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고요한 취업준비

잡글 08

by 리얼숲

잡글이다.

문득 요즘은 사회와 구별된 '내 생각'이란 걸 해 본 적 있나 싶은 저녁이었다. 전공은 언론학이었고, 대학원에서도 언론 실무를 배웠다. 언론사를 들어가길 희망하고 며칠 전까지 최종면접을 준비하던 시간을 보냈다. 머릿속엔 온통 언론, 기사, 프로그램, 민주주의, 법치주의... 이런 것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숱하게 적어두던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추상적인 아이폰의 메모들도 어느덧 '나'라는 1인칭의 관점보다는 '시대'와 '사회'라는 3인칭의 관점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오늘의 잡글은 오롯이 '나'라는 사람을 좀 더 들여다 보고자 쓰는 글이다.


진부하지만 근황부터 쓸까 싶다. 누가 보겠냐만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그렇다. 석사가 됐다. 석사가 됐는데, 사실 뭘 그렇게 아는지 모르겠다. 이런 멍청이 상태로 어디 가서 석사라고 해도 될지 모르겠다. 배웠다는 건, 교육받았다는 건 세상에 쓸모가 있는 일이어야 할 텐데 아직 나의 쓸모를 찾진 못했다.


어렵게 말했는데 아직 취업 못했다는 말이다. 그렇다. 말이 좋아 석사지, 백수다. 오해가 있을까 봐 문장을 할애한다. 서두에 쓴 최종면접은 떨어졌다. 솔직히 기대를 했다. '이거 이번에 되겠는데?' 라며 면접을 보면서 생각했다. '이러는데 안 뽑을 수가 있나?' 싶었다. 자만이 아니라 정말 느낌이 좋았다. 음.. 느낌'만' 좋았는 걸지도 모르겠다. 무튼 당시만 해도 해당 회사를 샅샅이 분석하고 모의면접도 두 번이나 했기에 느낌이 참 좋았다. 최종 경쟁률은 200 대 1이 조금 안 된 걸로 안다.


얼마 전 대학원 졸업식에서 최종면접 모의면접을 해 준 교수님이 슬쩍 나를 불렀다. "데미지 레벨은...?" 조심스럽게 물어보셨다. "어... 없는데요?" 사실 불합격 통보를 받은 당일엔 당연히 데미지가 있었다. 멍했다. '어? 왜?'라는 생각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아무리 곱씹어봐도 떨어질 건덕지가 없었기 때문이다(물론 회사 입장은 뭐가 있었겠지만... 지원하는 입장으로서는 말이다). 찌질하게 애인에게 전화를 걸었고 나 혼자 이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애인은 나보다 굳건해서(본인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걱정 말라고 했다. 그런 말들이 위로가, 또다시 해 볼 힘이 된 듯하다. 눈물을 흘려야 하나 싶었던 생각들은 사라지고 3시간 동안 깊고 편안한 낮잠을 잘 수 있었다.


애인의 위로와 더불어 힘을 내게 해 준 건 운동이었다. 추천한다. 우울하고 힘들고 지쳤나? 당장 헬스장 한 달을 끊고 달려라. 그것도 인터벌로. 아무 생각도 안 든다. 트레드밀을 밀어내는 내 다리와 발에 시선을 모으고, 호흡에만 집중한다. 흔들리는 체지방이 화르륵 다 탈 것만 같은 묘한 쾌감도 느낄 수 있다. 다만 실제로 빠지진 않는다. 살 빼려면... 적게 먹어야지. 아무튼 그렇게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운동을 하며 보낸 지 일주일이 지나자 일상은 다시 활기차게 돌아가는 중이다.


다만 걱정거리가 있으니 돈이다. 이 문장을 쓰자마자 생각이 스친다.

"가만 보자... 취업을 못 해도, 취업을 해도, 결혼을 해도, 아니 뭘 어떻게 살든 돈은 늘 걱정거리 아닌가?"

취업을 못한 석사 학위 있는 언론인 지망생의 돈 걱정을 쓰려다, 혹여나 이 글을 읽을 취업한 동료들의 월세, 보증금 이자, 각종 비용... 쥐꼬리만 한 월급 불평을 감안하면 내 불안은 좀 아껴도 되지 않을까 싶다. 넘어간다.


쓰고 보니 일기가 됐다. 그러고 싶진 않았는데... 그렇게 됐다.

사실 원래 쓰고 싶었던 글이 있다. 언젠가 쓰지 않을까 싶다. 안 쓴 이유는 글의 처음에 나온 이유 때문이다.

사회적인 이슈에 관한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언론과 관련된 이슈다. 지금은 마치 뉴스도 안 보고, 소셜미디어도 안 하고, 세상 돌아가는 일을 하나도 모르는 뇌로 글을 쓰고 싶었다. 그게 잘 안 된다.


직업은 없는데 직업병이 먼저 생긴 느낌이다. 추상적인 이야기를 써 놓은 걸 보면 뭔가 알맹이가 없다고 느낀다. 누가 처음 들어본 엉뚱한 이야기를 하면, "엥? 출처가 어딘데?"를 묻고 싶어진다. 덧붙여서 근거를 대라고 말하고 싶고, 조금 텐션 좋을 땐 상대의 논리를 박살내고 싶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막 똑똑하고 그런 건 아닌데... 배운 게 언론학이라 그런 색채가 묻어버렸다. 이제... 친구들 어떻게 만나지....


요즘 내 일상은 뻔하다. 아침에 일어나 신문 기사를 보고 책을 읽고 토익 점수 좀 높이려고 공부 좀 하고 운동한다. 영어 팟캐스트 들으면서 영국에 다시 여행 갈 상상 좀 하고 각종 논문을 들여다보며 논술을 대비한다. 아, 그리고 또 언론사 채용 공고가 나왔다. 준비 중이다. 아주 가끔 그래도 부모님이 아는 언론사를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제법 유력한 언론사를 들어가야 그래도 조금 효도하는 거 아닐까 싶은 고리타분한 남자 마인드로다가 생각한다. 어제 엄마와 대화를 나눴다. "뭐, 나는 KBS, MBC 아니면 잘 몰라." 그냥 내가 원하는 곳 아무 데나 찾아 떠나도 되겠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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