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기와 질투 말고 부러워하는 마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릴 때 만나는 '악의'와는 비교할 수 없는, 여러 가지 모습의 '악의'를 만나곤 한다. 학창 시절에 만났던 '악의'의 대부분이 질투였다면, 사회에서 만나는 '악의'는 대부분이 시기 혹은 그들의 생존을 위해 나의 희생을 원하는 문제였다.
질투는 너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해서 왜 나만큼 나를 생각해주지 않느냐는 억울함과 나 말고 다른 사람에게 네가 가버릴지 모른다는 불안에서 나온다. 나의 부족함을 네가 알아버려서 나를 떠날까 봐 불안한 나라서, 상대가 아무리 오해라고 말을 해도 나의 결핍과 공포에서 시작된 감정이라 상대의 설명은 들리지 않는다. 그래서 시작되는 다툼이 질투인데, 우정이던 사랑이던 질투라는 감정은 어쨌든 사랑하기 때문인지라 지치고 불편할 순 있어도 맹목적인 나의 파괴를 원하지는 않는다. 가끔 영화나 드라마에선,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너를 파괴하여 아무도 같지 못하게 하겠다는 스토리가 나오긴 하지만 여기까지 가는 건 일반적인 범주는 아니니....
하지만 시기는 좀 다르다. 타인의 성취나 별거 아닌 행복까지도 자신의 현재보다 좋아 보인다고 생각되면 불행해진다. 자신의 불행의 원인이 너의 행복임으로, 내가 불행하지 않는 방법은 '행복하지 않은 너'말고는 대안이 없다. 분명히 나랑 비슷하다고 생각해서 동질감을 느끼고 서로에게 공감하는 사이였으나, 나보다 한 발 앞서있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 나는 뭐 했나 싶은 후회뒤로, 한없이 가치 없고 초라하고 게을렀다는 자책이 따라온다. 여기서 빠져나오는 길은 상대를 끌어내려 나와 같은 위치라는 것을 확인하거나, 거리를 두고 소식을 듣지 않거나 밖에 없다. 네가 잘되면 내가 초라해진다는 고통이라, 때로는 맹목적인 불행을 바라기도 한다. 또 어떤 경우는 네가 불행해지면 내가 너를 위로하면서 자기만족을 느끼게 되는 관계를 '좋은 관계'로 정의해 버리고, 그런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래서 너의 불행을 바라는 관계가 된다.
그런데 가장 무서운 사람은 시기와 질투가 섞여있는 사람이었다. 분명 좋은 친구였고 동료였던 사람. 어떤 때는 나를 생각해 주는 위로에 진심이 느껴지다가도, 또 어떤 때는 선명한 시기와 질투가 느껴져 나를 한없이 헷갈리게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가 있다. 너의 시기 어린 마음을 이해해 보려고도 해 봤지만, 그마저도 위로하는 자가 위에 있는 너에게는 더 분노만 더 안겨 줄 뿐이었다. 스스로에게 향한 자책과 분노가 어느새 '나'에게로 방향을 바꾸더니, 이유 없는 미움으로 밀어내던 사람들. 어느 순간 그들은 마치 나를 대변하고 있었고, 나도 모르는 나의 이야기가 나만 빼고 진실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나를 내가 원치 않았던 상황으로 밀어냈던 사람들 역시 시기와 질투가 섞인 친하다고 믿었던 사람들이 었었다.
시기와 질투 말고, 부러워하는 마음으로 나눠보는 건 어떨까.
부러움은 패배감보다는 용기를 준다.
네가 해냈다는 사실은 나를 작게 만들기보다 나와 비슷한 누군가 해내는 걸 지켜보면서 멀게만 느껴지던 세계가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거리가 된다.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내 옆에 함께 있던 사람이 해내는 걸 봤기 때문에, 목적지와의 거리가 줄어들고 내가 설 수 있는 무대의 범위가 넓어지는 것이다.
부러움은, 타인의 성공을 바라보며 감정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성공을 통해 내 가능성을 재측정하는 동기가 된다. 시기와 질투가 관계를 갉아먹는 동안 부러움은 관계를 통해 확장된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건 타인의 성공이 아니라 멈춰 있는 나를 스스로 비난하고 있는 못난 마음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진심으로 부러워하자. 그래서 너의 성공은 나도 성공할 거라는 증거가 되는 것을 함께 기뻐하자.
그런 마음으로 살아갔으면 한다.
https://youtu.be/0kmHEKcRjpo?si=fWGsEz_uCIkP6tZ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