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음미하고 그 시를 천천히 받아들이기보다는, 시험을 위해서 분석하고 외워야 했던 힘든 기억 때문일까?
그런데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박성룡 시인의 「풀잎」이라는 동시는 참 좋다.
이미지가 선명하고 읽다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저절로 외워진다.
해맑은 아이처럼 순수해지는 기분마저 든다.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하고 그를 부를 때는
우리들의 입 속에서는 푸른 휘파람 소리가 나거든요.
바람이 부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몸을 흔들까요.
소나기가 오는 날의 풀잎들은
왜 저리 또 몸을 통통거릴까요.
그러나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풀잎'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 돼 버리거든요.
출처 : 박성룡의 「풀잎」 전문
이 시를 읽으면서 사람들은 행복해한다.
낭송 시로도 인기가 많으며, 한국인이 좋아하는 애송시에 뽑히는 시이기도 하다.
‘풀잎’~하고 불러보면 정말 휘파람 소리가 나는 것 같다.
이 시를 읽고 바람 부는 날 풀잎을 만나러 간 적이 있었다.
가만히 풀잎을 보고 있으니 풀잎은 참 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흔들릴 뿐 꺾이지 않고, 나무처럼 강하지 못해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힘든 순간을 잘 버텨내고 있었다.
소나기가 오는 날의 풀잎들이 몸을 통통거린다는 표현은 너무 싱그럽다. 풀잎 위로 통통 떨어지는 빗방울들. 내가 연주자라면 피아노 건반을 통통 거리며 이 느낌을 표현해 보고 싶다.
전람회에서 어느 화가의 ‘비 오는 날의 풀잎’ 그림을 보고 와서는, 한 동안 마음이 싱그럽고 기분이 좋았었다. 초록 풀잎들 위로 내리는 빗방울을 너무 잘 표현해서 맑은 날인데도 마치 비 오는 거리에 서 있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1980년대 최고의 싱어송라이터로 인기를 누렸던 최성수의 「풀잎사랑」은 온 국민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포크와 댄스를 접목한 <풀잎사랑>은 노랫말 연구회가 제정한「87 한국 가요 노랫말 대상」에서 ‘밝은 노랫말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출처 : 최성수 「풀잎사랑」 앨범
싱그러운 아침 햇살이 풀잎에 맺힌 이슬 비칠 때면 / 부시시 잠 깨인 얼굴로 해맑은 그대 모습 보았어요 / 푸르른 날에는 더욱더 사랑하는 마음 많았지만 / 햇살에 눈부신 이슬은 차라리 눈을 감고 말았어요 / 그대는 풀잎 나는 이슬 그대는 이슬 나는 햇살 / 사랑해 그대만을 우리는 풀잎 사랑 / 그대는 풀잎 풀잎 풀잎 나는 이슬 이슬 이슬 / 그대는 이슬 이슬 이슬 나는 햇살 햇살 햇살 / 사랑해 그대만을 우리는 풀잎사랑
출처 : 최성수의 「풀잎사랑」 가사 일부분
지금 생각하면 단조로운 가사 일 수 있는데, “그대는 풀잎 풀잎 풀잎” 이 부분이 들어가서 노래를 맛나게 한 것 같다. 그대는 풀잎, 나는 이슬, 그대는 이슬, 나는 햇살...... 재미있는 가사와 가창력 인정받는 가수의 경쾌한 목소리는 이 노래가 오랫동안 사랑받는 비결인 것 같다.
「 그러나 풀잎은
퍽도 아름다운 이름을 가졌어요.
우리가 '풀잎', '풀잎'하고 자꾸 부르면,
우리의 몸과 맘도 어느덧
푸른 풀잎이 돼 버리거든요. 」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청명한 가을날이지만,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하는 답답한 요즘, '풀잎', '풀잎'하고 자꾸 부르면서, 몸과 마음이 싱그러워지는 날들을 보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