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기간이 없다면, 함께 살아가는거죠.
여러 미디어상에서 트라우마를 다룬 이야기를 읽어보면
유효기간이 없이 비슷한 일만 스쳐도 기억에 박혀있던 것들이 공격하고
분명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겪고 있는데도, 비슷한 상황과 마주할때면 어김없이 움츠려 들게
하는것이라 얘기 한다.
정확하게 시작점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나의 10대 시절을 되돌아보면 아버지와의 관계로 숨막히고 눈치보고 고통스러운 시절을 보냈다.
딱히 이유는 없었고,
자기가 원했던 딸의 모습이 아니란 이유로
나라는 존재는 아버지 자신의 스트레스를 푸는 도구에 불과 했다.
아직도 나는,
미디어 상에서 "딸바보"라는 영상을 보면 이야기가 부럽기도 하지만
경험 한적이 없어서 그런지 전혀 공감을 하지 못한다.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늘 같은 시간에 퇴근을 하셨고
멀리서 아버지 차소리, 발소리, 키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겁을 먹고 방에 숨어 있었고
오늘은 또 무슨 이유로 나를 괴롭힐지 두렵고 무서웠다.
늘 무섭게 나의 방문을 발로 걷어차며 나를 부르셨다.
놀란 나는 잘못한 것이 없었지만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이고 소리지르며 욕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그대로 받을수 밖에 없었다.
이유를 찬찬히 들어보면 예전에 내가 했던 잘못한 행동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면서 얘기를 하셨고
자기가 아끼는 아들이 더 잘되야 하기에, 딸에 기를 꺾는 말들로
몇시간이고 자기 분이 풀릴때까지 화를 내셨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 사람인지라 무뎌지게 되서 그런지
혼나면서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무원 생활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나에게 푸는구나,
집에서라도 자기 위신을 세우려고 나라는 사람을 이렇게 비참하게 짓밟는구나 하고
회사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을때는, 그 강도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해
다른 가족들이 말리지 않으면 제어가 되지 않을 정도 였다.
학교 가고 집에 돌아와서 아버지에 혼나고
이게 나의 10대 시절에 기억이 전부다.
대학교때는 조금은 잠잠 했었지만
남자친구랑 놀다가 새벽에 들어갔을때 일이다.
항상 일찍 주무셨는데 그날은 집에 불이 다 켜져 있었고 무언가에 꽃히셨는지
예전처럼 나를 무릎을 꿇리고 이유라고 할것 없는 이유로 몰아쳤을때
그때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소리치고 대들었다.
엄청난 충격을 받으셨는지 그당시 아버지의 표정을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몇일 친구 집에서 지내는 동안 들리는 소리는 아버지가 충격을 받았다는 얘기 였다.
그동안에 내가 겪은 일은 생각하지 않고
그 한순간에 행동으로 충격을 받았다는 말이 어린 나에게는 황당했지만,
그때 나는 고향을 떠나서 내 힘으로 살아가자는 생각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아버지의 행동이 멈추게 된건
내가 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좋은 회사에 취직을 한 순간이었다.
자신의 가족이라 생각하지 않고 짐처럼 느꼈던 딸이
밥벌이를 하게 되서 그런가, 이상하리만큼 잠잠하게 됐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생활하게 된 나는,
매일 매일 겪었던 일을 겪지 않아도 되고 내가 하고싶은것을 마음껏 할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난관에 부딪혔다.
아버지로 인해 겪은 트라우마는 인간관계를 할때 영향을 주면서
아버지와 비슷한 습관과 행동을 하는 사람을 보게 되면
일단 경계하게 되고 숨이 쉬어지지 않고
손, 발이 떨리고 얼굴을 똑바로 볼수가 없었고 어지러운 기분에 휩싸이게 됐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압박적인 환경과 스트레스로 인해 이런 증상이 심해지면서 불안 장애와 공황 장애를 겪으며 한동안 괴롭혔고 지금은 조금씩 극복하려고 노력중이다.
30년이 흐른 지금,
아버지와 관계는 단절된채 지내고 있다.
중간에 노력하면서 관계를 개선해봤지만, 쉽게 내 마음과 몸이 움직이질 않았다.
그래도 나이가 든 지금,
아버지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지만 그 행동에 이유는 어느 정도는 예상 할 수 있었다.
아버지는 장남으로 책임감이 심했고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공무원 말단으로 시작하고 나서 월급은 적고 하는 일은 많고 승진은 더디고
자신 보다 한참 나이 어린 사람들이 상사로 굴림하면서 얼마나 자존심 상하셨을까?
예전에 집에서 혼자 끙끙거리면 컴퓨터를 공부하는 모습을 본적이 있다.
나는 그저 멀리서 지켜봤지만, 아버지 옆에서 남동생이 열심히 가르쳐 준 기억이 있다.
그때는 이유를 몰랐지만,
직장에서 컴퓨터 다루는게 서툴다 보니 가르쳐 주는 사람도 없고 혼자 애를 먹었던거 같다.
훨씬 오랫동안 회사 생활을 한 사람이
컴퓨터 하나도 제대로 다루지 못하면 주변 사람들이 얼마나 무시했을까?
행동의 이유는 짐작할 수 있지만
그래도 구겨진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자기 가족을 함부로 대하면 안되는것을, 그러면 안되는것을
꺼내 보기 싫은 나만의 아픈 기억을
지금 담담히 써내려 가는것만으로도
트라우마의 잔재는 남아 있지만, 그래도 견딜만 한거 같은 느낌이 들어
내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란 사람은
남들과 다른 시간을 보냈지만 그 시간에 갇혀 있지 않고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중이고
지울수 없는 트라우마가 내 몸 어딘가에 붙어 있지만,
나와 비슷한 일을 경험한 사람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아버지에게 혼나고 방에 쓸쓸히 혼자서 나를 위로하며 끄적이던 글이
지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것이 되었다.
그때 나는 이미 알게 됐다.
생각과 감정을 정리하는데 가장 좋은 방법 중에 하나가 글쓰기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