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함 속에 담겨있는 트라우마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작은 세계

by 레베카

나는 8년 동안 화장품 원료 개발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내 브랜드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화장품 브랜드 매니저로 직종을 바꾸게 됐는데 요즘은 유독 직장 생활의 기억이 떠올라 마음이 착잡해진다. 운이 좋았는지 겉으로는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회사를 다니기도 했지만 그 속에서 나는 엄청난 싸움을 하고 있었다.


어릴 때에 기억으로 돌아가면 공무원이었던 아버지는 강압적이고 폭력적이었으며, 폐쇄적인 직장 생활에서 겪었던 스트레스를 퇴근하고 오자마자 나에게 화풀이를 하셨고 매일 저녁은 나에게 공포의 시간이었다. 내가 혼나야 되는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몇 시간이고 아버지에 화가 풀릴 때까지 나는 약자가 되어 고개를 숙이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때 기억이 더욱 속상한 건 어머니와 동생은 나를 도와주기보다는 자신에게 화살이 오지 않도록 회피하던 모습이 떠올라 지금까지도 마음 한편에 남아 마음이 아프다.


매일 같이 반복됐던 이 시간이 멈추게 된 건, 대학교 졸업하고 취업을 한 직전이었고 오랜 시간 쌓인 고통스러운 기억은 앞으로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줄지는 그때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나는 18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하면서 이직한 횟수는 11번이나 될 만큼 많은 회사를 이직하게 됐고 회사를 나올 때는 항상 끝이 좋지 않았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면 기분이 좋지 않을 만큼 나에게는 상처고, 고통이고, 구역질 나는 일들 뿐이었다.


그때는 직장 생활에서 늘 일어나는 정치질과 이간질 그리고 사람들 사이에 험담, 시기, 질투 등으로 억울하고 속상했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남들에게 얘기하기 어려운 몸이 먼저 반응하고 불편하고 구역질 나는 상황에 놓여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이유가 있었다.


아버지와 관계에 기억이 좋지 못했던 나는 아버지에 성향이 비슷한 상사를 만나거나 아버지가 고통스럽게 괴롭히던 기억과 비슷한 상황이 놓이게 되면 나도 모르게 갑자기 몸이 경직되고 손, 발이 떨리고 긴장한 탓인지 목소리가 작아졌다. 그럴수록 괴롭히는 사람들은 상대가 자신으로 인해 위축되어 있는 모습을 즐기는 듯이 더 악랄하게 짓밟곤 했다.


그래서 나는 그 공간을 도망치듯 이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아무도 소통하지 않고 웅크리며 다시 괜찮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간을 보내는 게 일이었다.


예전에 아버지가 공무원 퇴사를 하고 우울하게 보내고 있다가 밖에 나갈 일이 있어 둘이 같이 차를 타고 가며 나눴던 말이 생각이 난다. 아버지는 나이가 들다 보니 컴퓨터 작동이 미숙하여 어린 직원들에게 무시를 받았던 내용과 나이 어린 직원이 먼저 승진되어 자신을 힘들게 했던 내용이었다. 그 말을 듣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떠오르며 그렇다고 해도 스트레스받은 것을 배움을 통해 극복하면 되는데, 아무 상관이 없는 딸을 희생양 삼아 화풀이 대상으로 두는 건 어리석짓이고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인 거 같아 그냥 말없이 듣기만 했다.


지금 아버지는 나이가 들면서 힘도 없어지시고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의 건강을 관리하게 되면서 힘에 부치시는지 닭살 돋는 애정 문자를 보내주시긴 하지만 아직은 그 마음을 온전히 받는 게 어색하고 불편하다. 나에게는 아직도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다.


지난주 부아 c님 에세이 '외롭다면 잘살고 있는 것이다.'라는 책을 읽게 되었는데 마음에 남는 글귀가 있어 한참을 보게 되었다.

'작은 불편함에 그 사람에 세계가 숨어 있다.'

이 말은 어떤 사람이 불편해하고 민감해하는 부분은 그 사람의 경계고 상처이니 사람을 이해한다는 건 그 사람에 민감한 지점을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일이고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불편함을 읽어내려는 노력이 쌓어야 비로소 진짜 신뢰가 생긴다는 이야기였다.


누구나 말하지 못하는 상처는 가지고 있기에 그 상처를 읽고 민감한 부분을 건들지 않으려 하고 배려하며 다정한 사람이야 말로 건강한 마인드의 사람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수록 태도를 유심히 보는 거 같다.

이 글이 주말 내내 마음을 맴돌게 했는지 지난 시간들이 하나 둘 떠오르면서 마음이 울적하기도 했고 현실적인 문제로 다시 직장을 구하고 있는 내 상황이 우울하기도 했다.


지나간 과거에 얽매이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지만 내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먼저 반응하고 움츠려 있는 내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나에게는 꿈이 있고 가능성이 있기에 현실을 그냥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알 수 없는 동력이 생기는 게 인간인 거 같다. 힘겨운 시간 속에 움직일 힘도 없고 몸 여기저기가 아프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멈추지 않고 나만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 언젠가는 반드시 얻게 될 보상을 위해 오늘도 다시 힘을 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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