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세하고 배려 깊은 시선이 필요할 때
8년 넘는 시간 동안,
화장품 원료 연구원이란 직업을 가지면서
답답한 흰색 가운을 입고 작은 실험실 안에서
결과 증명을 위해 혼자만에 싸움을 해왔었다.
기존에 원료 보다 효과적인 원료를 찾거나,
제조업체가 원하는 원료를 개발하면서
뷰티 시장 전반을 바라보기보다는
오로지 한쪽 의견에 치우쳐
연구원으로 할 수 있는 역할에만 충실했다.
우연히,
화장품 브랜드 매니저와 미팅을 하던 날
나는 원료만 바라보는 사람이었지만
그들은 원료, 제품, 마케팅등
뷰티 시장에서
전반적인 흐름을 이끄는 사람이었다.
그 모습을 본 후 나는
마음속 한편에
나의 브랜드를 만들어 시장에서 키우고 싶다는
작은 꿈을 키우게 되었고
연구원에서 상품 기획자 또는 브랜드 매니저로
직업을 바꾸었던 케이스가 없었기에
쉽지 않은 길이었다.
1년 넘는 시간 동안 방황 끝에
나에게 좋은 기회가 왔다.
직업을 바꾸고
내가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건,
주변에서 바라보는 연구원에 대한 편견과
사실을 기반으로
정확한 결과를 도출하는 연구원에서
새롭고 흥미로운 접근과
약간의 과장을 보태
고객에 관심을 얻기 위한 작업은
적응하기는 쉽지 않았다.
오랜 시간 한쪽으로 치우친 시선을
넓게 확장해서 바라보는 건
여러 번의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네가 원하는 제품 말고, 고객이 원하는 제품을 생각해"
업무를 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다.
성별, 연령대,
가지고 있는 독특한 취향,
자라온 지역에 따라 다른 문화 등
제각기 다른 고객을 분석하는 건 쉽지 않았다.
다양한 제품을 출시하고
브랜드를 론칭하고 마케팅을 하면서
잘된 것도 있지만, 망한 것도 많았다.
시간이 흘러
잘되었던 케이스를 돌아보면
고객의 행동패턴을 파악하고
고객의 니즈를 분석해
unmet needs를 해결한 새로운 제품과
효과는 극대화하기 위해
효능이 검증된 성분을 고함량 처방하고
패키지는 합리적으로 구성해
가성비 있게 설정하여 판매한 제품이었다.
공급자 입장보다는
수요자인 고객이 일상생활에서 필요하고
원했던 제품이었기에
시간을 많이 흘러도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거 같다.
어렵게 시작한 이 일은
힘들었지만 좋았던 이유는
알아가는 재미와
기존에 바라봤던 세상 보다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흥미로웠고
내가 고생해서 만든 제품이
활발하게 판매되고 있는 모습과
좋아하는 고객들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면서
일은 좋아하고 재밌었지만,
빠르게 변화하는 뷰티 시장을 대응하기 위해
매일같이 시간과의 싸움을 해야 했고
경쟁에 살아남기 위해
늘 새로운 걸 만들어야 했으며
고생해서 상품을 기획을 해도
기획자의 의견은 철저하게 무시하고
상사의 입맛에 맞게 바꾸어야 되는 일이 많았다.
그냥 그들의 지시에
꼭두각시처럼 움직여야 하고
경쟁사에 잘된 제품을 비슷하게 만들라는 요구와
당황스러울 만큼 희생을 강요하는 모습뿐이었고
좋은 결과물이 나오기 위해서는
시장에 흐름을 파악하고
다양한 고객의 입장을 들어보고
고뇌했던 기획자에 이야기를 경청하여
최종적으로
브랜드의 결에 맞게 결정하고 움직여야 되지만
배가 산으로 가는 방향으로 갈 뿐이었다.
상사라 할지라도 성과로 평가받기에
어떻게라도
잘 차려진 밥상에 밥숟가락이라도 얹어야 했고
대표에게 보고할 때도
자신의 아이디어라고 어필할 수 있기 때문에
그 어설픈 마음은 모르는 건 아니다.
상사의 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는 좋은 제안이었다면
열심히 업무에 임하였겠지만
시대에 뒤처지고,
대책 없는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면
편두통이 올뿐이었다.
지난주 금요일,
갑자기 카카오톡이 업데이트가 되었다.
대대적인 변경을 한다고 예고는 했지만,
막상 결과물을 보고 심히 당황스러웠다.
카카오톡은,
가족과 개인적인 지인뿐만 아니라
업무적으로 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뒤죽박죽이라
큼지막하게 보고 싶지도 않은 사람들에
사진들이 마구 올라오는 걸 보고
알고 싶지 않은 사실까지 알아야 되는 상황이
엄청난 피로감이 몰려왔다.
카카오톡 선물하기를 잘 이용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오히려 업데이트되면서
카카오톡을 열면 선물하기 유도용을 상단 배너에 심고
생일 친구를 강조하는 모습은
상업적으로 보여 심히 거북스러웠다.
퇴사할 때 가장 통쾌한 게
지긋지긋한 업무용 카톡 채팅방 나오는 건데,
주말 내내 카톡 프로필에
저장된 사진들을 모두 삭제했다.
나도 이렇게 피곤한데,
피곤해하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본연이 가진 기본적인 기능을 선호해
수많은 고객이 이용한 이유가 엄연히 있는 것인데,
타사가 운영하는 체계가 매출이 잘 나오는 것을 보고
따라갈 필요는 없는데 그저 아쉬울 뿐이다.
공급자 입장에서
회사 운영을 위해
이익을 우선시하는 건 좋지만,
정작 그걸 구매하고 이용하는
수요자 입장에서
섬세하고 배려 깊게 바라보는 시선에서
한 번쯤 생각해 보는 건 좋았을 텐데라는
씁쓸한 생각이 든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 괴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