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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수 Jul 17. 2020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생각하는 보헤미안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히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김춘수의 「꽃」      


김춘수의 꽃은 지금까지도 많이 사랑받는 시다. 

이 시를 읽으면 이름에 대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6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반 친구들 앞에서 나의 이름이 좋다고 종종 말씀하셨다. 그 시절만 해도 여자가 남자 이름을 가진 경우는 별로 없어서 놀림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내 이름을 한자로 풀이하면 물이 깊도록 수명을 누린다 뜻이라서 정말 이름의 의미 때문인지, 아니면 친구들에게 놀림받지 않도록 하는 배려여서인지 알 수 없지만 선생님의 칭찬이 감수성 예민한 소녀에게는 고마울 따름이었다. 이름을 응원하는 선생님 덕분에 6학년의 나는 한껏 기를 펴고 발전할 수 있었다.

그해 D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전국 일기 쓰기 대회에서 대상을 받았는데 멋진 트로피에는 나의 이름 끝자가 수가 아닌 숙으로 표기되어 있었다. 여자 이름 끝 자는 숙이나 자자가 대세인 시절이었다. 나의 이름이 아닌 트로피는 의미가 없어 성장하면서 버렸는데 지금 생각하면 왜 이름을 고쳐 달라고 말하지 못했는지 후회가 되었다.

오래된 노래 중에 “내 이름 (예솔아)”라는 재미있는 노래가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따라 부른 기억이 난다.

“예솔아”할아버지께서 부르셔/“예.”하고 대답하면 “너 말구 네 아범”/“예솔아” 할아버지게서 부르셔/ “예.” 하고 달려가면 “너 아니고 네 엄마”/ 아버지를 어머니를 “예솔아-”하고 부르는 건/ 내 이름 어디에 엄마와 아빠가/ 들어 계시기 때문일 거야./

노래를 부른 꼬마 아이가 너무 귀여워 노래에 빠져들다가 가사 내용을 음미해 보면 이름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부분이 있다.

지금도 자기 이름이 아닌 자녀 이름이나 ○○엄마, ○○아빠로 불리고 있는 건 아닌지? 

이름에 대한 기억으로 딸의 이름을 짓던 날을 잊을 수 없다.

딸이 태어나고 이름을 뭘로 하지? 하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학교에 출근하신 아버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옥편을 찾고 연구를 해서 한자 이름인 ○○로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리고 불과 몇 시간 뒤 남편의 전화가 왔다. 예쁜 한글 이름이 생각났다고....... 놀랍게도 아버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똑같은 이름이었다. 

결국 아버님이 정해주신 한자로 딸의 이름을 선택했지만 할아버지와 아빠가 같은 날에 같은 이름을 지은 건 우연이 아닌 것 같았다. (사랑을 받아 탄생한 자기 이름을 딸은 지금도  너무 만족하게 생각한다.)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 자기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면서 이름이 정해진다.

어떤 사람은 나의 딸처럼 자기 이름에 만족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있다.

평생 이름이 짐처럼 느껴지고 들을 때마다 싫고, 일이 안 풀려 개명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름을 바꾸어서 행복할 수만 있다면......

어쨌든 누군가 뒤에서 자기 이름을 부르면 돌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고유한 자기 이름에 자부심을 가지고, 서로 이름을 불러주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김춘수의 꽃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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