고통이 지속되던 시간이었으니까요. 부모님의 이혼. 엄마의 재혼. 조이와 잭의 행복이 아닌 자극적인 것에 집착하는 언론과 사람들의 과도한 관심. 조이는 자신에게 엄마가 늘 착한 아이가 되라고만 교육하지 않았다면 닉이 자기의 개가 아픈 것으로 조이를 유인할 때 따라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엄마에 대한 원망. 아들 잭이 범죄자의 자식이라고 생각하고 잭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 아버지에 대한 원망. 누구보다 강할 것 같았던 엄마 조이가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히스테리. 우울증. 약물 복용. 조이는 급기야 자살을 시도하고 잭은 욕실에서 신음하는 엄마 조이를 발견합니다.

답답하고 좁은 룸 안의 세상에 익숙한 잭과 그 안이 낯선 조이였지만 마냥 행복할 것만 같았던 룸 밖의 커다란 세상은 두 사람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세상이 되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세상의 편견이라는 두꺼운 벽에 갇혀 신음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가두고 있는 것일까요? 무엇이 그들을 진정 자유롭게 할 수 있을까요?


우리들에게 익숙함은 편하지만 그 익숙함은 우리를 매너리즘에 빠지게 합니다. 새로움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반복되는 갑갑한 일상들로 자리합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사물도, 사람도, 온통 자신의 삶까지도 생기가 빠져버린 식물처럼 점점 감정들이 메말라갑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결별할 수 있는 용기일 것입니다. 룸 안의 세상이 전부라는 믿음으로부터 잭을 나오게 만들었던 엄마 조이의 용기 말입니다.


룸 안에서는 엄마 조이가 잭을 살린 것처럼 이 번에는 병원에 있는 엄마를 낫게 하기 위해 잭에게는 분신과도 같던 태어나 단 한 번도 자른 적이 없는 ‘힘샘’이라고 부르던 그의 긴 머리카락을 눈을 질끈 감고 자릅니다. 머리카락을 자르며 잭은 비로소 룸 안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된 것이죠. 익숙했던 룸 안의 세상과 결별할 수 있는 용기를 엄마 조이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이번에는 잭이 엄마를 살린 셈입니다. 아니 각자의 룸 안에 갇혀 있던 가족 모두를 살린 셈입니다.



이렇게 잭과 엄마 조이는 서로 익숙함과 낯섦의 두꺼운 경계를 조금씩 허물어 가기 시작할 즈음, 어느 날 잭은 조이에게 그 룸에 함께 가보자고 제안합니다. 밖에서 바라본 룸은 뒤뜰 후미진 곳에 있는 작은 창고 건물로 그 문이 열려 있어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그리고 잭은 세상의 전부였던 룸 안의 정겨운 사물들에게 마지막으로 하나하나 작별인사를 합니다.


잘 있어, 화분아
잘 있어, 의자 1번아
잘 있어, 의자 2번아
잘 있어, 테이블아
잘 있어, 옷장아
잘 있어, 세면대야
잘 지내, 빛구멍아



두 사람이 룸과 작별하며 떠나는 시간. 커다란 하늘은 마치 둘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펑펑 함박눈이 내리면서 영화는 서서히 끝이 납니다.




감옥 안의 수용자의 삶도 잭과 조이가 온몸으로 경험했던 그 룸과 정확히 닮아 있습니다.
수용자는 닉처럼 가해자이면서 또한 잭과 조이처럼 피해자이기도 합니다. 피해를 당한 사람에게는 용서할 수 없는 가해자이지만 그 자신에게는 감옥이라는 룸과 진실한 작별을 고하지 않는다면 감옥 밖의 세상에서도 영원히 자유롭지 못한 슬픈 영혼이라는 의미에서의 피해자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에게 진정한 감옥 밖으로의 출소는 물리적인 형기의 종료가 아니라 그들 스스로를 가둔 마음의 경계를 넘어서는 순간부터겠지요. 근래에 수용시설에 대한 물리적 환경의 개선, 각종 수용자 인권 향상을 위한 제도적 장치 등 인권의 외연 확대가 마치 교정의 본질인 것처럼 포장되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안타까운 일입니다. 우리에게 정작 중요한 것은 국가 사법질서의 최후 보루가 교도관이라는 듣기 민망한 레토릭(rhetoric)이 아니라 엄마 조이가 아들 잭을 두렵지만 한걸음을 옮겨 세상으로 나아가게 한 그 마음에 있지 않을까요?



영화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우리에게 이 세상은 자유로운 공간일까요?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란 무엇일까요?
수많은 경계들로 나뉜 세상. 그 경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룸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 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의 경계를 허무는 메타포(metaphor)로 다가옵니다.
아프지만 아이를 자유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게 하려는 엄마의 간절함.

범죄자의 자식이지만 결국 사랑으로 안으려는 가족.

그리고 과거의 아픈 기억으로부터 진정으로 작별하려는 용기.

진정한 자유는, 용기는 사랑의 다른 이름들입니다. 사랑에는 우리를 가로막는 모든 경계가 없기 때문이겠지요.

영화는 엄마 조이와 아들 잭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들을 각자의 룸 안에서 세상 밖으로 나오라고 손짓합니다.


기적은 기적처럼 오지도 않고, 기적은 여전히 외부로부터도 오지 않습니다.
두꺼운 껍질을 깨고 나온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될 자유를 향한 찬란한 여정입니다.

익숙한 것에 안도하는 우리들의 삶. 그러나 그 익숙한 풍경들이 사실은 우리들의 또 다른 룸은, 감옥은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 '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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