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처럼, 예고 없이 찾아오는 우울이 찾아올 때면
직장을 마무리하고
누가 옆에서 잔소리하는 사람 없고
책임 질 사람은 나하나뿐인 사람이지만
하나에서 열까지 계획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이기에,
미리 스케줄표에 빼곡하게
나의 하루 일과를
작성하고 마무리할 때마다 지워나간다.
내 몸에 리듬이 무너질까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같은 시간에 잠을 자고
아침에 눈을 뜨면
어김없이 나의 아침 루틴이 시작된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닌데,
누가 보면 참 갑갑한 모습이다.
온몸에 칭칭 감긴 끈을 풀고
조금은 느슨하게,
나를 내려놓아도 좋으련만
나는 왜 이리도 나를 가두는 것일까?
무엇이 두려워
이렇게 무너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걸까?
나는 꽤 오랜 시간
사방에 벽으로 둘러 쌓인 곳에서
바닥에서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고
끝이 보이지 않은
어두운 길 한가운데서 헤매고 있었다.
여기저기 쌓여 있는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몸으로 사투하고
나라는 사람을 돌볼 겨를도 없이
그저 눈앞에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초점을 맞출 뿐이었다.
또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불안해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는지
불안장애와 공황장애는
나와 짝꿍처럼 지내게 되면서
강박적으로 내 삶을 날이 서게 보게 된 거 같다.
우울한 사람은 과거에 살고
불안한 사람은 미래에 살고
평안한 사람은 현재를 산다고 하였던가
지워지지 않은
충격적인 과거의 잔상들과
결핍된 부모의 사랑과 반복된 상처,
진심을 준 사람들에게 받은 배신,
가식과 거짓으로 뒤엉킨 인간관계
내 힘으로 어렵게 얻은 것들을
뺏으려는 사람들로 인한 과거의 기억으로
감기가 찾아온 듯
온몸에 힘이 없고 여기저기 쑤시면서
내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깊은 우울감이 나를 찾아올 때면
아직도 나는 방법을 모르겠다.
어떻게 빠져나와야 하는지를,
내가 좋아하는 서울숲에 있는
은행나무 숲 벤치에 앉아
곧게 뻗은 나무와
바람에 흩날리는 잎을 멍하니 바라보며
이어폰에 흘러나오는
베토벤의 비창이 슬프게 들리는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은 바람으로
열심히 브랜드 기획을 하며
밝은 미래를 위해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왔지만,
불확실한 미래는
결국 극심한 불안을 몰고 오는 것인지,
불안과 우울로 인해
나는 잠시 멈춰 서 있다.
지금은 아무것도 하기 싫고
모든 사람이 미워지고 있어
지금은 잠시 멈춰 서서
시야가 좁은 사람처럼 앞만 보고 가는 것뿐
할 수 있는 게 없다.
집 밖을 나가는 게 귀찮았지만,
근처 카페에 앉아
따뜻한 아메리카노와
달달한 디저트를 먹고
이어폰에는 루이치 사카모토 음악과 함께
한 글자 한 글자 꾹꾹 눌러 담아
글을 써 내려가고 있다.
감정은 바닥에 있고
깊은 우울로 몸에 힘이 없고 의욕이 없어도
이상하게
커피와 디저트는 맛있을 뿐이고
음악은 마음을 평온하게 하고
글 쓰는 것조차 많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막상 글을 쓰는 지금,
감정이 정돈되는 기분까지 든다.
지금처럼 마음이 무너질 때면
좋아하는 것만 보고
맛있는 것을 먹고
평온하게 해 주는 것을 곁에 두면서
의지하면서 살아가라는 것일까?
뒤에서 누군가 알 수 없는 힘으로
끌어당기고 넘어 뜨리고
깊은 우울감에 빠지게 해도
환절기가 되면 찾아오는 감기처럼,
어차피 오게 되어 있고
또 때가 되면 지나가게 되는 거라 믿고
나 자신을 믿고
앞만 보고 가면 되는 거라고 믿고 싶다.
나를 믿어라
인생에서 최대의 성과와 기쁨을
수확하는 비결은
위험한 삶을 사는 데 있다
- 프레드리히 니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