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글에서 우리는
세상을 바꾼 위대한 변화는
'남과 다른 생각'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에 대해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또 다른 질문을 던져봅니다.
'그럼, 남과 다른 생각은 어디에서 시작됐지?'
이 글에서는 남과 다른 생각,
즉 '창조적 사고'의 탄생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려고 하는데요.
AI가 급속도로 발달하는 이 시대,
이 질문을 통해,
당신이
어떻게 하면
보다 나답게,
진정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작은 팁이라도 얻으신다면,
정말 기쁠 것 같네요.
우리는 종종 ‘생각’이라 하면
이성적 사고를 떠올립니다.
하지만 진짜 창조는 언제나
'생각을 넘어선 그 무엇'에서 시작되었는데요.
그것은
느낌이고, 직관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랫동안 '느낌'(feeling)이나 '직관'(intuition)을
이성(logic)과 반대되는 것으로 여겨 왔지요.
느낌은 이성을 흐리고,
직관은 논리를 방해한다고 말이죠.
하지만 이는
'느낌이나 직관'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습니다.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은 그의 저서 『생각의 탄생』에서 말합니다.
"직관은 합리적 사고의 방해물이 아니라,
오히려 합리적 사고의 출발점이자 창조의 기반"이라고요.
이 말은 단순한 철학이 아니라,
오랫동안 창조적 사고에 대해 연구해 온
과학적 통찰에 근거한 것인데요.
창조적으로 생각했던 인물들은
모두 '느낌'과 '직관'으로부터 출발해서,
창조적 사고의 문을 열었기 때문이지요.
이글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아인슈타인, 피카소, 파인먼 등—이
어떻게 인류사에 빛나는 창조적 업적을 세웠는지에 대해,
느낌'과 '직관'을 중심으로,
함께 생각해보려 합니다.
우리가 어떤 문제에 부딪힐 때,
처음 떠오르는 건
공식이나 데이터가 아닙니다.
“뭔가 낌새가 이상한데?”
“이건 좀 다르게 느껴져”
이같이 말로는 잘 설명이 안 되는,
모호한 ‘느낌’이 먼저 떠오르게 되죠.
그 막연한 느낌의 순간이,
바로, 창조적 사고의 씨앗이 된다고
생각해 보신 적 있나요?
이제부터
'느낌'이
어떻게 '창조'의 시작이 되는지,
같이 살펴볼까요.
먼저 아인슈타인의 얘기를 들어볼까요?
우리는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아주 난해한 수학 공식과 숫자를 동원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과연 그랬을까요?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설명할 때,
그 시작이 ‘수학’이 아니라,
'느낌'에 가까운 이미지였다고 말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논리로 ‘설계’ 하기 전에,
자신을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빛의 입자(광자:光子)라고 '상상'했어요.
아니, 자신을 빛의 입자라고 상상하다니~~
생각만 해도, 정말 유니크한 발상이지 않나요!
빛의 입자(광자)가 된 그가
보고 느끼는 것을 '상상'하고 나서
그는 또 다른 광자의 역할을 맡았고,
첫 번째 광자의 역할에서 경험한 것을
상상하려고 했습니다.
이같이 그는 상상과 이미지,
그리고 직관적 질문으로부터
상대성 이론을 끌어냈습니다.
그는 이 과정을 이렇게 말합니다:
"내게는 직감과 직관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이미지가 먼저 나타난다.
말이나 숫자는 이것의 표현수단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덧붙인 한마디...
"과학자는 (수학) 공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저는 아인슈타인의 이 말에서 정말 충격을 받았는데요.
저는 지금까지 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과학과 직감, 이성과 감정은 서로 완전히 상반되는 것이라고 배웠고,
그것이 맞다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 글을 쓰면서,
이런 저의 고정관념이
아인슈타인을 통해
일순간 와장창 깨지는 순간을 경험했어요.
아주 속 시원하게 말이죠!
물론 일반적으로는,
과학과 느낌, 이성과 감정은
서로 상반된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지요.
이와는 달리, 창조적 사고를 하는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들은
이 같은 사고의 틀을 완전히 뛰어넘었기 때문에,
'직감적'으로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직관적'으로 남들이 생각하지 못한 것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아인슈타인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우리는 오랫동안
'합리적 사고'란
차가운 이성과 논리의 영역이라 믿어왔습니다.
이에 반해, 창조적 사고를 이끌어낸 수많은 위대한 인물들은 말합니다.
정말 중요한 아이디어는,
'말'로 설명되기 이전에,
'몸'이 먼저 '느낀다'
느낌과 직관은,
단순한 ‘감’이나 막연한 추측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랜 시간에 걸쳐 쌓아 온,
지식과 경험에서 탄생한 결과물이라 할 수 있는데요.
이 사실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바로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바바라 매클린턱(Barbara McClintock)입니다.
바바라는 1940년대 후반,
옥수수 유전자를 연구하던 중,
어떤 유전자가 어느 위치에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위치를 바꾸는 현상을 발견합니다.
이것을 점핑 유전자(TE:Transposable Elements)’라고 하는데요.
놀랍게도, 이 혁신적 발견은
단순히 수치와 데이터 분석의 산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세포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세포와 '교감'한 것처럼.”
바바라 매클린턱은 현미경 앞에 앉아
수천 번, 수만 번의 관찰을 반복하며,
마치 옥수수 세포 안으로 직접 들어가 있는 것처럼
유전자의 움직임을 상상했고,
현미경을 통해 ‘옥수수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몸으로, '느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럼에도, 이 이론을 발표한 1950년대 당시로서는,
바바라의 발견은 너무 파격적이었죠.
“유전자가 움직인다고?”
대부분의 학자들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녀는 조용히 연구소 안으로 물러났습니다.
세월이 흐르며, 그녀의 직관은 하나씩 증명되기 시작합니다.
세균, 초파리, 심지어 인간의 DNA에서도 유전자 이동이 확인되었고,
그녀가 이 이론을 발견 후 무려 30여 년이 지난,
1983년 드디어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게 됩니다.
바바라는 논리 이전에,
직관을 따라 ‘보이지 않는 진실’을 보았고,
과학이라는 세계에서
가장 창의적 발견 중 하나를 이루어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AI가 수백만 개의 데이터를 학습해도
쉽게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진
'직관'의 놀라운 힘입니다.
‘파인만 다이어그램’을 통해
물리학자들이 입자 상호작용을 해석하는 방식에 혁명을 일으킨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은
단지 계산이나 공식만을 암기하는 과학자가 아니었는데요.
그는 복잡한 물리 개념을,
그림과 모형을 통해
직관적으로 ‘느끼며’ 이해했습니다.
파인만에게 “이해한다”는 것은
곧 “느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느낌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개념이 몸에 착 달라붙어
눈에 보이듯, 손끝에서 만져지듯,
다가오는 '느낌'이었습니다.
파인만은 기존의 추상적이고 어려운 과학 용어 대신,
쉬우면서도, 재미있게 개념을 설명하는
언어적 유희를 즐겼습니다.
그는 이것을 통해 듣는 이의 감각을 열고,
복잡한 개념에 느낌과 직관으로 접근하도록 도왔습니다.
예를 들어, 전자기 현상을 설명할 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입자들이 서로 광자 (光子)를 주고받으며 짝짓기 한다(mating).”
이 한마디는 ‘전자기력의 상호작용’을 설명하는 공식보다
학생들의 머릿속에 훨씬 생생하고 명확한 이미지를 남겼는데요.
파인만이 발명한 ‘파인만 다이어그램’은
그의 감각적 사고가 잘 드러난, 시각적 표현입니다.
그는 그림을 통해 복잡한 물리적 개념을
직관의 수준으로 단순화시켰죠.
파인만은 말합니다.
“어떤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그것은 몸으로 '느껴질' 정도로 단순해진다.”
그의 방식은
수학보다 느낌이 먼저 앞서는 생각,
즉 “몸으로 아는” 생각이었습니다.
신경학자 안토니오 디마지오(Antonio Damasio)는
갑작스러운 사고나 뇌졸중으로 인해
뇌에서 '느끼는 기능'을 상실한 환자들이
의사 결정을 하는 판단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발견했는데요.
이는 바로, 그 환자들이
어떤 게 좋은지, 혹은 위험한지를 '느끼는 '
감각 자체가 손상되었기 때문입니다.
디마지오는 “감정은 판단을 이끌어내는 우리 몸의 신호”라고 생각했습니다
즉 느낌은 단순한 감각이 아니라,
생각(이성적 판단)의 출발점이라는 거죠.
디마지오는,
인간 존재의 근거를
감각이 아닌 이성적 사고에서 찾았던,
근대 철학의 아버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사상을 반박하는
자신의 책 『데카르트의 오류』에서 말합니다.
“감정이 없으면, 이성은 작동할 수 없다”
디마지오를 통해 우리는
창조는
데이터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함께 '느끼는'
감각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스타니슬라브 울람은 단지 수식을 다루는 수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논리의 틀을 넘어,
직관의 힘으로 새로운 수학적 세계를 개척했습니다.
1940년대, 울람은 무작위 추출에 기반한 확률 계산 방법,
즉 오늘날 ‘몬테카를로 시뮬레이션’이라 불리는 기법을 고안합니다.
핵폭탄 개발을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하던 중,
복잡한 수식을 풀 수 없었던 상황에서
그는 무의식 중 떠오른 한 가지 '이미지'에 집중합니다.
“마치 공을 반복해서 던지는 게임처럼,
수많은 무작위 샘플을 통해 전체 확률을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이 단순한 느낌은
기하학적 추론과 시뮬레이션 기법을 결합시켜,
복잡한 방정식을 대체하는
혁신적인 계산법으로 발전했습니다.
울람은 이러한 방식이
순수한 논리적 추론이 아니라,
“갑자기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고,
그것이 전체 구조를 설명해 주는 느낌”에서 비롯된다고 회고합니다.
이런 그의 사고방식은 종종
‘초논리적 사고(Translogical Thinking)’라 불렸는데요.
이는 논리 이후에 오는 차원의 통찰,
즉 이성과 감각, 계산과 이미지, 분석과 직관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통합적 사고를 의미합니다.
울람은 수학자였지만,
그의 위대함은
수학을 ‘느끼는’ 능력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숫자 너머의 질서,
계산을 초월한 상상력,
그리고 이성과 감정이 만나는 지점에서,
울람은 ‘논리만으로는 알 수 없는 진리를 발견했습니다
파블로 피카소는 단지 ‘그리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발견한 사람이었습니다.
피카소는 어린 시절부터
형태를 '느낌'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림을 잘 그리는 훈련보다,
세상을 직관적으로 ‘느끼는 법’을
스스로 터득했던 것이지요.
그는 대상을 단순히 눈에 보이는 그대로 묘사하지 않았는데요.
오히려 ‘보이지 않는 본질’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습니다.
예를 들어, 피카소는 인간의 얼굴을 그릴 때,
정면과 측면을 동시에 표현하는
큐비즘(Cubism)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사람을 보는 다양한 시점과 시간,
그리고 '느낌'을 동시에 담고자 한 시도”였는데요,
그는 말합니다.
“나는 보이는 것을 그리지 않는다.
내가 느끼는 것을 그린다.”
그는 무언가를 보았을 때, 그 형태에 먼저 몸으로 반응했습니다.
즉, 느낌이 먼저 반응하고,
그다음에 손이 따라갔던 것입니다.
『생각의 탄생』에서 루트번스타인은 말합니다.
“피카소의 창의력은 눈으로 상상하고,
마음속에서 여러 생각을 하나로 엮는 능력에서 비롯되었다.”
즉,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기술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그림처럼 생각하고,
여러 아이디어를 연결해
새로운 이미지를 떠올리는 힘이
그의 창조력의 원천이었다는 거죠.
이처럼 피카소의 예술은
복잡한 개념을
느낌과 직관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AI는 데이터를 통해 형태를 재현할 수는 있지만,
피카소처럼 ‘보이지 않는 느낌’을
그림으로 표현하는 능력,
즉 느낌을 구조화하여, 형태로 번역하는 창조성은
결코 흉내 낼 수 없습니다.
파블로 피카소.
그는 보이지 않는 느낌을
보이는 이미지로 구현할 줄 아는 화가였습니다.
"수학자들은 수학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느낌'으로 직관한 것을
수학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다.”ㅡ<생각의 탄생>
이 말은 수많은 위대한 과학자들이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창조의 첫걸음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말합니다.
“오직 직관만이 교감을 통하여
통찰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연구의 성과는
면밀한 계획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슴으로부터 바로 나온다.”
그가 말한 ‘가슴’은
단지 감정이 아니라,
깊이 축적된 지식과 경험이 뒤섞인
느낌의 총체를 의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인슈타인은
수학이 ‘이해’의 도구가 아니라,
‘이해한 것을 표현하는 형식’에 불과하다고 말했습니다.
물리학자 파인만 역시 그랬습니다.
그는 복잡한 물리 개념을
계산으로 먼저 접근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문제를 푸는 과정들을 보면,
수학적으로 해결하기 전에
어떤 '이미지' 같은 것이 눈앞에 계속 나타나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정교해졌다.”
파인만은 이 이미지를 그림으로 그리고,
‘느껴서’ 이해한 것을 도식화해서
그 유명한 ‘파인만 다이어그램'이 탄생했습니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 바버라 매클린턱 역시
유전자에 대한 통찰을
옥수수 유전자와 교감한 것에서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녀는 말합니다.
“과학적 방법으로 일한다는 것은,
'직관적'으로 알아낸 것을
과학의 틀 속으로 집어넣는 것이다.”
맥클린턱의 이 말은
오늘날 수많은 과학자들이 공감하는
창조의 구조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1단계는 ‘느낌’,
2단계는 ‘표현’입니다
과학자들은 먼저 느낌을 통해 감지하고,
다음으로, 그것을 이해 가능한 언어(수학, 논리, 실험)로 번역합니다.
『생각의 탄생』의 저자 로버트 루트번스타인은 말합니다.
“과학자들이 일반인들보다 논리적으로 사고한다는 통념은 다소 과장된 것일 수 있다.”
“그들의 새로운 발명과 발견은,
처음에는 이미지를 통한 직관적인 감각에서 시작된다.”
우리는 과학의 결과물만 보기 때문에,
그 이면의 창조적 사고가
논리로만 이루어진 것처럼 오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의 창조는 처음부터 계산으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들은 느낍니다.
보이지 않는 흐름을 먼저 느끼고, 무의식의 신호를 포착합니다.
그러고 나서 그것을 공식과 숫자로 표현합니다.
조각가 루이스 부르주아는 말합니다.
“나는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각으로 '번역'하려고 오랫동안 고민했다.”
화가 막스 빌도 이와 유사한 말을 했습니다.
“예술은 마음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는
막연한 이미지를 구체적인 형체로 가시화하는 것이다."
소설가 도로시 캔필드 피셔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는 강렬한 장면을 이미지로 떠올리지 못하면,
그에 대한 어떤 글도 쓸 수 없다.”
이처럼 과학자든 예술가든,
창조는 늘 ‘느낌’에서 시작됩니다.
그들이 창조의 시작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것은
논리 이전의 단계에서 반짝이는,
느낌입니다.
물리학자 막스 플랑크는 이렇게 말합니다.
“과학자에게는 예술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는 말합니다.
“감정이 없으면 이성도 제대로 작동할 수 없다.”
우리는 흔히 이성과 감정을 별개로 생각하지만,
다마지오는 사고(思考)라는 것이
단지 머리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판단할 때,
먼저 몸이 감지한 '느낌'이 작동하고,
그다음에 생각이 따라오는 식이라는 거죠.
요컨대,
직관은 감각의 결과이고,
통찰은 그 감각이 다듬어진 모양입니다.
생각하기에 앞서 '느끼고',
느낀 것을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창조가 일어납니다.
그것이 과학이든, 예술이든, 혹은 일상의 삶이든 마찬가지입니다.
출처:
<생각의 탄생> 로버트 루트번스타인, 미셀 루트번스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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