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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현수 Aug 21. 2020

내 사랑 휴대폰아 무사하니?

-휴대폰과 이별하며

지금도 그날 일을 생각하면 아찔하다.

살던 아파트 옆 동으로 이사를 가서 시댁 식구들과 저녁을 먹기로 한날이었다.

오랫동안 살던 아파트 동 호수만 바뀌었기 때문에 집들이보다는 가족모임 차원의 저녁 식사 한 끼였다.

요리를 척척 해내는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그날 저녁 조금 경황이 없었다.

나물을 무치고 생선을 굽고 샐러드를 준비하고 마지막으로 갈비찜을 할 차례였다.

새로 산 전기오븐(전자레인지, 스팀오븐 겸용)에 정성껏 재워둔 갈비를 넣고 버튼을 눌렀다. 시간이 지날수록 갈비는 맛있게 익어가는 듯 주방에는 달콤 고소한 냄새가 넘쳐났다.

땡! 요리가 다 되었다는 신호음이 울렸으나 잘 익은 고기를 선호하는 나는 몇 분 더 시간을 누르고 전기오븐 문을 탁 닫았다.

야채를 씻다가 부족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퇴근하는 남편에게 전화를 하려고 휴대폰을 찾았다. 그런데 주방과 거실 안방을 뛰어다녀도 끝내 휴대폰은 나오지 않았다.

그 순간 오븐레인지 위에 올려 두었던 휴대폰이 섬광처럼 지나가자 등골이 서늘하고 발이 얼어붙었다.

뉴스에서 연이어 휴대폰 배터리 폭발과 휴대폰 폭발 사건이 자주 방송되던 때여서 상황은 더욱 심각했다. 나는 재빠르게 전기오븐 코더를 뽑고 오븐 문을 열었다.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전용 장갑을 끼고 최대한 얼굴을 반대 방향으로 돌리고 갈비가 돌아가고 있는 오븐용기를 들어내었다. 부엌 창문을 활짝 열고 바람이 잘 들어오는 곳에 던지듯이 두고 멀찍이 서 있었다. 잠시 뒤 비장한 마음으로 온몸을 무장하고 오븐용기를 들여다봤다. 세상에.......

전기오븐 위에 있던 오븐용기와 구이 석쇠 오븐용기 2개를 겹쳐 돌리는 실수를 했는데 그 속에 내 휴대폰이 있었다.

자동요리 코스 17분에 10여분을 타이머로 연장했으니...

약 30분을 갈비와 함께 내 휴대폰이 전기오븐 속에서 돌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기적처럼 휴대폰은 조금 따뜻하고 투명 젤리 케이스가 옅은 브라운색으로 변했을 뿐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전기오븐이 아니고 전자레인지였으면 어땠을까? 폭발이 일어나고 큰 사고가 나지 않았을까? 119가 달려오고 기자들이 뉴스 기사를 취재하고,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맛있게 저녁식사를 하고 무사히 가족 모임은 잘 마쳤지만 며칠간 흥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내 휴대폰 기종인 S사에 웃지 못할 해프닝을 제보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30분을 전기오븐렌지에 돌려도 폭발하지 않는 아주 견고하게 잘 만들어진 휴대폰이라고ㅋㅋ

리튬 이온 배터리 자체가 과열되면 쉽게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고 하는데 정말 큰일 날 뻔했다.

며칠 동안 휴대폰의 상태를 관찰하고 충전할 때도 계속 옆에서 지켜보았다.

힘든 일을 겪은 후 나는 휴대폰을 애지중지하고 사랑하게 되었는데 어머님이 입원하신 병원을 다녀오던 날 지하철 화장실에서 아주 순식간에 잃어버렸다.

화장실을 나와서 불과 몇 분 만에 휴지걸이 위에 올려둔 휴대폰이 생각나서 전속력으로 뛰어갔으나 사라져 버렸다.

아직도 화장실 밖에 서 있다가 의도적으로 싹쓸이 해가는 사람들이 있다니......

어지간한 휴대폰은 요즘 가져가지도 않는다는데, 나에게 2번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최신 기종도 아니고 오븐 사건에서 살아남은 나의 사랑 휴대폰을, 작심하고 가져간 얼굴 모르는 사람 때문에 며칠 잠을 못 잤다.

사진 찍기를 좋아해서 모아둔 엄청난 양의 사진과 (N사 사진 저장소에 올려둔 사진은 무사) 짬짬이 써둔 글들과 정보들이 몽땅 사라져 버렸다.

휴대폰 분실 신고를 하면 경찰이 출동? 하는 것도 놀라웠지만 잃어버린 휴대폰은  결국 찾을 수는 없었다.

지금도 나는 가끔 그날 일들을 생각한다.

내 사랑 휴대폰아 무사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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