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디오를 듣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디지털 시대에 라디오는 왠지 아날로그 같은 감성이 있고, TV가 달린다면 라디오는 걷고 있는 느낌이 드는데도 많은 사람들은 라디오를 듣는다.
직장을 그만두고 내가 제일 먼저 한 일은 라디오를 듣는 일이었다.
퇴직 후의 삶을 나름 계획하고 떠나왔지만 출발부터 예기치 못한 코로나 19로 인해 차질이 불가피했다. 긴 세월 고생한 자신에게 가고 싶은 나라를 여행하는 선물을 계획했건만 한 발도 내디딜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남편이 출근한 후 오래된 카세트 라디오를 꺼내 먼지를 틀고 주파수를 맞추었다.
아침 프로그램 진행자들의 목소리가 활기차게 들려왔다.
이른 시간 진행을 하려면 잠도 설치고 출근했을 텐데 영어를 발음할 때처럼 목소리를 경쾌하고 톡톡 튀게 발음했다. 퀴즈도 하고 커피 쿠폰도 쏘면서 아침 출근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했다. 듣다 보니 재미있어서 커피를 드립 해서 테이블에 앉아 여성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방송을 들었다.
라디오는 순발력과 재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주제를 주면 빠르게 생각하고 문자를 순간에 보내야 하는 민첩함이 필요했다. 내가 더듬거리며 문자를 보내는 동안 이미 다른 사람의 도착 메시지가 전파를 타고 있었다.
라디오는 따스함과 다정함까지 겸비했다.
점심때 혼밥을 하면서 신청곡을 메시지로 보냈더니 진행자가 사연을 읽어주고, 신청한 폴킴의 노래도 틀어주었다. 라디오를 듣기 시작한 첫날 퀴즈에 참여해서 작은 선물까지 당첨되는 행운을 얻기도 했다.
그날부터 라디오는 나의 주방 친구가 되었다.
TV나 휴대폰의 보는 것에 익숙했던 나의 생활이, 귀로 듣는 라디오로 자연스레 옮겨 가고 들으면서 일을 하고 들으면서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보통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에는 따스함이 넘쳐났다.
예전의 음악다방 (지금의 카페가 예전엔 다방으로 불리었는데 ○○ 다방 하면 왠지 촌스럽게 느껴지는 건 나만의 생각일까?)에서 노래를 신청하고 디제이가 내가 신청한 곡을 틀어주면 행복했던 기억이 났다.
라디오에서 타인이 선택한 곡들을 듣고 있다 보면 예기치 않은 추억들이 소환되기도 한다.
노래는 신비한 힘이 있다. 어떤 노래를 들다 보면 덩굴 식물처럼 줄줄이 엮여 그날의 기억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마법사나 주술사가 최면을 거는 것처럼.
직장에서 병원에서 운전을 하며 사람들은 라디오를 듣는다. 병실에서 환자들은 자신보다 아픈 타인의 사연들을 들으며 희망을 꿈꾸기도 하고, 일터에서 사연과 노래를 들으며 묵직한 피로를 잊기도 한다.
사람들은 노래뿐만 아니라 뉴스를 듣기도 하고 시사 상식을 듣기도 하고 많은 정보를 라디오를 통해서 얻는다.
나는 요즘 아침 설거지를 하면서 교통 방송을 듣는다.
막히고 뚫리는 교통상황을 듣고 있으면 나도 출근 대열에 서 있는 것 같고 더 부지런해진다. 그리고 교통 방송을 들으며 서울로, 제주도로 순간 이동하는 재미있는 상상을 하기도 한다.
밤의 라디오는 편안하다.
하루의 피곤에 절은 사람들과 불면증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위해서 진행자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포근하다.
이별을 한 사람이나 직장에서 힘든 상황을 겪은 사람들을 위해 사연을 소개해 주고 위로도 해준다. 밤에는 팝송이나 감미로운 노래들이 더 많이 흘러나온다.
인터넷 방송이 없던 예전의 우리는 「별이 빛나는 밤에」를 들으며 청춘을 향한 꿈을 꾸기도 했었다.
별이 빛나는 밤에는 1969년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50년 넘게 방송되고 있는 최장수 음악 프로그램이다. 나의 젊은 날엔 가수 이문세씨가 별밤지기였었는데 청춘의 열병들이 별밤을 들으면서 치유되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라디오를 들으며 아련한 감성에 젖어 글을 쓰는 밤, 누군가 신청한 퀸의 Love of my life가 감미롭게 나의 추억을 소환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