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삶이 나에게 주어진 이유가 있을까?
어릴 때부터 나의 삶은 장남에 첫째 딸이라는 숙명으로 태어나 어린 나이에도 나에게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책임감이 쥐어졌고 동생에 본보기가 되어야 하기도 했고 동생이 잘못한 일이 생겨도 대신 혼나기도 했다.
완벽주의와 결벽증이 있는 아버지 밑에 자라다 보니 숨 막히는 통제 아래 조금만 잘못해도 상상 이상으로 혼이 나야 했고 아버지에 말을 거역하는 순간 날벼락이 떨어질 만큼 요란해져 우리 집에서는 군림하며 지내셨지만 밖에서의 모습은 영락없이 친절하고 온화한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지금도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앞-뒤 다른 모습을 지닌 사람을 보면 몸속 장기에서부터 먼저 반응한다.
동생은 나보다는 영리했는지 집안에 분위기를 일찍 파악해 아버지가 원하는 방향으로 순순히 진로를 선택하여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부모님에 전폭적인 지원 아래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어렵사리 공무원이 되어 현재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고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부모님과는 거리가 멀어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속으로만 삭여야만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부모님이 원하는 방향이 아니라서 늘 상상하고 꿈만 꾸기만 하다가 아버지와의 관계가 극으로 치닫게 되면서 관계에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강해지면서 결국 고향을 떠나 무리하게 서울살이를 선택하게 되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아버지의 간섭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누군가에 도움 없이 나의 길을 개척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올라왔을 때는 상상 속에만 있던 곳을 마주 했을 때 오는 묘한 설렘으로 하루하루가 즐거웠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에게 서울살이는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러운 경험에 연속이었다.
나이는 찼지만 직업을 바꾸는 과정을 겪으면서 새롭게 일을 시작하다 보니 바닥에서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으로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환경에서도 악착같이 배우려고 노력해야 해야만 했고 현실적인 벽에 부딪힐 때는 전전긍긍하며 해결하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보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힘든 일을 겪고 나면 좋은 일이 오는 게 맞지만 이상하게도 힘든 일이 생기면 이걸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가도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힘든 일이 자리 잡고 있었고 겨우 해결하고 한숨 돌리고 누워 있으면 쉬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는 듯 다른 무언가가 튀어나와 괴롭히기 일 수였다.
그때마다 속으로 '나는 전생에 무슨 큰 잘못을 했길래 지금 이러고 있는 거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걸까? 라며 읊조리곤 했다. 내 마음에 여유를 찾고 행복한 순간이 있어야 그 힘을 살아가는 힘을 얻는데 나에게는 그런 순간이 희박해서 그런지 나에게 삶은 그저 견디는 거밖에 없었다.
뭔가 좋은 일이 생기다가도 얼마 가지 않아 무거운 짐이 주어지고 풀리지 않은 순간이 오면 시간이 지나면 풀리겠지라는 긍정적인 생각도 잠시, 속이 썩어갈 만큼 정체되어 있는 삶이 길어지다 보니 가끔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던 걸까? 내가 꿈꾼 이 세상이 나에게는 과분했던 것일까? 늘 나는 왜 이렇게 절박하고 처절하게 살아야만 하는 것일까?'라고.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가 강력하게 현타가 오는 순간이 있었다. 내가 하는 전문 직종을 하고 싶어 대학교를 졸업하고 내 팀에 팀원이 된 어린 친구가 있었다. 열심히 하는 친구라 생각이 들어 그동안 어렵게 배운 여러 가지 직무에 대한 노하우를 알려주기도 하면서 가르쳐 준 적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 배우는 태도가 예전 같지 않아 넌지시 물어보니 그녀가 하는 말이 "생각보다 일이 어려워서 별로 안 하고 싶어요"라는 말이 돌아왔다.
그녀는 이미 뷰티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면서 돈을 벌고 있어서 그런지 재밌고 비교적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일이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고 있었고 머리 아프고 어려운 일은 그저 따분한 일이었다.
나는 이 일을 배우려고 절실하게 바닥부터 고생하면서 올라왔는데 그녀의 말 한마디가 나에게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끔 했다. 요즘은 돈이 필요하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사방에 있다 보니 예전처럼 직장에 대한 간절함이 줄어든 모습이었다.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는 배우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다양한 것이었고 얻고 싶다고 해서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 그걸 이루기 위해 나 자신에게 철저하고 냉정하게 행동하는 나와는 다르게 그들은 여유롭고 자유로웠다.
18년 동안 직장 생활하면서 고생한 나 자신에 대한 위로를 하며 조금은 내려놓고 살아도 좋으련만
이미 뼛속까지 박힌 나의 사고는 작은 쉼 조차 허락하지 않고 분주하게 무언가를 하게 했고 또 절실하고 절박하게 무언가를 하려고 분주하게 헤매고 있다.
즐기고 여유로운 생활보다는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고통을 참아가며 살아오는 날들이 많아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가끔은 화가 날 만큼 이유조차 알고 싶지 않은 순간이 많지만 우연히 듣게 된 윤종신의 '나이'의 가사가 그나마 내 마음을 위로해 주는 요즘이다.
안 되는 걸 알고 되는 걸 아는 거
그 이별이 왜 그랬는지 아는 거
세월한테 배우는 거
결국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거
두 자리의 숫자 나를 설명하고
두 자리의 숫자 잔소리하네
너 뭐 하냐고
왜 그러냐고
지금이 그럴 때냐고
잊고 살라는 흔한 말은 철없이
살아가는 친구의 성의 없는 충고
내 가슴 고민들은
겹겹이 다닥다닥 굳어 버린 채
한 몸 되어 날 누른다
날 사랑해 난 아직도 사랑받을 만해
이제야 진짜 나를 알 것 같은데
이렇게 떠밀리듯 가면
언젠가 나이가 멈추는 날
서두르듯 마지막 말 할까 봐
이것저것 뒤범벅인 된 채로
사랑해 용서해 내가 잘못했어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널 사랑해 날 용서해 지금부터
-♬ 윤종신, 나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