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얼숲 Jul 30. 2020

소개팅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애매한 웃음 짓기

7월의 산문 #2

저번 주 수요일. 성윤이가 전화를 받았다.


"소개팅 받을 사람 없냐고?(힐끗) 상시 대기 중이지. 어. 얘 언론정보학과 다닌다."


분명 말의 대상이 되는 건 난데 나는 저 대화에 왜 소재가 되는지 모르는 그런 상황. 멀뚱멀뚱 일을 끝낸 뒤의 피곤함을 안은 채 전화를 마친 성윤이에게 물었다.


"뭔데?"

"아. 너 소개팅하라고."


그렇게 일요일이 됐고 어색함 한 스푼과 그래도 꾸며야지라는 마음 한 스푼을 청포도 에이드처럼 섞고 약속 장소로 갔다. 영화 <뷰티 인사이드> 이후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어느샌가 초밥도 첫 만남의 음식이 되었다는 생각에 근처 초밥집으로 향했다. 대화는 재밌었다. 으레 그러는 것처럼 밀당도 없었고 중간중간 여백도 적었다. 의대를 다닌다는 그 친구 덕에 <슬기로운 의사생활> 이야기도 한껏 더 재밌게 했다. 카페를 갔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일종의 편함을 느꼈다. 그냥 나와는 다른 삶을 살아온 그리고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편하게 듣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날은 인사를 끝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친구들의 장난이 이어졌다. 

"진국이 덕에 우리도 의대 지인 생기는 거가?"

뭐 나도 그렇지만 친구의 연애 비슷한 소재 덕에 우리는 잠깐 웃고 떠들었다.

그리고 눈치 빠른 현준이가 말을 이었다.

"근데 얘 별로 안 좋아하네. 인마 좋았으면 벌써 헤벌쭉하고 있어야 하는데 뭐 퇴근하고 왔을 때랑 얼굴에 별 차이가 없다."  


나를 좀 알긴 아는 것 같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자면 내가 만났던 친구는 조금 더 쾌활한 '장겨울 쌤'이었다.(물론 내가 정원이는 아니다) 목소리도 체형도 느낌도 딱 그랬다. 다만 더 사교성이 있었고 덜 진지했다. 스테레오 타입을 가지고 사는 건 좋지 못하지만 어떻게 보면 전형적인 스테레오 타입을 대입하기 손색이 없는 친구였다. 자신을 덜 드러내고 혼자 하는 것에 익숙한 친구였다. 학구열 높은(그리고 좀 고소득층인) 부모님 밑에서 자라 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의대를 갔고 의대에 진학 후엔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은 또 그대로 하는. 조금은 나와 다른 모습과 방향성으로 삶을 사는 친구 같았다. 그 날의 대화를 마무리할 쯤에 내가 그런 말을 했다.


"나와 비교했을 때 너는 더 이성적이고 덜 감성적인 거 같아."


사실 이 말의 행간은 '너와는 감정적인 소통이 안 될 것 같아'였다. 

분명 대화는 재밌었다. 그런데 딱 거기까지였다. 눈앞에 있는 이 친구를 더 만나고 싶다거나 이후에 또 연락을 하며 애매한 감정의 즐거움을 느끼고 싶다거나 뭐 그런 기타 등등의 설레고 쪼이고 미치고 팔짝 뛸 것 같은 마음이 하나도 생기지 않았다. 내 심박수가 그 어떤 때보다 정상을 달리고 있었다. 친구들의 권유에 한 번 더 만나봤지만 마찬가지였다. 정말 냉정하게 말하면 왜 이런 애매한 웃음을 지으며 시간과 돈을 허비해야 하는가 의문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돌아오는 길에 그런 생각도 들었다. 연애는 그럼 어떤 행동이며 어떤 형태인 걸까? 단순히 그 끝의 결과가 성적인 행위만은 아닐 텐데. (또 그렇게 믿고 싶다) 잘은 모르지만 괜히 그 친구가 신경 쓰이고 연락하고 싶고 피곤해도 보고 싶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침대를 뒹구르며 폰만 쳐다보는 그런 느낌 같긴 하다. 


앞으로 웬만해선 소개팅은 하고 싶지 않다. 성윤이 말처럼 나는 소개팅 같은 깔아놓는 판에는 어울리지 않는 사람 같기도 하고 나 역시 친하게 지내며, 편하게 지내며 누군가를 만나는 일이 더 좋다. 이전 에세이에 적은 대로 멋짐을 느끼는 가장 빠르고 획기적인 방법 역시 그런 거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이루어지지 않을 애매한 소개팅에서 어색한 웃음을 짓는 것보다 감정을 더 잘 교류할 수 있는 자연스러운 관계가 또 오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글을 마쳐야겠다. 



"뜨거운 여름밤은 가고 남은 건 볼품없지만 또다시 찾아오는 누군갈 위해서 남겨두겠소."

-잔나비

작가의 이전글 인천국제공항의 두 날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