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둘 다 내 취향
요즘 유난히 느린 시간들이 좋다. 아침 창가에 놓인 화분들, 저녁에 켜둔 촛불, 불멍처럼 타닥거리는 생각들. 그런 고요한 틈에서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
'식물은 참 정직하구나'
콩을 심으면 콩이 자라고, 팥을 심으면 팥이 자란다. 씨앗이 품고 있는 본질대로, 예상한 그대로 자라난다. 크기가 조금 다를 뿐이지 식물의 세계에서는 배신이 없다.
그 단순함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안다. 내가 돌보는 만큼 아름답게 자란다는 것을. 나는 그 점이 참 좋다. 내가 공들이는 만큼 보여주는 식물. 나 때문에 변하지 않아도 되고, 내가 기대를 걸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방식대로 자란다. 그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람을 떠올리면 전혀 다른 생각이 든다.
사람은 콩을 심어도 팥이 될 수도 있다. 개천에서 용 나는 것처럼. 팥처럼 보이던 사람이 콩처럼 바뀌기도 하고, 어떤 사람에게는 콩인데 팥이라 생각이 되고 분명 팥인데 콩이라고 우기기도 한다. 기대와 현실이 모순되고 경험이 본질을 흔들고 관계가 성장을 재정의 한다.
인간은 정해진 씨앗이 아니라 '과정 그 자체'로 살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이 더 어렵고,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내가 식물을 좋아하는 이유를 생각해 보면 결국 한 가지다.
식물은 본질이 흔들리지 않는다.
물을 조금 덜 줘도, 말을 걸어주지 않아도, 그저 자기 리듬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폭발적으로 크지도 않고, 갑자기 정체성을 바꾸지도 않는다. 그 자체로 완성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고요함 속에서 늘 숨이 고르게 정리된다.
"있는 그대로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식물은 아무 말 없이 전한다.
그러니 내가 식물을 들여다보는 건 사실 '나를 안정시키는 의식'에 가깝다.
사람은 식물과 달리 예측 불가능한 생명체다. 성선설이냐 성악설이냐고 오랜 세월 싸워왔지만, 나는 성무선악설. 그 논쟁보다 더 중요한 건
사람은 바뀐다.
그리고 그 변화의 폭이 생각보다 훨씬 크다.
좋은 환경에서는 밝아지고, 나쁜 관계에서는 작아진다.
누가 어떤 말을 해주느냐에 따라 자신감을 얻고, 어떤 상처를 받느냐에 따라 회피형 인간이 되기도 한다. 성향조차도 훈련과 습관으로 재구성된다.
그렇다고 '본질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본질은 '변화할 수 있음'에 가깝다. 틀이 아니라, 계속해서 업데이트되는 프로그램처럼.
식물이 정해진 답안을 가지고 자란다면,
사람은 살면서 답안을 고쳐 쓰는 존재다.
우리는 알고 있다. 사람은 많이 바뀐다. 운동을 시작하면 몸과 마음이 함께 변하고, 회사를 만들면 가치관이 재편되고, 인생의 사건 하나가 전체 방향을 완전히 바꿔놓기도 한다.
나는 어떤 때는 작아졌다가도, 어떤 때는 흙을 들추고 새 줄기를 밀어내듯 단단해졌다. 사람은 그때그때 달라진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라는 말도 결국 과거의 스냅숏일 뿐이다.
조금 더 사랑받으면 부드러워지고, 조금 더 도전하면 강해진다.
조금 더 실패하면 현명해지고, 조금 더 고통받으면 깊어진다.
이 모든 과정을 통틀어 인간은 자기 본질을 재정의한다.
그건 식물에게 없는 능력이다. 단점이 아니라. 인간만의 특권이다.
생각해 보면 이 둘은 정반대의 세계다.
식물은 변하지 않는 본질로 나를 안정시키고,
사람은 변하는 본질로 나를 자극한다.
식물은 내가 기대하지 않아도 스스로 자라고,
사람은 기대를 걸어야 성장한다.
식물은 나를 고요하게 만들고,
사람은 나를 움직이게 만든다.
이 상반된 성질이 내 삶을 균형 있게 만들어준다.
식물은 나에게 '멈춰도 괜찮다'라고 말하는 존재고,
사람은 나에게 '계속 갈 수 있다'라고 말하는 존재다.
둘을 동시에 좋아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고요와 변화, 안정과 성장. 나는 그 사이에서 살아가고 있으니까
이 생각을 남기는 이유는 하나다.
나는 요즘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 계속 확인하고 싶다.
어떤 씨앗에서 시작했든, 나는 지금도 계속 변하고 있고, 앞으로도 변할 거다.
식물처럼 단단한 뿌리를 가지되, 사람처럼 끝없이 성장하는 존재.
그게 내가 원하는 모습이다.
'괜찮아. 너는 계속 자라는 중이야. 언제든 변할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알아?'
고요한 식물과 변화하는 인간 사이에서,
나는 나를 다시 피워내고 있다.