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마지막으로 외부에 손을 내밀기로 했다.
나는 마지막으로 희망의 끈을 붙잡기 위해 가족상담을 신청했는데, 엄마와 아빠, 누나도 다행히 이에 동의해 주었다.
처음으로 상담실에 들어갔다.
드디어 얽히고설켜 어디서부터 풀어내야 할지 모르는 우리 가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마음이 벅차올랐다.
가장 먼저 상담사는 각자가 생각하는 가족 구성원의 모습에 어울리는 인형을 골라보라고 말했다.
나는 아버지를 티라노사우루스, 엄마는 돌멩이, 누나는 미니쿠퍼처럼 귀여운 자동차로 골랐다.
상담사가 그 이유를 말해 보라고 했다.
아버지는 항상 근엄하고 무서운 존재였어요.
엄마는 늘 말이 없고 미동이 없는 분이고요.
누나는 혼자 여행 다니기를 좋아해요, 가족한테는 크게 관심이 없고요.
그래서 이렇게 골랐어요.
다른 가족들도 각자 고른 인형을 소개했다.
그중에서도 아버지가 고른 몇 가지 인형이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다.
아버지는 엄마와 어울리는 인형으로 신사임당을 골랐고, 나와 어울리는 인형은 서류 가방을 든 직장인 인형을 골랐다.
다들 갸우뚱할 만큼 아버지가 고른 인형과 그에 대한 설명은 가족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상담사가 아버지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그야 애들 엄마는 다소곳하고 무게감 있게 집안의 안주인 역할을 해야 하니까 이렇게 고른 것이고, 아들이야 의젓하게 회사도 다니고 좀 든든한 게 좋으니까 그렇게 고른 것이죠.
아휴, 아니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 상담사님이 말하는 건
지금 생각하는 현재의 우리 모습을 고르라는 거잖아! 어후 답답하네..."
엄마는 아버지가 인형을 잘못 골랐다면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듯 가슴을 연거푸 두드렸다. 아버지는 그가 바라는 가족들의 모습을 고른 듯했으며, 그것이 곧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바라는 모습이 아니라 현재의 모습과 어울리는 인형을 고르는 것이라고 설명해도 아버지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가족상담을 3회기 정도 받았을 때, 상담사는 자연스레 부부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며, 부부 상담을 따로 받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 했다.
우리 가족에게 일어난 모든 불행의 씨앗은 결국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엄마는 상담을 이어갈 생각이 없는 듯싶었다.
엄마는 아버지의 외도를 늘 의심하며 남편에 대한 배신감을 안고 살아가는 여자였다.
상담을 받는 중에도 엄마는 아버지를 손가락질하며 비난했고, 아버지는 엄마가 이상한 사람이라며 스스로를 변호했다.
결국, 엄마는 상담을 끝내겠다고 선포했고, 나는 가까스로 잡은 가족상담의 기회가 날아갈까 봐 조마조마한 채 앉아있었다.
난 더 이상 저 사람하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니까요!
이 상담하는 자리에서만 미안하다고 얘기할 뿐이라고요.
어머니 마음 잘 알죠. 그 배신감 클 수 있어요.
하지만, 잘 생각하셔야 돼요.
타이밍이라는 게 있잖아요.
지금 이건 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예요.
상담사도 놀라서 엄마를 설득했다.
우리 가족의 오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마지막 동아줄이 끊어지려 하고 있었다.
엄마는 타이밍이고 뭐고 문제를 해결할 생각인 건지 단순히 분노를 표출하고 싶은 건지 알 수 없는 태도를 취했다.
엄마의 거부 반응을 시작으로 가족들도 점차 지쳐가면서 첫 회기 때의 부푼 희망은 바람 빠진 풍선과 같이 시들해졌다.
결국, 가족상담도 해결책은 될 수 없는 것인가.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며 상처는 깊어졌고, 그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통증은 이미 우리 가족에겐 습관이 되어 버렸다.
잠깐의 상담을 통해서 느낀 또 다른 점은 우리는 달라도 너무 다른 사람들이라는 사실이었다.
아무리 한 혈육이라고 할지라도 생각과 말과 태도와 바라는 바가 모두 다른 곳을 바라봤다.
'그래 각자의 삶을 잘 살아가면 되는 거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이제는 받아들여야 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더 이상 살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나도 이제 나의 길을 가야 할 시간이 왔다는 예감이 스쳐 지나갔다.
더 이상 가족이라는 족쇄에 묶이지 않고, 나의 삶을 살아가겠다고 그 순간 스스로에게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