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vs. 학습자
초보강사 시절의 일입니다.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김종명 코치님이 우연히 제 강의를 듣게 되었습니다. 다음 날 같은 장소에서 코칭 강의가 있는데 미리 오신 것이죠. 친분이 있다고 하더라도 업계에서 워낙 손꼽히는 명강사님이라 솔직히 부담은 있었습니다.
그날은 D사 팀장님들에게 커뮤니케이션 기법을 강의하는 날이었고, 저는 소통에 관련한 이론인 ‘조해리의 창’을 나름 위트를 섞어가며 생생한 사례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다행히 참여자들의 집중하는 눈빛과 간간히 보이는 미소를 통해 강의가 잘 풀려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요. 다행이었습니다.
강의를 마친 후 코치님과 저녁을 함께 했습니다. 전문가에게 원포인트 레슨을 받을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놓칠 수 없지요. ‘코치님, 저도 강의를 잘하고 싶은데, 제 강의에서 개선할 부분을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정말 괜찮아요?’라고 되물으시더군요.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그러시나? 뭔가 조금 불안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괜찮다고 말씀드렸죠.
“강의 시간에 보니 조해리의 창을 참 잘 설명하더라고요. 그런데 나라면 그렇게 안 하겠어요”
“‘그럼 어떻게 하죠?”
“나라면 참가자들이 짝을 지어 서로에게 이 내용을 설명할 수 있도록 하겠어요”
“이 내용을 모르는 분들도 많을 텐데요?”
“그럼 어때요?”
엥? 이게 뭔가 싶었습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다음 말씀.
“강사가 주인공이 되는 강의 말고 참가자가 주인공이 되는 강의를 하세요”
코치님의 표정과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뒤통수를 빡! 하고 한 대 맞는 느낌이었습니다. 강의 중에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기분을 즐겼던 모습이 갑자기 부끄러웠습니다. 그 날 강의의 주인공은 분명히 저였습니다. 이 날의 코치님과의 대화는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참가자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 깊게 고민하게 만들어주었습니다.
강의에 참여한 사람을 바라보는 3가지의 관점이 있습니다. 관점은 행동을 결정하지요. 따라서 3가지 관점에 따른 3가지 강의방식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듣는 무리라는 뜻이죠. 이 표현은 ‘내가 말할 테니 당신들은 듣기만 하세요’라는 뜻을 내포합니다. 참가자는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없습니다. 질문할 기회도 없죠. 참가자의 의견과 질문은 중요하지 않다고 간주됩니다. 주입식 단체교육에서 참가자를 대하는 방식이 바로 이 관점에서 출발합니다.
이때 참가자는 가르치고 길러져야 하는 대상입니다. 그래서 피교육생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참가자를 누군가가 이끌어 주어야 하는 수동적 대상으로 보는 것이죠. 회사가 주도하고 교육생은 이끌려가는 방식입니다. 마치 당근과 채찍으로 말을 움직이듯 보상과 징계로 교육생을 움직이려 하죠. 기업교육이 진행되는 강의장에서 종종 나타나는 풍경입니다.
참가자를 배우고 익히려는 사람으로 보는 것입니다. 자기에게 필요한 것을 스스로 찾아서 학습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죠. 자발적이고 주도적인 사람 말입니다.
여러분은 그 사람을 무엇이라 부르십니까? 청중으로 온 사람을 화자로 만들고, 교육생으로 온 사람 속의 학습자를 끌어내는 일. 바로 이 일이 러닝퍼실리테이터가 해야 할 가장 첫 번째 미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러닝퍼실리테이터의 중요한 덕목은 ‘학습자’에 대한 믿음입니다. 강의 참가자 모두가 학습자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사석에서 학습자들을 ‘돌대가리’라고 표현하는 강사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앞으로도 정말 돌대가리만 만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사의 관점이 강사의 태도를 결정하고, 강사의 태도는 학습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그래서 참가자를 믿고 존중하는 것이 러닝퍼실리테이션의 출발입니다. 강사가 참가자를 학습자로 대할 때에만 학습자가 강의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학습자가 주인공이 되는 강의가 처음에는 어색할 수 있습니다. 강사가 쥔 운전석의 핸들을 학습자에게 넘겨주는 것이 두려울 수도 있지요. 위험한 모험처럼 느껴질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때부터 모호함을 다루는 힘이 생겨나기 시작합니다. 함께 만들어가는 학습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마치 내가 강의실에서 없는 것처럼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선생으로서 성공했음을 알리는 가장 큰 신호이다.
– 마리아 몬테소리 Maria Montesso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