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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엄마의 발이 빨라지는 때

너를 위해 걸어야 할 때

by 쫄쫄C

2023년 7월24일. 솔직히 내 가슴속엔 계속 찌끄러기 같은 게 남아있었다. 개운치 않은 기분이 계속됐다.


'항암 하기 싫다.'


항암을 시작하기로 얘기가 된 이후 가장 먼저 한 일은 당연히 초록창 검색이었다. 수많은 투병기가 있었고, 그중 상당수가 중간에 중단됐다. 추측컨대 아이가 '에이, 퉤, 못해먹겠다!' 하고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것이다. 그나마 남아있는 기록 대부분도 아이가 항암기간 어마어마한 고통을 겪었다는 내용이었다. 수염이 빠지고, 식음을 전폐하고, 처음으로 화장실 실수를 하고, 마침내 화석처럼 굳어져 스러져갔다는 그런 이야기. 정보도 많이 얻었지만 공포도 꽤 많이 얻었다. 내 욕심으로 아이를 괴롭게 하는 것 아닌지 의심됐다.

이아는 0세때부터 기백이 남다른 친구였다. 1세 오빠가 후두려 패는데도 눈빛만은 꺾이질 않았다. 분노로 가득찬 그녀는 열심히 밥을 먹고 몸을 불려 1년 뒤 오빠를 패기 시작했다.


이럴 땐 프로페셔널이다. 전문가의 권위에 상당히 기대는 편인 나는 이번에도 전문가의 의견에 기대 보기로 했다.


일단 수의사 친구와 크고 웅장한 유명 동물병원의 힘을 빌렸다. 수의사인 고등학교 동창은 갑작스러운 내 연락에도 짜증 없이 "다른 병원에서도 상담을 해보고 항암을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 아이가 어린 편이니 항암을 안 해보기는 아쉽다"고 조언했다. 유명 동물병원에서 만난 똑순이 수의사도 비슷하게 말했다. "아이가 어린 편이라 항암이 잘 되면 2년 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다. 항암을 안 할 이유는 없다." 대신 그는 한마디 더 보탰다. "방사선 치료가 효과가 꽤 좋은 편이다. 만약 내 아이라면 방사선 치료도 한번 고려는 해볼 것이다."


방사선 치료를 고려하지 않은 건 진단병원 조언 때문이었다. 수술을 받은 병원에선 '종양이 꽤 잘 떼어져 방사선 치료를 할 대상이 없다. 이건 좋은 일이다. 바로 항암을 시작해도 될 것 같다'고 했었다. 하지만 다시 선택지에 들어왔으니 당연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유명하다는 방사선 센터에 진료자료를 모두 보내니 회신이 왔다. '방사선 치료가 급한 아이는 아니다. 보호자의 선택이겠지만, 항암을 먼저 진행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 나름대로 근거와 당위를 얻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그래, 항암이다. 우리 뚱냥이라면 못 버틸 이유가 없다.


병원을 갔다가, 전화를 했다가, 메일을 보냈다가, 이랬다가 저랬다가 하고 나니 맥이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평소에 이렇게 재빨리 살았다면 아마도 위대한 인물이 됐을 텐데. 하지만 평소엔 이렇게 살 생각이 전혀 없다. 오로지 내 아이들을 위한 일일 때만 이렇게 발이 빨라질 수 있다.




고양이 림프종, 그중에서도 비강 림프종은 방사선 치료가 꽤 효과적이라고 한다. 때려잡아야 할 종양의 위치를 잡기가 좋은 편이라서 그런 것 같다. 외과 수술로 종양 크기를 충분히 줄이기 어려운 경우엔 방사선 치료로 종양 크기를 줄이고, 그 이후에 항암을 진행하는 게 보통이다. 방사선 치료로 완치는 어렵기 때문에 항암은 사실 필수 요소라고 볼 수 있다.


수의사 친구는 "방사선 치료가 선택하기에 상당히 어려운 옵션"이라고 했다. 상담 과정에서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급하게 종양 크기를 줄여야 하기 때문에 매일 치료를 진행한다. 그런데 전신마취를 해서 진행하는 치료이기에 아이에게 무리가 될 수 있다. 방사선 센터에서도 "당장 호흡이 곤란해 삶의 질이 많이 떨어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방사선 치료를 후순위에 둘 수도 있다"는 설명을 했었다.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내가 상담을 받은 센터는 1회당 200만원 정도가 든다고 했다. 이걸 3~5회 정도 진행한단다. 주변부에 전이됐을 경우 추가 검사 및 처치료가 들 수 있다. 최소 600만원, 최대 1000만원까지 각오하고 들어가야 하는 셈이다.


항암이라고 해서 사정이 낫냐, 그렇지도 않다. 일단 우리 아이의 경우 혈액검사와 초음파, CT와 비강 내시경, 수술과 추가 CT 등 종양을 제거하기까지 320만원 정도가 들었다. (이전까지 다닌 병원비는 뺀 거다.) 항암은 총 16회, 24주 일정으로 진행되는데 병원비가 매번 40만원 정도라고 했다. 어림잡아 640만원 가량이다.


항암은 매주 같은 시간에 진행된다. 회사원이라면 이 스케줄을 감내하기 쉽지 않다. 내가 휴직 중이 아니었다면 우리 아이의 치료는 아주 많은 희생을 요했을 것이다. "우리 냥순이는 항암치료, 우리는 금융치료"라는 남편의 말이 전혀 틀리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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