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우주를 만나는 직업
<한겨레> 최종 면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기차였다. 광명역을 들어서자 한 할머니가 탔다. 무수한 흰머리들 사이로 까만 머리들이 조금씩 섞여 있는, 뽀글뽀글 파마 스타일이 돋보이는 전형적인 우리네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내 앞에 서서 열차 좌석 위와 티켓을 번갈아 보았다. 이윽고 내게 표를 내밀며 "이 자리가 어디예요?"라고 물었다. 할머니가 내민 티켓엔 비어 있는 내 옆 자리의 좌석 번호가 적혀 있었다. 잠깐 자리에서 일어나 할머니를 안쪽으로 안내했다. 할머니는 "고마워요"라는 인사를 건네며 내 옆에 앉았다.
광명역을 떠나자 할머니의 휴대폰이 울렸다. 할머니는 익숙하게 화면을 넘겼지만 전화를 받을 수 없었다. 할머니가 무슨 버튼을 누른 탓인지, 통화를 받을 때 뜨는 슬라이드 하는 창이 화면 전체에 표시되지 않고, 상단으로 작게 올라간 것이었다. 벨소리는 울리는데, 평소처럼 손가락을 넘겨도 전화가 받아지지 않자 할머니는 "이게 왜 안 되지?"라며 당황했다. 나는 할머니의 폰에 손가락을 갖다 대며 "이렇게 하시면 돼요"라며 통화를 대신 받았다. 할머니는 고마움과 민망함이 조금씩 섞인 웃음으로 "아! 고마워요"라고 생긋 웃었다. 휴대폰 너머로 창가 자리에 잘 탔냐는 중년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든이 넘어 보이는 할머니는 혼자서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는 중이었다.
기차가 천안아산역을 지나자 푸릇한 논밭과 아파트가 뒤섞인 풍경이 보였다. 할머니는 한참 밖을 보다 불쑥 "요즘은 기차표 검사는 안 하죠?"라며 내게 말을 건넸다. "네, 요즘은 다 전산화가 돼 있어서요." 나의 답변에 할머니는 당신의 6.25 피난길을 꺼냈다. "그때 피난할 때는 어떻게든 타는 게 중요해서 아무렇게나 탔었어요. 표 검사하는 승무원이 오면, 몰래 요 발판 밑에 숨곤 했었는데." 통화를 받아줘서 고맙다며 보인 생긋한 웃음으로 장난스럽게 말을 하던 할머니는 "그렇게 올라가서 청량리 근처에서 정육점 했어요. 자식을 5명을 다 키우고... 10원 한 장 없었는데"라며 스쳐간 당신의 세월을 짧게 회고했다.
동대구역에 기차가 도착했지만, 할머니는 내리지 않았다. 할머니는 "여기 다음이 포항역이죠?"라고 물었다. 할머니는 나와 같은 포항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문득 할머니가 포항을 가는 이유가 궁금하던 찰나, 먼저 "포항이 고향이에요?"라고 물었다. 나는 태어나 자란 곳이라고, 그런데 성인이 돼서는 대학 때문에 떠나 살았던 곳이라고 말했다. 나는 할머니의 말투 속에서 조금씩 묻어 나오는 사투리에 "할머니도 고향이 포항이세요?"라고 물었다. 할머니의 고향은 경북 영천시 자양면의 한 마을이었다. 그리곤 더 이상 고향이 없다고 말했다. 포항제철이 지어지며 영천호를 만들었고, 그 과정에서 당신의 고향은 수장되었다고 했다. 할머니가 포항에 가는 이유는 마지막 사촌 형제의 49재를 지내기 위해서였다.
포항역 도착을 알리는 안내가 울렸다. 할머니는 죽도시장에 들러 문어를 한 마리 사 딸에게 택배로 보내려고 하는데, 역에서 얼마나 머냐고 물었다. 택시로는 약 1만 원이라, 30분 정도 타는 버스를 추천해 드렸다. "고마워요. 덕분에 오는 내내 편했어요." 할머니는 나와 헤어지는 마지막에도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생긋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리 모두에겐 각자의 우주가 있다'는 나의 선생님의 말을 좋아한다. 그리고 기자가 어쩌면 유일하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아무개들의 우주를 볼 수 있는 직업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할머니와의 동행은 너무나 사소하고 사소했다. 그런데 그런 사소함 속에서 나는 할머니의 삶에 생긴 어느 우주가 짚어지는 것 같았다.
기차에서 내려 주차장으로 가는 길, 멀찍이 할머니가 보였다. 나와 비슷한 또 다른 청년들에게 물어가며 죽도시장을 가는 버스를 확인했다. 할머니의 모습을 뒤로하며 언젠가 누군가의 우주를 운 좋게 진득이 만나볼 날을 혼자 기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